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류 모두의 적, 해적왕 헨리 에브리와 팬시 호

낭만과 현실
글 입력 2021.08.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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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 역사의 결정적 순간이 되기까지

지은이 스티븐 존슨 ∣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출판사 ∣ 발행일 2021년 06월 15일 ∣ 쪽 수 380쪽



역사를 좋아한다. 학창 시절, 유독 사회 과목을 좋아했고 특히 세계사와 국사는 내 성적을 상위권으로 만들어주는 과목이었다. 방대한 암기량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릴 적 즐겨봤던 드라마가 사극 장르였던 점도 있었고, 집안에 위인전기 시리즈를 완독했기 때문에 친숙한 이유도 있다. <인류 모두의 적>을 선택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때마침 세계 최소 주식회사 개념을 만든 동인도 회사가 최근 대화 중 키워드로 떠올랐고 역사 과목에서 배운 흐름과 달리 소위 '빌런'의 역할을 하는 해적왕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인류 모두의 적>은 17세기 해적왕인 '헨리 에브리'를 핵심 인물로 다루면서 전 세계 범위로 흘러간 역사를 알려준다. 생소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해적은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블랙 샘’ 벨러미로 헨리 에브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테다. 헨리 에브리(Henry Every, 1659년 8월 23일 ~ 1696년 이후)는 이들보다 한 세기 이전 활동한 해적왕으로 훗날 대영제국을 탄생시킨 초석이며, 현대 세계 무역의 출발과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인류 모두의 적>은 헨리 에브리에 대한 추적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 무역이 어떻게 발전됐는지 알 수 있다.

 

다만, 헨리 에브리의 모든 서사는 알 수 없다. 그의 태생도 불분명하고 그의 성이 정말 에브리가 맞는지 조차도 알 수 없다. 저자 스티븐 존슨은 확실하진 않지만, 그의 활약상이 기록되는 순간부터 팬시(Fancy)호의 몰락까지, 그리고 전후로 전반적인 역사적 사실을 다뤘다.

 

작가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이머전스>를 시작으로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이코노미스트> 등, 비즈니스와 관련된 도서로 여러 곳에서 베스트 셀러로 선정됐다. <인류 모두의 적> 또한, 세계 무역의 부흥을 이룩한 관점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해적의 서사를 말한다. 그러기에 순전히 헨리 에브리의 모험담이 아니라, 그가 영향을 끼친 모든 인도양과 대서양의 주변 국가에 대해서도 말한다. 흥미진진한 블록버스터급 해적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략히 말하자면,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한낱 선원부터 당시 강대한 영향력을 가진 무굴제국의 타깃이 되기까지, 또한 그들은 당대 법의 테두리 밖에 사는 범법자였으나, 선상 위의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 공평한 보상계획,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경우에 대한 보험 등, 당대의 법을 나아가 현대와 가장 근접한 체제를 갖춘 생활을 했다는 점 등, 영웅이 아니라 단 한 명이 해적으로서 세계에 어떤 시발점이 됐는가에 대해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헨리 에브리와 아우랑제브(Hern Every and Aurangzeb)

8,000km라는 물리적 거리너머



<인류 모두의 적>은 크게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와 팬시 호의 선장 헨리 에브리를 주축으로 진행된다. 아우랑제브(1618-1707)는 인도 무굴제국의 제6대 황제로 악바르의 증손이며 샤 자한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일찍이 군사와 통치에 자질이 있었고 당시 다사공망하고 인망이 두텁던, 왕세자 다라 쉬코와 대적해 승리를 거두고 1658년 황제로 즉위했다. 그는 49년간 무굴제국을 통치했으나, 사실상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마라타족과의 관계를 마무리 짓지 못해 그가 승하하자 무굴제국은 급속히 쇠퇴했다.

 

그리고 아우랑제브가 황제로 즉위한 1650년대에, 헨리 에브리(1659-1696 이후)는 잉글랜드 웨스트컨트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페인 원정 해운(Spanish Expedition Shipping) 중 스페인 난파선을 인양하는 찰스 2세 호의 일등 항해사로 승선했다. 하지만 불합리한 환경 속, 입금체불 불이행과 배가 묶이자 견디지 못한 그는 반란을 일으켰고 승선한 배가 육지에 닿았을 때는 일등 항해사에서 해적선의 선장이 됐다.

 

이들은 8,000km나 떨어진 지리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로 살아갔지만, 그들은 만나게 된다. 무굴제국의 왕실 보물선인 건스웨이 호 약탈(The Gunsway Robbery, 1695)로 팬시 호는 아우랑제브의 순례 호(마침 메카 순례를 다녀오는 아우랑제브의 손녀, 즉 공주가 탑승했다.)를 습격함으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헨리 에브리를 추적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에브리가 인도 수라트 근처 바다에서 건스웨이 호를 약탈하자, 분노한 아우랑제브는 영국과의 무역을 중단했고, 마침 무굴 제국과 무역하던 동인도 회사(세계 최초 주식회사로 기한부 주식-terminable stock-을 첫 시작으로, 1600년대 중반 오늘날 법인 회사가 사용하는 모델인 영구 주식-permanet stock-으로 전환했다. 이외 공모 시장을 발행함으로 주식을 위한 시장 자체도 형성했다. 주된 무역 상품은 향신료 외에 옥양목과 사라사 무명천이 있다. )와 영국은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굴 제국은 무슬림의 나라로, 아우랑제브는 종교 관념이 투철했고 이를 배반한 자에게 자비 없는 처사로 가차 없기 유명했다. 하필 그의 손녀인지 혹은 딸인지 모를 황제의 여식은 종교 순례를 위해 메카를 다녀오는 길이었고, 막대한 보물과 거대한 모습을 가져, 건스웨이 호라고 이름이 붙여진 배는 팬시 호에 의해 무자비하게 약탈당했다. 이는 단순 해적 행위가 아니라 왕실과 종교를 모독한 행위로 자칫 잘못하면 전쟁으로 발발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고 영국은 재빨리 헨리 에브리의 팬시 호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으며, 영국은 해적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을 취하기 위해 두번의 재판을 거친다. 또한 그를 <인류 모두의 적(지구 반대편에서 죄를 지었어도 당국이 심판할 권리를 갖는 원리로 오늘날은 테러리스트, 고문자, 전쟁 범죄인까지 확대됐다.)>으로 공표함으로써 해적선을 격파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당시 현상금은 에브리, 한 사람에게 걸린 금액만 500파운드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3,500만 원이라 한다. 이는 최초 1억 현상금으로 전 세계 현상금 사냥꾼들이 들썩였던 소식으로 인류 모두의 적으로 최초 국제 현상 수배범이 되는 계기였다. 이때까지 무굴제국은 위태로우나 건재했고 황제의 영향력 또한 막강했다. 하지만 인류 모두의 적이라 선포함으로 팬시 호를 심판하고 처단하는 권리는 영국에 있기에, 이를 직접 실행하는 동인도 회사는 황제 아우랑제브에게 인도 바다의 군사적 권한을 요청했고 황제는 이를 승인했다. 이는 훗날 영국과 동인도 회사가 인도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팬시 호의 만행이 대영제국의 탄생의 시발점이 된 결정적인 사건으로 남는다. 전혀 연결 고리가 없던 두 인물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결과로 한 나라가 뒤집히며, 세계적으로 공통의 적이 태어나는데, 바로 단 한 명의 해적으로 생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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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모두의 적, 팬시 호가 쏘아올린 공

한 해적단이 가져온 결과


 

팬시 호가 본격적인 해적 행위를 한 것은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비범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일등 항해사였기에 선상 쿠데타를 일으키고 바로 선장이 됐지만, 건스웨이 호를 약탈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해적선 사이에서도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더로 뽑힌다. 그는 건스웨이 호를 충분히 약탈 후 본국에 돌려보내면서, 큰 결단을 내린다. 분명 팬시 호는 모두의 타깃이 되어 쫓길 것이고, 해적단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팬시 호를 버렸고 모든 전리품을 공평하게 해적의 규칙에 따라 배분했으며 이후 선원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들은 얻은 전리품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떠돌아야 했으며, '벤저민 브리지먼'이란 가명을 사용해 노예상인 척 둔갑하여 - 그는 원래 바다를 떠돌며 노예매매에 종사했다 - 나소의 트롯 총독과 거래에 성공했다. 마침 나소까지는 에브리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고, 때마침 프랑스 공격을 대비해 인력이 필요했던 트롯 총독은 에브리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훗날 트롯이 세계지명수배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탈주로 형성에 도움을 준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재판으로 소환됐고 이 모든 일의 근원인 '스페인 원정 해운'의 투자자는 그에게 손해배상을 조금이라도 청구하려 했다. 허나 트롯은 매우 억울했고 무죄를 주장했다.

 

이후 팬시 호의 선원은 나소에서 머무르며 결정을 했다. 몇몇은 잉글랜드로 돌아갔으며, 아니면 마다가스카르와 같은 섬에 정착하거나 혹은 아주 외딴 섬에 고립되길 자처했다. 헨리 에브리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헨리 에브리의 해적 기행은 당시 이야기로 바다와 인접한 육지까지 전해졌고, 그의 이름은 저잣거리에 퍼져있었다. 그리고 잉글랜드로 돌아온 선원 중 총 8명은 자신들이 팬시 호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그렇게 정부에 잡혀 재판을 받게 됐다. 시작은 선원인 존 댄을 시작으로 줄줄이 잡혀들어갔다. 이후 영국은 바다 위에서 벌어진 실재없는 사건을 재판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헨리 에브리란 해적이 영국인이었던 점과 그가 영국과 관련된 배는 약탈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부각돼, 영국은 해적 행위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적대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증명해야 했다. 그들은 체포된 증인 8명 중 증언할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존 댄이 변절자 역할에 적절했다. 영국은 그제야 그의 증언을 토대로 증거를 찾기 위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었으며, 무굴 제국에당당히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작이었다.

 

하지만 재판은 영국 정부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재판은 배심원제로 흘러갔고, 그들의 악행에 대해 정부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이는 동인도 회사가 위치한 봄베이 캐슬에 갇힌 존 게이어가 보낸 편지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했다고 한다.


 

해적 행위는 ...... 육지의 절도나 강도보다 위험한 것입니다. 왕국과 국가의 이해관계는 개별적인 가문이나 특정한 개인의 이익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해적을 묵인하면,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있는 세계 상거래를 중단될 것이 분명합니다. 해적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밝혀졌는데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이 전쟁에 휘말려 피를 흘리고,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무고한 영국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인도와의 무역이 완전히 중단되는 결과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왕국도 가난과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인류 모두의 적> 중 영국 주임 검사 헨리 뉴턴의 진술 1696년 10월 19일

 

 

국가의 이익을 생각한 정부는 무굴 제국과의 무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동포인 영국인들은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팬시 호의 해적은 이미 영국 국민에게 전설적인 무용담으로 전해졌으며, 8,000km나 떨어진 나라의 황제가 어떤 피해를 보았든 그들과는 상관이 없던 일이었고 오히려 그들의 재물을 약탈한 그들을 추앙했다. 그들을 무조건으로 유죄로 만들어야 하는 정부는 아우랑제브의 재산을 강탈하고 인명 피해를 만든 죄목이 아니라, 깁슨 호를 탈취해 팬시 호로 만든 선상 반란으로 다시 소송을 걸었고, 마침내 정부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상대로 처형됐다. 동료들이 처형당하는 동안 헨리 에브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가 영국과 무굴 제국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무굴 제국은 헨리 에브리가 영국인이기에 수년간 이어오던 무역을 중단 선언했으며, 동인도 회사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사건 이후 다시 무역이 재개되기까지 9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당시 연락책이 지금처럼 글로벌하지 않아, 소식을 보낼 때면 몇 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런 점이 봄베이에 갇혀버린 동인도 회사와 영국과의 소통을 더디게 했으며, 그 기간 동안 무역은 침체됐다. 헨리 에브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언제 사망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팬시 호의 사람이 흩어지던 이후로 발견된 적이 없으며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더욱더 악명높은 해적이 됐다. 그의 인생 마지막에 대해 논하는 가설은 많다. 그가 건스웨이 호에 탔던 공주와 사랑에 빠져 어느 섬에 정착했다거나 항해사 애덤스의 부인으로 위장해 잉글랜드의 세관을 통과하여 에브리를 기다렸다고도 한다. 혹은 에브리가 전리품을 돈으로 환전할 때, 전리품을 거의 잃었고 데번셔에서 가난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모험담은 바다에서 육지로 흘러가 여러 설로 출판되기도 했고, 한낱 급사가 해적선의 선장이 됐다는 신분 상승 요소가 시민들의 마음을 동요했다. 이런 민심을 잠재워야 했던 영국은 동인도 제도에 해적 소탕을 위해 순찰하였고 해상에서 모호했던 권한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해적이 저지르는 악행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리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모험심과 그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바로 평생 바다를 떠돌며 일확천금의 인생을 살 수 있겠다는 1%의 희망이며, 쉽게 일렁이는 일탈의 욕구가 대다수를 자극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후 아우랑제브가 승하하자, 연이은 연약한 황제들의 취임과 귀족들의 반란 등으로 무굴 제국은 급속히 무너져내렸고 당당히 군사권을 가지고 해상을 보호하고 있던 영국은 그대로 인도 아대륙을 자연스럽게 행정적으로 100년간 통치하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순전히 헨리 에브리란 해적으로 인해 밞게 된 과정으로 이를 통해 인도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이외에도 민주적 규칙을 최초로 세우거나 해적의 낭만적인 서사로 동경할 수 있고 역사적 사실로 기록될 수 있었으나 작가는 그들을 살인자이며 성범죄자로 규정한다.

 

<인류 모두의 적>은 해적 생활의 2년간을 자세히 풀어뒀다. 역사책으로 보이나 단순히 역사책이라 말할 수 없다. 한 시대적 현상이 발생까지의 전개를 소개하며, 당대의 분위기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적의 황금기를 안내하며, 현대의 관점으로 풀어낸 서술까지 가미한다. 요즘 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친숙한 소재로 풀어낸 해적들의 극악무도한 범죄 행각을 다룬 <인류 모두의 적>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이면을 알려주고 정통적인 관점이 아닌 색다른 시각으로 세계사의 뒷면을 훔쳐볼 수 있는 창구다. 세계 최초 인류 모두의 적의 말로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봄으로써, 현재 우리의 현실의 어느 장면이 이후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장면의 일부가 되거나 혹은 무용담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당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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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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