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2살 모태솔로의 한풀이 [사람]

글 입력 2021.09.0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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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나오는 성경 말씀이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씀 속 사랑은 순전하게 이성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이웃 간의 사랑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너 사랑해봤어?”라는 질문은 “너 영화 봤어?”라는 질문만큼이나 모호할 수 있기 때문에 “너 에로스적인 사랑해봤어?” 내지는 “아가페적인 사랑해봤어?”라고 바꾸어 묻는 것이 옳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너 사랑해봤어?”하고 묻는다면 “물론이지. 스토르게(Storge)적인 사랑도 해봤고 아가페(Agape)적인 사랑도 해봤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통념상 “너 사랑해봤어?”라는 질문은 이성 간의 사랑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답변은 한다면 묻는 이는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닌데’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으며 이 글 또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통념에 기초해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은 예술에서, 특히 대중문화예술에서 흔한 주제로 쓰인다. 음악이나 영화에서도 이성 간의 사랑은 단골 소재다.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모태솔로인 나는 그런 가사와 이야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한 여자의 외로움을, 한 남자의 울음을, 그저 머리로만 이해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자기 성찰적인, 사랑이 배제된 가사의 음악을 듣는다. 또, 보고 싶은 로맨스 영화가 있어도 되도록 나중에 보려고 아껴두고 있다. 이입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눈물 펑펑 흘리며 향유할 수 있도록.

 

연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원치 않게 공유하게 될 때면 보통 상대방의 말과 표정에는 놀람과 측은함이 공존한다. 그 후엔 멀쩡하게 생겨서 왜 모태솔로냐는 둥, 네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둥의 말을 조언 삼아 건넨다. ‘그래, 나는 네가 한 그런 가벼운 연애 말고 더 진실한 사랑을 할 거야’라며 스스로 토닥여보지만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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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로 돌아가 보면 나를 좋아하는 티를 내는 친구들도, 고백을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싫어서, 혹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지 못해서 그 관계들은 연애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타올랐던 그들의 감정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일련의 일들로 인해 퇴색됐다. 서로 보기 불편할 정도로.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살았다. 지금은 공부하고 대학교의 핑크빛 캠퍼스에서 연애하자는 식으로 말이다.

 

연애 한번 하지 못하고 남녀공학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교에 가서도 썸 한 번 없었다. 그저 동기들과 신나게 놀며 지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마음 한구석엔 허함이 남았다. 사랑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1년, 2년, 지나고 연애할 수 없는 극단적 장소인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는 연애하고 싶다는 감정이 폭발했다. 여자 친구가 있는 훈련소 동기들은 인터넷 편지가 책을 엮을 수 있는 분량으로 왔다. 내심 부러웠다. 근무를 서면서 성격 더러운 저팔계를 닮은 선임이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나는 뭐하고 살았지’하는 자학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성인이 되기 전 나에게 모태솔로는 일종의 자랑스러운 타이틀이고 생각했다(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구차하게 만드는 단어가 돼버렸다. 모태솔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 마음 맞는 분을 못 만난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문제가 있으니까 아직도 연애를 못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피해 망상이다. 타인이 이렇게 생각할 거라는 지레짐작은 ‘내가 사람을 지치게 하나’, ‘재미가 없나’, ‘매력이 없나’ 등 스스로 열등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런 사실을 일러준 적이 없으니까.

 

연애를 못해봐서, 사랑을 못해봐서 로맨스 영화를 보지 않고 사랑 노래를 듣지 않는다니, 웃프기만 하다. 거울을 보면 스스로가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온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을 하고자 노력하는 일은 아직까지 없을 거 같다. 에로스적인 사랑을 하지 않았을 뿐, 다른 사랑은 해봤고, 해왔으니까.

 

고린도전서 말씀처럼 포괄적인 의미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부모를 사랑하는 것 말이다. 내겐 이러한 종류의 사랑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마음에 맞는 이성과의 사랑도 언젠가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적지 않을 모태솔로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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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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