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이를 이어주는 人비트人: 인디애니페스트 2021

글 입력 2021.09.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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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7회를 맞는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 인디애니페스트2021를 다녀왔다. 인디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첫 방문이다. 팔목에 ‘인디애니페스트’라는 형광 연두빛 팔찌를 차고, 관객상 투표용지를 말아 쥔 상태로 잔뜩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입장을 대기했다.

 

필자는 독립 애니메이터들 작품 대상인 ‘독립보행2(Independent Walk)’과 개막작 ‘죽이고 떠나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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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비트人


 

영화관 입장에 앞서 주위를 둘러보니 인디 애니페스트가 이번에 내세운 슬로건 ‘人비트人’가 새겨진 사진 촬영을 위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人비트人, 영어로 변환해보자면 in between은 ‘개재하는, 중간에’라는 뜻을, 애니메이션 용어로는 ‘키프레임 사이에 들어가는 프레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느낌이랄까, “또 한 번 보고 듣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이를 이어주는 인디 애니페스트”.

 

펜데믹 이후로 연결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가 이어져왔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슬로건이었다.

 

 


 

 

인디애니페스트 공식 트레일러를 살펴보면 ‘PICTURE’이라는 단어가 제시되고, 연필 모양의 물체가 다수로 쪼개진다. 연필을 창작의 기본 도구로 설정한 것이 인디 애니의 특성과 어우러졌다. 트레일러를 연출한 김강민 감독은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너와 나의 인비트인을 완성하는 것뿐이며, 다시 연필을 들고 그 작업을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작가-관객의 교류, 작품-관계의 소통, 애니메이션-음악, 영화를 뛰어넘는 확장의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는 의도가 짧은 트레일러와 슬로건을 통해 깊이 전달된 것 같다.

 

 

 

독립보행



 

비잇, 나무 – 이현미

건전지 아빠 - 전승배

피넛팩토리 – 김성민

먼지차별 - 윤다솜

다시 시작 – 강민

부적합 – 윌김

계란 카레라이스 – 서지형

울렁울렁 – 조예슬

육식콩나물 – 서새롬

오페라 – 에릭오

 

 

10개의 작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상영에 앞서, 각 작품의 상영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응원을 부탁드린다는 안내가 눈에 띄었다.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작가들의 참여를 통해 영화제를 만들고 운영해왔으며, 독립, 실험, 열정, 비전의 가치를 실현에 힘쓰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한 작품 당 짧으면 2-3분, 길면 20분에 가까운 이야기가 연속해서 상영되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짜인 흐름과 구성은 몰입도를 유지시켰다. 앞선 안내 멘트 덕분인지 한 작품이 끝을 맺을 때마다 잊지 않고 박수로 회답하는 관객들의 태도에도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 묻어나서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상업적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서사가 진행되다보니 메시지는 함축적인 장면들이 많았다. 사실 이런 식으로 인디 애니메이션을 이어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대사도 없는 작품들이 다수였기에 처음에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끝을 맺은 출품작들도 있었다. 그러나 진행 흐름에 익숙해지며 차츰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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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이었던 작품 중에 하나는 계란 카레라이스였다. 사실 그 이후로 올해의 주목해야 할 작품으로 지정된 <육식콩나물>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무언가 따듯함이 필요한 순간이었기에 작 중 인물이 타닥타닥 채를 썰고 요리를 하는 모습이 평온하게 다가온 것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지난 일들을 생각 하자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연출 의도를 찾아보니, 카레에 있는 강황은 나쁜 기억을 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힘든 일들의 순간과 카레를 만드는 과정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나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달그락 달그락 요리를 하는 장면을 보고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대사가 함께 떠올랐다.


 

요리가 왜 좋은지 알아?

 

왜 좋은데?

 

직장 일은 예측 불허잖아. 무슨일 생길지 짐작도 못하는데 요리는 확실해서 좋아. 초코, 설탕, 우유, 노른자를 섞으면 크림이 되거든. 마음이 편해.


영화 <줄리 앤 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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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카레라이스>는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작품이라면, <육식 콩나물>은 함께 간 친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페이크 다큐 느낌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기괴함이 신선했는데, ‘오직 즐거움을 위해 공포를 찾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정체 모를 괴생물에 관한 블랙 코미디’라는 시놉시스를 내걸었다.

 

공포영화와 놀이동산 등 공포와 잔혹한 판타지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모순을 ‘육식콩나물’을 통해 보여준 작품이다. 잔뜩 충혈되었지만 입만은 기괴하게 비틀어 웃고 있는 그림체는 스산함을 극이 끝날 때까지 끌고 갔다. 글을 쓰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작품이었다.

 

 

 

개막작, 죽이고 떠나라



 

 

주인공은 소중한 이들을 잃은 후 절망에서 벗어나 시간이 멈춰진 채 소중한 이들이 모두 살아있는 기억의 나라로 숨어든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도시는 그의 상상 속에서 성장하던 어느 날, 주인공은 영원함은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그의 상상 속 캐릭터들과 함께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죽이고 떠나라(Kill It and Leave This Town>은 오타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을 비롯하여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폴란드의 마리우스 빌친스키 감독의 장편 화제작이다.

 

기괴하고 그로데스크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은 그 분위기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에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절망에 빠진 주인공의 상실감이 오롯이 전달되는 작품이었다. 내용적인 부분보다도 스타일에 눈길이 갔다.

 

인디 애니페스트는 동시대 독립애니메이션의 이슈를 만들고, 자신의 창작물을 선보일 기회가 없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상영의 기회를 제공하고, 제작을 장려하며 한국 독립 애니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특히 애니메이션 창작 작업이나 관련 분야 진출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배움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글만이 할 수 있는 일, 음악만이 할 수 있는 일,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듯이, 애니메이션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수많은 창작자들이 펼칠 그들만의 세계와 상상력이 기대가 된다.

 

인디애니페스트의 지속과 발전을 깊이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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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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