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녕 나의 고양이

글 입력 2021.09.05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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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의 가족이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날이 생각난다.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나는, 엄마가 보낸 문자 속 사진으로 너를 처음 봤다. 넌 작았고, 털이 삐죽삐죽 솟아있었고, 줄무늬 옷에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항상 강아지만 키워오던 우리 집에 온 첫 고양이, 그게 너였다.


너를 실제로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간 본가에서 처음 본 나를 반겨주던 너. 마치 강아지처럼 살갑고 애교가 많던 너. 사람을 좋아하던 너.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면 언제고 나를 봐주던 너. 아무렇지 않게 나를 밟고 지나가면서도, 잠이 오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잠을 자던 너. 부드러운 이불을 좋아했던 너. 땡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던 너. 내 위에 누워 꾹꾹이를 해주던 너.


너는 작고 여렸지만, 누구보다 강했다. 우리 집에 함께 왔던 세 명의 친구들이 먼저 먼길을 떠날 때에도, 너는 강하게 살아남았다. 너의 강한 생명력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큰 아픔도 견뎌낸 너이기에, 오래오래 나의 가족으로 살아갈 줄 알았다. 강한 너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사랑스러운 활력을 뿜어내었다.

 

본가에 다녀오면 나의 휴대폰 갤러리는 항상 너로 가득 차곤 했다. 잠을 자는 너, 밥을 먹는 너, 뒹굴거리는 너, 꾹꾹이를 하는 너, 애교를 부리는 너.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장이라도 더 많이 찍어둘 걸 그랬다. 맨날 같은 사진이라고, 휴대폰 용량이 부족하다고  지워버리지 말걸 그랬다.


나는 참 이기적이었다. ‘이 정도면 됐지’라며 계산적인 사랑을 주었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쁘다’며 너와의 시간을 점차 줄였다. 추우면 춥다는 핑계로, 더우면 덥다는 핑계로,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렇게 줄어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었다. 맹목적이고 대가 없는 너의 사랑이 참 고마우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었다. 이름만 불러주어도 갸르릉 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애교를 피우던 네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다.


얼마 전, 네가 먼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나에게 인사도 없이 갔는지, 작고 귀여운 너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너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났다. 더 많은 장난감으로 놀아줄걸. 네가 좋아하던 간식도 더 많이 줄걸. 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걸.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널 보러 자주 내려가지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그리워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한동안 참 자주, 많이 울었다. 네가 떠오르면 자동으로 눈물이 났고, 고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집 앞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던 날에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잠을 설쳤다. 너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매일 꺼내어봤다. 너는 여전히 너무도 사랑스럽게 야옹거리는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기적인 나는 그래도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기적이게 내 생각만 하며, 혼자 우는 밤이 싫어 친구를 부르고, 약속을 잡고, 다른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이제 길에 지나다니는 고양이를 봐도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그냥 네가 좀 더 많이 보고 싶어질 뿐. 이렇게 너의 이야기를 글로도 쓴다.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오지만, 참을 수 있다. 이토록 이기적인 나이지만, 아직 못한 일이 하나 있다. 나만큼이나 너를 좋아해 주던 나의 친구들에게, 너의 소식을 전할 용기가 나질 않아. 아직도 전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말해줄래. 아직은 너를 완전히 보내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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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야, 본가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대. 처음 네가 우리 집에 왔을 때처럼 작고 여린 아기 고양이가 찾아왔대.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엄마도 아빠도 동생들도, 너를 보내고 참 많이 힘들어서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고 싶었는데, 그 작은 생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대.

 

나는 아직 그 아이를 만나지 못했어. 너를 처음 봤던 그날처럼 엄마가 보낸 문자 속 사진으로만 봤어. 이번에 본가에 내려가면 그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해. 많이 쓰다듬어주고, 맛있는 간식도 주고, 많이 놀아주려고 해. 너에게 못해준 많은 것들까지 그 아이에게 해주려고 해.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너보다 그 아이를 더 사랑해서가 아니니까. 뒤늦게 후회하고 나를 원망하지 않기 위함이니까.

 

철수야, 여전히 넌 난의 고양이고, 나의 철수야. 철수야, 많이 보고 싶다. 거기선 아프지 말고, 더 많이 행복하길 바라. 가끔씩 네 생각하면서, 너와의 사진을 꺼내 보면서, 먼 훗날 다시 만나길 기다릴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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