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향기를 '끄다' : 오브뮤트 - 슬리핑 듀(Sleeping dew)

향기를 '뮤트'하는 방법
글 입력 2021.09.0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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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말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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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 네명 중 한명은 비염인이다. 각종 알레르기들과 미세먼지 사이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간종에게 호흡기 질병은 숙명일 것이다. 대부분의 비염 환자들은 코의 기능이 저하된다. 누우면 코가 막히고, 서도 코가 막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니 후각의 상태는 말할 여지조차 없다.

 

그리고 나 역시 만성 비염을 달고 산다. 그런데 마치 아스팔트 사이를 기어코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는 들꽃처럼, 나는 숨 쉬기도 버거운 와중에 예민한 후각을 타고났다. 어릴 적에는 콜라와 사이다를 후각으로 구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지금도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내가 '향기로 진행되는 무언극'이라는 슬로건에 관심이 동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향수면 향수일 것이지, 후각으로 어떻게 연극을 한다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 사람은 있어도 연극을 '맡으러' 가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백 번 양보해서 공연으로 그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우리는 공연을 '보고 들으러' 가지 '맡으러' 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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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 is better than words.' 침묵이 말보다 낫다는 슬로건이 담긴 오브뮤트의 포장재는 나의 의문을 한층 더 배가시켰다. 향기는 음성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침묵이다. 그리고 '침묵'은 브랜드명인 '뮤트'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브뮤트의 논지는 향기가 말보다 낫다는 것일까?

 

 

 

불을 끄다, 향기를 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브뮤트는 사라지고 남은 것의 미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솔직히 평가하자면 오브뮤트 작품 자체의 향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필자가 후각에는 민감하지만 향수 전문가는 아니다보니 대략적인 설명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오브뮤트는 유명한 브랜드의 보디 스프레이처럼 뿌리는 순간 은은하면서 깊은 느낌을 주지도, 들이마시자마자 대자연 속에 들어서는 웅장한 기분을 주지도 않는다. 톡 쏘는 향을 시작으로 코가 얼얼해지고, 얼얼함이 가시고 나면 향기가 '사라져' 있다. 나는 여기서 '사라짐'에 대해 주목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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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향수를 고를 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는가?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제품을 허공에 뿌린 직후, 향이 태어나는 3~5초의 시간동안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맥락에서 오브뮤트 작품을 올리브영 등 대형 매장에서 시도해보았다면, 아마도 별 볼일 없는 제품이라고 간과한 채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집에서 베개에 무턱대고 작품을 뿌린 후, 얼얼한 코를 문지르며 향이 '사라짐'을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작품에 담긴 예술적인 의미를 깨달았다. '향기가 곧 뮤트'인 것이 아니었다. '향기가 뮤트되는 순간', 즉 '향기가 사라지는 순간'에 주목해달라는 뜻이었다.

 

오브뮤트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그것의 향도, 용기 디자인도 아니다. 오브뮤트의 장점은 특이하게도 향이 사라진 후에 나타난다. 톡 쏘는 향이 휘발되고 나면, 우리의 콧속에는 은은한 잔향이 남는다. 그리고 이것이 비로소 제품 소개에 적혀 있었던 자연에 있을 법한 기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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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그 자체가 지속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꺼졌다(mute)'. 하지만 마치 모든 내용이 끝나 조명이 꺼진 후에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되는 연극과 같이, 오브뮤트는 향이 꺼진 후에 비로소 그 은은함을 전하는 작품이다.

 

불을 끄면 일정 시간이 지나 서서히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방 안 물체들처럼, 향이 꺼진 뒤 서서히 그 잔향을 풀어내는 오브뮤트만의 매력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잊지 말자. 모든 것은 향이 꺼지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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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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