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과외 교사의 기록 [사람]

미스백 이야기, 세 번째 페이지.
글 입력 2021.08.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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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교사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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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꾸준히 과외 수업을 진행해 온 과외 교사다. 현재까지 수업으로 만나 본 학생만 약 20명이니 나름의 경력(?)이 존재하는 교사인 듯 싶다. 처음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높은 시급과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 시간 설정에 혹해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과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과외 교사는 매우 특수한 일자리(?)다. 그룹 과외가 아닌 이상 단 한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그 학생만을 위한 수업을 제공한다. 이때 재미있는 지점은 과외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서로가 좋든 싫든 약 일주일의 간격을 두고, 한 명의 학생과, 단 둘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일정 시간 동안, 이야기(수업)를 나눈다는 것이다. 나아가 해당 학생을 낳고 기른 부모와 주기적인 상담을 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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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특성 탓에 필자는 가끔씩 내가 과외 교사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 관찰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과외 교사'란 직업은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시도해봄직한 조건을 모조리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보면 변화에 무뎌질 것인데, 과외는 주기적으로 만나되 너무 잦지 않다. 여러 명을 대상으로 수업하면 한 개인의 변화에는 무관심해질 것인데, 과외는 단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성인이 된 이후의 인간관계는 상대에 대한 개인의 기호(좋고 싫음)에 따라 맺어지는 편인데, 과외는 거래의 일종으로서 생계/성적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초기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끊기가 쉽지 않다...

 

종합컨대 '생계와 인간적인 교류가 혼합된 상태로 적당히 자주 보는 관계'가 바로 과외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관계인 것이다.

 

 

 

'비정상 수업'


 

편견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필자가 과외 교사로서 학생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믿게 되는 명제가 있다.

 

 
"과외를 구하는 학생은 정상적인 학생일 수 없다."
 

 

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습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들릴 테지만, 낙인찍으려는 마음을 제하고 '정상'의 사전적인 정의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만 생각해보면 위 명제는 필자의 경험상 참일 확률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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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과외를 구한다는 것은 표준화된 교육과정에 불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원에 간다. 학원은 일대다(1:多)로 규격화된 수업을 제공하는 곳으로서 과외보다 찾기도 쉽고, 값도 훨씬 싸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정상 범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계된 커리큘럼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규격화된 교육을 따라갈 수 있다. 수월하게 따라가는 이도 있을 것이고, 힘들게 따라가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보통의 학생들은 그것을 일단 버텨 낸다. 그 체제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해하는, 다시 말해 학원 수업이 겨냥하지 못하는 '정상 범위가 아닌 학생들'이 향하는 곳이 바로 과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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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과외를 구한다는 것은 현재의 학습 역량에 비해 목표가 높다는 것이다. 학습에 필요한 능력은 단기간에 키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적절한 복습을 시켜주어야 길러지는 것이 학습 능력이다. 즉, 중학교 1학년일 때는 중학교 1학년 교과과정을 흡수하고, 중학교 2학년으로 넘어간 후에는 중학교 2학년 교과과정을 흡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놓친 학생들이 자신의 나이와 학습 역량 간의 괴리를 자각한 후 다급히 찾는 것이 바로 '방학 동안 x학년 교과과정 다 떼줄 과외 선생님', 'n개월 만에 1등급 만들어줄 과외 선생님'이다. 1년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는 교육 과정을 2개월 만에 흡수하고자 하는 것, 교육 과정을 다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3~4개월 만에 전국 4% 안에 들고자 하는 것은 목표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이다.

 

 

 

'학생' 뒤에 숨은 문제


  

그럼 이것이 다 학생의 문제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도 처음에 갓 과외 교사가 되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돌림노래하듯 설명해줘도 다음 수업 때면 까맣게 잊어버린 채 순수한 뇌를 내보이는 학생들과 과외 교사를 불량스럽게 대하는 학생들과 공부 시간은 8시간이라는데 성적은 8개월 째 그대로인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것은 학생의 문제다'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과외를 시작한 지 2년차가 넘어갈 무렵 깨달았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엇나감이든, 이유 없이 엇나간 학생은 없다. 필자는 학생의 학업 부진에 이골이 난 나머지, 근본적인 것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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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필자와 같은 과외 교사가 고용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즉, 부모의 비정상적인 학구열을 간과했다. 그런데 이 학구열은 상당히 기괴하다. 제때 교과 과정을 흡수하지 못하여 과외 교사를 통해 뒤늦게 비정상적인 성적 상승을 얻고자 한다는 것은, 학업 부문에서 자녀에게 적기에 관심을 주지 못했다는 것 또는 자녀가 1대 1로 특별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거나 아이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며 키워낸 부모의 비정상적인 양육 방식 역시 간과했다. 필자에게 과외를 받은 학생들은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실제로 필자가 과외 학부모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얘가 제 말을 안 듣는데 선생님 말은 들어요."였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렇게 말한 학부모들은 백이면 백 아이에게 우수한 성적을 너무 강요해왔거나, 반대로 아이의 학업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했던 전적이 있었다. 다시 말해, 부모들은 자신이 해주지 못한 것을 과외 교사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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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온 비정상적인 학생을 데리고 비정상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것은 참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학생들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 입시 체제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성적은 극소수만이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지만 모든 학생이 좋은 등급을 받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협박당하는 사회에서, 공부가 하기 싫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실 '비정상'인 것이 잘못은 아니잖은가. '보편'이라는 틀 속에 모두가 들어갈 수 있다면 세상에 힘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글을 쓰는 필자도, 글을 읽는 당신도 어느 한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비정상'인 면모를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필자는 학생들의 놀라운 제자리걸음에 지쳐 수업비를 환불해주고 싶어질 때마다, 서먹한 부모 대신 나를 붙잡고 한탄을 늘어놓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마다 조용히 내뱉는 말이 있다.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필자는 꽉 막힌 부모님도 성적을 강요하는 사회도 바꾸어줄 수 없는 일개 과외 교사이기에, 이것이 비정상적인 사회에 돌돌 감긴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어린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의 시도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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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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