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조건 없는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 도망가자.

조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굳건함
글 입력 2021.08.2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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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애정을 줄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세상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굳건히 믿고 있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읽게 된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인지, 결이 다른 사람은 아닌지.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 마음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은 마치 유니콘과도 같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 위로의 글귀들은 나에게 입발린 사탕이 되어버린다. 순간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사람들이 더욱 더 스스로 심취하기 위한 주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토록 인간관계에 냉소적인 내가 선우정아의 노래에 곽수진의 그림을 입힌 책 '도망가자'를 보았을 때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이 인간과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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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수많은 반려동물의 영상과 사진이 올라온다. 모든 사진과 영상들이 사랑스럽지만, 특히 나는 반려동물들이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반려인을 위하는 모습을 사랑한다.

 

울고 있는 반려인의 품에 자신을 욱여넣어 어떻게든 체온을 나눠주려 할 때, 아파 앓아누운 반려인을 위해 그들 곁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놓으며 공유할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바로 곁으로 달려와 뺨을 핥아줄 때.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괜찮아," 이야기하며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들은 인간사를 알지 못한다. 회사도, 사회생활도, 삶의 고뇌와 고통도 알지 못한다. 그런 복잡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의 반려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애써 자신의 반려인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장난감, 산책, 친구, 그런 것들을 말이다.


이 도서 속 반려동물은 기꺼이 자신의 반려인을 위해 '도망'을 제안한다. 반려인을 괴롭히는 것이,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너를 괴롭힌다면 그것으로부터 떠나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진심 어린 제안이었다.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도망가자 본문6.jpg



주변에 있는 수많은 지인이 반려동물들과 함께 삶을 보내고 있고, 나 또한 한때 그 무엇보다 귀중히 생각했던 반려동물과 함께 시간을 걸었던 적이 있다. 필연적으로 반려동물을 집에 두고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한참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가 그토록 외면해왔던 '조건 없는 사랑'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많은 순간 부족하다. 상사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하고, 얽히고 꼬여버린 인간관계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과 실력을 의심하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런 어지러운 나날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두 발로 서있을 수 있는 '조건'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어떻게든 주변인들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실력을 더욱 쌓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 수많은 노력 속에서 나의 이름 석 자를 세운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동물들은, 특히 반려동물들은 인간의 시선에서 이야기되는 '조건'을 굳이 자신의 반려인으로부터 찾으려 하지 않는다. 반려동물은 오직 내가 나라는 이유로,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로 아낌없이 사랑을 준다.

 

그들은 나의 존재에 타박하지 않는다. 조금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변함없는 '나'이기 때문이다. 일도, 인간 관계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앞에 서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사랑을 줄 조건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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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망가자' 속 거친 일상에서 벗어나 함께 도망친 반려동물과 반려인은 많은 것들을 마주하고 온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도, 울창하게 녹음진 숲도,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고양이도,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도 마주 본다. 그곳에는 다른 어떤 것도 방해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떠나왔으니 오직 반려인과 반려동물, 서로 존재를 곁에 두고 마주한 모든 것들을 함께 바라본다.


자주 반려동물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지 궁금했다. 혹시나 나를 원망하는 일이 있지는 않을지, 나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싶지는 않을지.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진짜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는 사실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불평 없이 사랑만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도서의 마지막 장에서 함께 도망갔던 반려인과 반려동물은 다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있다. 처음 도망치기 전의 모습 그대로, 침대에 누워, 창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며 말이다.

 

이 장면의 의미는 분명하다. 반려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했던 하루하루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결국 언젠가 다시 지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때에는, 다시 도망치면 된다. 언제든 다시 자신의 슬픈 반려인과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는, 언제나 곁을 지켜주고 있을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 함께 말이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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