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뜻한 차와 차가운 밤. [사람]

글 입력 2021.09.1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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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에 가면 메뉴판을 보지 않고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던 나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커피를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커피… 절대 버릴 수 없다.)내가 왜 다른 음료보다 차를 선호하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효리네 민박.

 

효리네 민박은 내가 즐겨봤던 프로그램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효리가 운영하는 민박으로 배우자인 이상순과 함께 등장한다. 효리네 민박을 보면 차를 마시는 이효리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극 모습이 멋있었다.

 

이효리가 먹고 입고 말하는 것들이 대한민국을 들어다 놨다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이효리가 마셔서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효리네 민박 속 차를 마심으로 차분하고 자신을 다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만큼은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을 뜨거운 차의 목 넘김처럼 아주 천천히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다.

 

 

두 번째, 플라시보효과.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만 외치던 사람이었다.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 일하면서 커피, 밥 먹고 나서 커피를 마셨다. 몇 잔을 마셨는지 계산을 하지 않고 먹는다면 아마 물의 하루 권장량만큼 마셨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 단시간에 에너지가 생긴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사실 그것은 허구였다. 프라시보효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사실을 깨닫고 커피를 조금씩 줄였다. 하지만 그동안 마신 버릇이 있기 때문에 커피를 대체할 만한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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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20:25분인 이 순간에도 나는 차를 마시고 있다. 나는 밤에 차를 마시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차를 마시면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들고, 지친 낮의 기운이 씻겨진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차가운 밤이지만 차는 따뜻한 상반되는 온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깊은 온도 차이를 느끼기 위해서 내가 정한 차를 마시기 전에 해야하는 행동과 마시면서 해야 하는 행동들이 있다.

 

먼저 차를 마시기 전에 해야하는 행동은 단 한 가지이다. 샤워하기. 나는 앞으로 말할 어떤 행동들보다 샤워하기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내가 차를 마시는 이유는 내면의 차분함, 깨끗함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외면이 깔끔하게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내면의 차분함과 깨끗함은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그러니 차 마시기 전 밤에는 꼭 몸을 정갈하게 하길 바란다.

 

샤워했다면 준비를 끝이 났다. 차를 마시기에 적당한 컵에 준비한 티백을 넣고 부글부글 끓는 물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담는다. 티백이 뜨거운 물과 만나 차의 색이 번지는 것도 작은 뿌듯함을 가져다준다. 따뜻한 차가 준비되었다면 집에서 가장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지금부터는 차를 음미하면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막상 쓰려고 하니 앞으로 말할 행동들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대 강요가 아니다. “나만의” 차를 즐기는 방법이니 심각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첫 번째, 음악 감상.

 

우리가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지않은 이상, 사실 독립을 해도 옆집, 윗집, 아랫집 소음에 나만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쉬운 일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하면 그곳이 어디든 나만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공간을 차와 함께 즐긴다. 차 마실 때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감정이 담은 노래를 찾게 된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에 따라 듣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음악을 찾아 듣는다. 귀로는 이어폰 속에 흘러나오는 가사를 곱씹고, 입으로는 방금 우러난 차를 천천히 넘긴다.

 

 

두 번째, 책 읽기.

 

어떤 책이든 좋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함에 있다. 나는 하루를 보내다가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런 생각을 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게이트인 책으로 들어간다. 소설이라면 책 속의 배경과 풍경의 묘사 그리고 캐릭터이 나누는 대화에 묵언으로 참여하고, 에세이라면 작가와 깊은 대화를 끊임없이 나눈다.

 

요즘은 긴 출퇴근 시간으로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책을 자주 읽는다. 읽다 보면 가슴에 와닿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그 부분을 바로 밑줄 긋지 않고 책의 모퉁이를 접어둔다. 그렇게 모퉁이가 접힌 페이지를 펼치면서 차를 마시며 그 문장을 찾는다. 한 페이지를 꼬박 다 읽고 찾은 문장에 자를 놓고 파란 볼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내가 왜 이 문장에 감명을 받았는지 생각하고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세 번째, 그림 그리기.

 

보통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린다고 이야기를 하면 “오~ 잘 그리시나 봐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대답한다. 모든 행동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다. 그렇다. 잘 해야하는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저 스케치북 위에 펜이 닿는 대로 쭉 선을 이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도 잘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따뜻함을 한 모금 입속에 머금으면서 떠오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잉크가 묻는 대로 흘리면 된다. 자연스러움에 도대체 무엇이냐,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움이 되지 않는다면 찍어둔 사진 중 하나를 끄적여도 좋다.

 

명화를 만든다기보다 추억, 현재의 나를 표현하자는 것이니까.

 

 

네 번째, 일기 쓰기.

 

나는 매일 밤에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쓰기 전에 차의 한 모금으로 곳곳으로 퍼지는 뜨거운 온도를 느끼며 하루를 되돌아본다. 내가 어떤 감정을 안고 있었는지 어디서부터 불어온 감정인지 뜨거웠던 차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 뜨거움을 잃은 차는 아쉽지만,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차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특별할 것 없지만, 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특별하다. 한 모금의 공상, 한 모금의 은율 그리고 한 모금의 서사를 느낄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시간을 더 풍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이 어느새 차를 마시기 위한 이유가 되었다.

 

차를 마시며 나에게 솔직해지면서 어느 날은 극한 외로움을 또 어느 날에는 흥을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들이 편히 나에게 머물다 가기를 도왔다. 그렇게 차가운 밤에 따뜻한 차를 마시면 미지근한 내가 되었다.

 

 

[황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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