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산벚나무야 네 숨기고 있는 그 잎이 좋다 -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 [영화]

하이쿠에 숨겨진 진심과 고백
글 입력 2021.08.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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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021.07.22.

장르| 멜로/로맨스, 애니메이션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87분

국가| 일본

 

 

 

 

제목부터 독특한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는 플라잉 도그 10주년 기념 작품이자 이시구로 쿄헤이 감독의 첫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현재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제목은 극 중 하이쿠를 짓는 소년 체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 스마일을 떠올리며 지은 *하이쿠란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하이쿠 : 5ㆍ7ㆍ5의 3구 17자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로, 특정한 달이나 계절의 자연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다.

 

예고편에서 볼 수 있듯 독특한 그림체와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특히 여름의 청량한 계절감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호평을 받고 있다. 눈부신 햇살, 바람에 휘날리는 잎사귀들,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진 시골과 시끄럽고 복잡하나 젊은이들의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한 도심이 대비되어 나타나며 각기 색다른 매력을 준다.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의 두 남녀 주인공은 한 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체리는 남과 소통하는 걸 부끄러워해서 항상 헤드폰을 쓰고 있고, 스마일은 교정 중인 앞니를 부끄러워해서 항상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다닌다. 이렇게 부끄럼 많은 두 남녀는 우연히 쇼핑몰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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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앞서 말했듯 둘의 첫 만남은 쇼핑몰에서 이뤄졌다. 그날 쇼핑몰은 특별 행사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뤘고, 등신대를 훔쳐 달아나던 비버와 충돌한 체리와 스마일은 핸드폰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를 챙겨서 급하게 돌아가던 둘, 집에 도착해서야 서로의 핸드폰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몇 번의 연락을 통해 핸드폰이 주인에게 무사히 돌아가며 둘의 인연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로도 계속해서 마주치던 둘은 같은 아르바이트 처(요양센터)에서 일하게 되는 기적까지 선보인다. 그러던 둘은 그곳에서 만난 후지야마 할아버지가 [산벚나무]라는 레코드를 애타게 찾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은 폐점을 앞둔 후지야마 레코드점의 짐 정리를 도우며 온 사방을 샅샅이 살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구석에 숨어있던 [산벚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할아버지의 아내이자 싱어송라이터였던 후지야마 사쿠라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레코드였다. 따라서 할아버지에겐 아내를 잊지 않기 위한,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이 세상 무엇보다 귀중한 물건이었다. 체리와 스마일은 한 사람의 소중한 기억을 찾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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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를 시작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급속도로 가까워진 둘.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피어난 둘은 불꽃 축제 날 데이트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조만간 이사를 떠나게 된 체리, 갈등하던 그는 스마일과의 약속을 거절한다. 그는 그녀를 붙잡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이를 바로잡을 새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불꽃 축제 날이 찾아오고 만다.

 

결국 체리는 용기를 내어 스마일에게 찾아갔고, [산벚나무]가 울려 퍼지는 광장에서 그녀를 향한 진심을 하이쿠로 전한다. 스마일은 이에 화답하듯 마스크를 벗고 앞니를 드러낸다. 이로써 남들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했던 체리와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숨기려던 스마일은 서로를 만나면서 완전히 변하게 된다.

    

 

 

 

[산벚나무(YAMAZAKURA)]는 어쿠스틱 음악으로 밝고 차분한 멜로디, 서정적인 감성이 담긴 가사가 돋보인다. 영화 후반부, 광장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뽑을 만큼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잘 녹여낸 좋은 OST라는 생각이다. 이를 듣다 보면 어느샌가 앞니가 귀엽게 튀어나온 두 여성이 떠오른다. 이윽고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처럼 언급된 산벚나무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으로, 꽃보다 잎이 먼저 나는 특징을 지녔다. 따라서 앞니가 돌출된 사람을 '산벚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한 스마일과 후지야마 사쿠라는 산벚나무로 불리곤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두 사람 모두 앞니가 돌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체리의 고백에서

"산벚나무야 네 숨기고 있는 그 잎이 좋다"

라는 하이쿠가 등장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산벚나무만 머리에 맴돌 정도니 그 중요도가 얼마나 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는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 중 하나로 자리할 듯하다. 그 뜻은 '상대가 숨기고자 하는 콤플렉스마저 사랑하는 것'이다. 두 남녀 역시 자신의 콤플렉스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서로의 진실한 모습을 받아들였지 않은가?

 

그러니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는 성장형 청춘 로맨스라고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남녀가 사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닌, 사랑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각자의 단점을 극복하는 힘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서로의 존재에 있었다. 열일곱의 풋풋한 청춘들이 사랑 앞에서 이렇게나 변할 수 있다는 걸 보니 놀라웠고, 또 부럽기도 했다.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하이쿠를 소리 내어 말하는 체리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사이다에서 탄산이 톡톡 솟아오르듯 자신의 입에서도 하이쿠가 마구 쏟아져나온다는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라는 표현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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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의 관전 포인트인 체리가 지은 하이쿠들은 마지막에 또 한 번 가치를 입증했다. 몇 가지 맘에 들었던 하이쿠들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름밤 등이, 저녁 석양 속에서 신호 전 출발

 

우렁찬 소리, 말이 존재하는 건 표현을 위해

 

내 열정 한 조각을 네 손에 줄게

 

온 힘을 다해 소리칠게 여름의 끝자락에서 너에게

    

  

체리는 자신이 말로는 내뱉지 못할 생각과 감정들을 하이쿠를 통해 표현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걸 토대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문장들을 기록한 것이다. 무엇하나 빠진 듯 엉성한 문장들이 왜 이리도 귀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실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여름밤 등'과 같은 계절 언어를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하이쿠의 매력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 크다.

   

*

 

귀엽고 풋풋한 청춘들이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 달빛이 내려앉은 여름밤에 가볍게 보기 좋은, 보는 이들의 입에서도 말이 톡톡 솟아오르게 할 영화다. 따라서 일본의 청춘 로맨스 감성을 좋아하거나 하이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올여름의 끝자락이 오기 전, 꽃보다 잎이 먼저 나는 산벚나무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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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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