[Opinion] 아무도 모른다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영화]

글 입력 2021.09.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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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어느 날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라고 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내 기억은 어떠냐면서. 어머니는 공부를 하라고 하진 않으셨지만, 공부를 하지 않을 거면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정말로 그러고도 남을 분 같아서, 학교를 그만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몰랐겠지만 조금 무서웠다곤 말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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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학교를 보내달라고 하는데 어머니 후쿠시마는 학교를 뭣하러 가냐며 가지 말라고 한다. 실제로 아키라, 쿄코, 시게루, 유키 네 남매 중 아무도 학교에 간 사람이 없다. 어머니는 아빠 없는 아이들이 가면 괴롭힘만 당할 뿐이고 학교를 가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이 누구 있냐는 말에 한참을 대답하지 못하다가 두 명 정도 이름을 댈 뿐이다. 물론 그들이 정말 학교를 가지 않고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교육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학교를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원한다면 집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집 밖을 나갈 수 없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첫째인 아키라가 밖을 나갈 수 있는 건 집을 비운 엄마를 대신해서 장을 보고,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열두 살 아이가 능숙하게, 침착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된 이유가 하루 종일 집을 비우고, 종종 홀연히 돈을 두고 사라지는 엄마 때문이라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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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겐 아이들보다 자신의 행복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금방 자주 바뀐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아키라는 '또?'라면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했는지 묻자 얼버무리며 나중으로 미룬다. 아이가 네 명이나 있다는 이야기를 숨긴 채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만나는 건 좋다. 아이가 있다고 해서 사랑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의 끝에는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이 생겼다. 아키라의 아버지는 공항에서 일을 했고, 쿄코의 아버지는 가수 준비를 할 때 만난 음악 프로듀서이고, 시게루와 유키의 아버지로 짐작되는 인물은 나오지만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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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가 마음 아픈 건 쉽사리 화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참을 수 없어 하는 소리가 '변덕스럽다'고 퉁명스럽게 외치는 정도. 어머니는 논점을 회피한다. 자신과 아키라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문제라면서. 하지만 아이들이 배를 곯고, 뛰어놀지 못하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차단해두고선 자신의 행복만을 찾는 건 아버지와는 별개로 위선적인 행동이다. 그녀가 아키라에게 남은 가족들을 부탁한다며 두고 간 돈은 4명의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점점 돈이 줄어들 때마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순진한 가족들을 보며 혼자 불안감을 다 안고 있는 아키라를 보면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빨리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후쿠시마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일삼았다. 그녀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돈이 없어 아키라가 머쓱하게 그녀의 전 애인들에게 돈을 빌려 겨우 버티고 있을 때쯤 돌아와선, 크리스마스까지는 돌아온다는 약속도 저버리고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따뜻한 밥 대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가스, 전기, 물이 끊긴다. 궁여지책으로 공원에 있는 식수대 물로 씻고 마시는 건 해결하고, 편의점에서 폐기된 삼각김밥으로 연명하는 어느 날 때쯤에야 그녀의 이름으로 돈 봉투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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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 아이들이 호적에 없기 때문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서류상으로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이 점이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 영화가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전에 흩어진 적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힘들지만 함께 있는 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에만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대로 어른이 되는 걸 두고 보기만 하는 건 왜인가.


일본은 초중등교육이 의무교육, 무상교육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모두 학교를 가야 할 아이들이기에 추가적으로 각종 비용이 들겠지만, 아이가 호적에 등록되어 있다면, 후쿠시마 혼자 아이들을 보살피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추가적인 지원이 뒤따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없다고 왕따를 당하는 게 두려워 학교를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 아이를 낳기 전에, 혹은 낳고 나서 학교를 보내기 전에 결론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아키라, 쿄코, 시게루와 유키에게 학교는 허락되지 않은 곳인 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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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웃는 순간도 손에 꼽고,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것들을 하느라 시간이 모자라다. 가족들에게는 어머니가 일 때문에 못 온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행방을 찾을 때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태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던 남자인 듯한 그 사람과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는 걸 알았을 때 혼자 무너져 내렸다. 전화를 걸 때마다 절망감이 배로 늘어났다. 가족들 누구에게도 엄마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어린 유키는 생일에 엄마가 올 거라며 한밤중까지 기다렸으니까. 의자에서 떨어진 유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 유키를 직접 하네다 공항 근처에 공터에 묻고 돌아온다. 밤을 꼬박 새워 직접 땅을 파고, 어느새 전보다 커버린 유키를 큰 캐리어에 넣어서. 유키의 죽음 이후에도 어머니에게 전화했지만 역시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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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은 '아무도 모른다'지만 눈여겨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가스와 전기, 물이 끊기고, 집세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아키라와 잠시 어울리던 친구들. 집세가 들어오지 않아 무심코 들러본 집주인이 광경을 보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들과 사장님, 아키라에게 야구 유니폼을 입혔던 감독님. 학교를 다니지만 괴롭힘 때문에 힘들어하던 사키도. 하다못해 공원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갈 때 만났을 이름 모를 사람들도 나날이 넝마같이 변해가는 옷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키라와 아이들이 힘들게 지내는 걸 아무도 모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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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람들을 포함해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건 아이들이 드러내지 않은 속마음이 아닐까. 아이들의 일상을 보고 있다가도 놓치기 십상이다. 아이들이 눈에 띄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들도 자신의 속마음을 잘 모르거나, 일부러 모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학교 주변을 서성이는 게 아니라 학교 안을 들어가고, 자기 발 크기보다 이제는 작아진 신발이 아니라 하얗고 큰 신발을 신고 싶은 마음. 허기짐에 종이를 씹지 않고 든든하게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 응석 부리고 화내고, 울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를,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 간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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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어머니의 선택이 하나쯤은 옳았을까? 혼자였다면 와르르 무너졌겠지만, 함께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씩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고, 긴 겨울의 끝에 새해가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의 거짓말은 앞으로 달라지지 않을 무기력함과 더해지고, 아이들의 보이지 않은 상처는 하염없이 짙어질 뿐이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음 거짓말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우우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내겐 잘못이 없다고 했잖아

나는 좋은 사람이라 했잖아

상처까지 안아준다 했잖아

거짓말 거짓말 음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

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음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우우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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