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류세 살아가기 - 푸른 유리구슬 소리 : 인류세 시대 애도하기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8.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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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주관하는 전시 《푸른 유리구슬 소리 : 인류세 시대 애도하기》는 점점 커져가는 오늘날의 기후 위기에 대한 다양한 예술적 반응들을 담고 있다. 총 12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 자연과 환경, 인간의 개입과 그로 인한 재앙이라는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누군가에게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기억을 매개하는 커다란 배경이 되어주기도 하며, 혹자에게는 인간 사회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고스란히 피해 입은 공간이기도 하다. 작가 한 명 한 명의 이색적인 미술적 상상력 속에서 자연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각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전시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기 전에, 이번 전시의 제목에서 제시되고 있는 ‘인류세(anthropocene, 人類世)’라는 개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46억년 처음 지구가 탄생한 이후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지질 연대를 구분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의 ‘대(era)’, 쥐라기, 백악기 등의 ‘기(period)’, 플라이스토세, 홀로세 등의 ‘세(epoch, 世)’와 같은 연대 구분이 여기서 등장한다. 지구의 전반적인 기후, 지질학적, 고생물학적 특징을 기반으로 이러한 분류를 나누는 것 이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지하자원의 남용, 대기 오염과 환경 파괴가 진행되며 지구는 지질학적,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탄소배출량이 급증하고 해수와 대기의 온도가 높아지며 합성폐기물이 대지를 채워나가고 있는 상황, 이러한 지질학적 변화로 인해 이전에 없던 생물 돌연변이와 감염병이 새로 발생하기까지 하였다. 현대인들의 무분별한 산업활동으로 인해 오늘의 지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새로운 국면을 ‘인류세’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인류세의 시대에 새롭게 돌입한 이 시점에서, 자연과 인간은 새로운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기온 및 해수면의 상승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탄소 저감 정책은 어느 나라도 소홀히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재계와 환경단체의 충돌 속에서 각 국가들은 최선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현재의 코로나 시국 역시 ‘인류세’적인 문제라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연하게 된 원흉으로 박쥐 생태계의 변화, 혹은 생물학 연구실의 바이러스 유출 등 여러 원인이 지목되고 있는데, 이들 모두 과학기술의 발전 혹은 지질학적 변화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인간의 경솔한 행동으로 환경이 변화하고, 이 영향은 인간 사회로 되돌아와 개인의 인간관계와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한 환경보호 슬로건 너머의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파급에 대한 깊은 성찰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12명 작가의 전시작들은 각기 다른 성찰을 통해서 이번 전시를 하나의 커다란 연작시로 완성시켰다. 자연 현상의 다양한 단면들, 그리고 작가의 사유가 낳은 독특한 작품들을 통해서 관객들은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몸소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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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2명의 작가 중 세 작가의 개별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의미있는 미술적 체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인류세 시대 애도’라는 커다란 주제 내에서 세 작가가 제시하는 분위기, 작품의 장르, 메시지의 층위는 상당히 다르다. 각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오늘날의 인간과 자연에 새롭게 접근해보고자 한다.

 

 

 

구은정, 뜻밖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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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정, <뜻밖의 궤도>, 2021, 수집한 오브제, 퍼포먼스, 가변크기

 

 

구은정 작가에게 있어서 자연은 과거의 파편적인 기억들을 현재로 이어주는 커다란 배경이다. 작가는 베트남의 사막지대인 무이네를 여행하며 느꼈던 감상들로부터 오브제와 모래가 뒤엉킨 설치예술을 완성해낸다.

 

사막지대를 걸으며 작가는 모래사장을 걸었던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과 조우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무이네의 자연 공간은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중첩시켜 재생시키는 무대가 된다. 따라서 자연은 과거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살아가야하는 미래의 나에 대한 총체적 사유의 매개체가 된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각각의 시간 속 서로 다른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은 유일한 것이다. 모든 자연 공간은 동일한 우주적 질서로부터 만들어지며, 모든 자연적 체험은 인간에게 오묘한 동질감을 안겨 준다. 인간은 대자연을 경험한 각각의 시간을 기억하며, 자연을 통해서 자신의 파편적 경험들로부터 종합적인 감상을 이끌어 낸다.


구은정 작가의 자연관은 명확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자연 그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사유들은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자연이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감상자 개개인에게 강하게 환기시킨다.

 

 


강주리,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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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리, <카오스>, 2016-2021, 종이에 펜, 잉크젯프린트,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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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리 작가는 돌연변이 생물들의 이미지를 혼합시켜 정교하게 배치함으로써 생명의 신비와 인간의 욕망, 그 경계에서 사유한다. 강주리가 사용하는 이미지는 다리가 여섯 개인 개, 눈이 하나인 원숭이, 선물용으로 디자인된 하트 모양의 귤 등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돌연변이 모습들이다.

 

작가는 직접 스케치한 기이한 생명체의 이미지를 스캔하고 프린트하여 오려붙이면서 전시 공간 속에 3차원 구조물들을 제작하였다. 이 정교한 작업 끝에 탄생한 커다란 구조물들은 천장과 벽에 매달려 나름의 안정적인 위치를 찾아간다.


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탄생하고, 태어난 이후에는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인간의 눈에 기괴하게 보이는 이들 이미지는, 결국 바뀌어 버린 자연환경으로 인해 이 세상에 탄생했고, 그 나름의 모습으로 세상에 적응하며 생존에 임한다. 사실 이들 이미지로부터 인간의 모습들이 오히려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도 같다.

 

산업의 발전으로 비대해진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들이 최선을 다하여 현재의 인류세를 낳은 게 아닐까. 오히려 산업과 과학과 사회의 발전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수성이 기형화된 것 아닐까. 과학의 발전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수직적인 위계를 조성하였지만, 결국 인간 역시 기형화되어 기이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주리 작가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개별적인 작은 이미지들은 파괴되어 버린 자연의 진상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오늘날 기형화된 인간의 실존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알원, Byebye B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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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알원, Byebye Babe, 2021, 종이 위에 스프레이

 

 

지알원 작가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그래피티 작품으로써 이번 전시에 있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앞서 소개한 두 작가와 약간은 다른 예술적 영역에 속한 것이다. 앞선 두 작가가 보여준 작품들은 기존 미술계의 창작과 전시의 질서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피티 작품은 거대한 도시적 질서를 벗어난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건물과 도시를 충실하게 수호하고 있는 거대한 벽들은 이젤 위에 놓은 캔버스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도시는 과학과 자본의 집성체이고 이는 사회 제도의 합의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들은 필연적으로 충돌하지만, 이들이 이룬 군중은 불특정 다수를 내세워 특정한 합의에 이른다. 불충분한 논의를 뒤로하고 사회가 점점 발달하면서 도시의 규모는 비대해지고 환경과 자연이 파괴되며 인간이 서로 불신하게 된 것이다.


그래피티 아트는 사회적 합의의 범위 바깥에서 만들어진, 소외된 자들의 서브컬처이다. 단단한 사회적 합의를 상징하는 거대한 벽, 이 위에 낙서를 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합의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알원의 작품은 도살장으로 향하는 빽빽한 소 무리의 그림 위에 빨간 스프레이로 ‘JMT’를 새겨 넣었다. 상품으로서의 소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소를 키우는 과정에서 동물권이 무시되는 현장은 비일비재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구제역 등의 감염병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지침을 어기고 수백 마리를 생매장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현장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감염병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자가 격리, 이동 통제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몇몇 국가에서 환자를 방치하거나 타지인을 강제로 격리시키는 상황들은 지알원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모습들과 묘한 동질성이 느껴진다. 더욱이 생활 현장에서 의심자와 확진자에 대한 원망과 불신의 시선들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코로나 상황에서, 기본권의 문제뿐 아니라 불안한 사회공동체의 모습마저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보여준 불안과 불신의 모습들은 한 해 반 동안 진행되었지만, 앞으로 환경 문제는 수십 년 간 지속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코로나를 통해 점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는, 환경 문제를 대응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를 확인하는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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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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