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창동 감독의 '시' [영화]

무엇을 위해 그녀는 시를 쓰는가
글 입력 2021.09.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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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할 수 있는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친구에게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푸념을 늘어놓던 저녁, 가벼워진 마음을 느끼며 잠을 청할 때는 알지 못했다. 살다 보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을. 어디에서부터 망가지고 뒤틀렸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 털어놓을 수 없는 불행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미자 또한 그랬다. 파출부 생활을 하며 생계에 허덕이는 정도의 불행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잘거리며 덜어낼 수 있는 불행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든 삶에도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었다. 그녀의 세상이 일련의 사건들로 망가지기 전까지 말이다.

 

미자의 세상은 그녀의 손자로부터 망가지기 시작한다. 손자가 6명의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이고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정신적 충격으로 그녀는 말을 잃어간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알츠하이머를 진단받는다. 그녀는 서서히 단어를 그리고 문장을 잊어간다.

 

이제 미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앓는 동시에 말을 할 수 없어지는 질병을 앓는다. 말을 잃어가는 미자는 시를 쓴다. 그녀는 왜 그리고 무엇을 쓰려 하는 것일까.

 

 

 

#1


 

극의 초반 그녀는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시인에게 묻는다. 시인은 잘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후 그녀는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지만,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지는 못한다. 햇살에 찰랑거리는 나무와 노래하는 새들을 보며 그저 그들이 주는 외면적 아름다움에 심취해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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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사건이 발생한 후, 미자는 다른 가해자 부모들과 사건을 어떻게 덮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한다. 가해자 부모들의 모임은 5명의 아버지와 그리고 미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중 미자는 유일한 여성이자, 딸을 잃은 피해자의 부모가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다.

 

5명의 남성은 사건을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대한다. 피해자에 대해 간단한 위로만 건네고 이제 중요한 것은 사건을 덮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남성들 사이에서 미자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희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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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미자가 시를 대하는 태도는 변한다. 그녀의 세상은 갈라졌고 그 틈으로 세상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첫 시는 살구를 통해 쓰인다. 빛 좋은 살구의 외면이 아닌, 땅에 떨어지고 짓밟혀 으깨지는 살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를 다음 생을 준비하는 살구의 몸부림으로 인식한다. 세상의 더러움과 추악함을 몸소 겪고 난 후, 비로소 그녀는 잘 볼 수 있게 되었고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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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는 시작된다. 그녀가 살아온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그리고 희진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2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대체로 삶을 이해하기 위한 것임은 확실하다. 시 또한 문학의 한 범주이므로 이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는 1인칭의 문학이다. 시에서 화자가 누가 등장하던, 시를 읽으며 시인의 모습을 지워낼 수는 없다. 시는 진실성이며 삶이 곧 시라는 관념은, 시라는 장르를 이해하는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유용한 관념이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한 편의 시를 뜻하는 'Poem' 대신 문학의 장르로서의 시를 뜻하는 'Poetry'를 사용한 이유는, 미자 또한 문학으로서 시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미자가 희진을 위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보는 것을 넘어 희진과 완전히 동일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녀의 시가 진실한 용서를 구하는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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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희진이 뛰어내린 다리로 향한 것도, 노인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 이유도 희진과 완전히 동일화되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영화는 미자가 쓴 <아네스의 노래>가 낭독되며 끝맺는다. 미자의 목소리로 낭독되던 시는 중반부에 희진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마지막 장면에 보이는 희진의 미소는 미자가 희진을 위로할 만큼 완벽히 동일화되었음을 암시하고, 미자가 희진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3


 

이창동 감독의 <시>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사건 당시, 이창동 감독은 영화 <밀양>을 제작하고 있었다. 성폭행 사건을 들은 감독은 영화 제작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사건이 벌어진 도시에서, 현실을 외면한 채 영화를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은 <밀양>의 제작을 포기하는 것 대신 <시>를 제작하여 목소리를 내는 쪽을 택했다.

 

아무리 뛰어난 창작물이라도, 현실의 도피처로 전락해버린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감독의 인식은 미자의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미자는 시를 완성함과 동시에 은폐될 뻔했던 손자의 사건을 경찰에 직접 고발한다. 그녀는 시를 통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고, 이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단 한 편의 시를 써 내려가기 위해 미자는 진실을 은폐시키려는 힘과 싸워야 했고, 그녀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와도 싸워야 했으며, 사랑하는 손자를 스스로 고발해야 했다. 이는 영화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게 <시>를 제작했다는 이창동 감독의 말이 떠오르게 한다. 두 사람에게 시와 영화는 단순한 활자와 영상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잡기 위한 연결 통로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예술은 진통을 수반한다.

 

진통을 수반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올바로 쓰고 있는지, 쓰는 만큼 살고 있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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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균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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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고구마
    • 문학이 현실의 도피처가 되면 안된다는 말이 공감이 되네요 ㅎㅎ
      이렇게 영화를 보고 느끼는 깊이가 다르다니 배우고 갑니다
    • 0 0
  •  
  • 제인
    • 주인공이 돋보이지 않고 그저 군중 속 한 존재로 찍은 독특한 화면. 느리게 미자를 따라가며 그의 제대로 된 행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정순신 사태가 발생한 요즘, 더욱더 봐야 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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