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보다 인간다워졌던 외계인에 대하여 - 산책하는 침략자

글 입력 2021.08.12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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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가 7월 31일부터 공연되고 있다. 이번 연극의 바탕이 된 동명의 희곡은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연극으로 이야기되고 있으며 벌써 삼연이나 진행되는 만큼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야기다. 이미 한 번 영화 리뷰 유튜브를 통해 '산책하는 침략자'를 간단하게나마 접했던 나는 기대에 차 이번 연극을 관람했다.

 

미군 기지의 전투기 소리가 날이 갈수록 점점 잦아지는 가운데에, 불안에 떨던 한 작은 항구 마을에는 평범한 남성 '신지'가 있었다. 다른 여성과 만나며 아내와는 거의 별거를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랬던 남성 신지가 어느 날 다른 여성과 축제에 놀러 갔다가 실종되어버린다. 그리고 3일만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타난다. 맨발에 상처를 가득 내고, 죽은 물고기를 들고 다니며 그 물고기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기억상실증과도 같은 상태로 말이다.


경찰은 그런 신지를 보호 조치하다 병원으로 이송했고, 덕분에 냉전 상태로 있었던 아내 '나루미'가 그의 보호자로 병원에 불려왔다. 그런데 의사는 신지를 보고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의 상태가 그저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기엔 기묘했기 때문이다. 신지는 마치 '인공지능 로봇'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들어온 값을 입력하고 저장된 값을 내놓는다. 그러나 아직 저장된 값이 없어 들어오는 값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거기다 모든 검사를 진행해도 그의 신체, 즉 뇌에는 이상이 없었다. 보통 증상이 보이면 뇌에 어떤 방식으로든 이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신지는 너무도 말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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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이 모든 것이 별거하며 냉전 중이었던 나루미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다. 갑자기 존댓말을 하고 마치 자신을 처음 보는 상대인 것처럼 군다. 거기다 세상에 대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당혹스러운 질문들을 내놓는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신지의 등장과 동시의 나루미의 세상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며, 신지의 과한 질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기꺼이 받아주던 넉살 좋던 나루미의 언니가 어느 날 한순간에 돌변했다. 마치 신지가 이 세상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던 것처럼, 그녀의 언니는 '가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단순히 가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족이 가진 의미와 중요성, 소중함, 그러한 것들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고, 며칠 후에는 나루미와 신지는 물론 그녀의 어머니에게까지도 소리를 지르며 가족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도대체 왜 내가 가족을 아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가족이 도대체 뭐길래 그러냐고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기까지 했다. 신지가 "개념을 받아 갈게"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 이후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신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루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나루미에게 사과한다. "미안해, 가족이라는 것이 나루미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 줄 몰랐어."


정신없는 와중 나루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마치 로봇과도 같이 굴던 신지의 점진적인 변화였다. 신지는 매일 '산책하러 나간다'고 이야기하며 집 밖을 나섰고, 돌아올 때마다 점점 더 로봇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나루미와의 과거 데이트까지 이야기하며 나루미가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사람인지, 자신이 얼마나 나루미를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신지에게 나루미는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점점 신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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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신지가 자신이 외계인임을 고백했을 때 나루미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잘해주고 친절했던 신지가 자신이 알던 신지가 아니었음에 절망하며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신지는 그러한 나루미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지의 기억도, 신지의 육체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신지인가 아닌가? 나루미는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이 알던 과거의 신지가 아닌 이상 진짜 신지가 아니라며 지금의 신지가 신지임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후에는 결국 지금의 신지가 신지임을 받아들이며 별거까지 했던과거의 진짜 신지와는 다르게 현재의 외계인 신지를 나루미는 가슴 깊이 사랑하게 된다.

 

이는 결국 이 연극에서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연결된다. 진짜 인간들은 외계인들에게 개념을 빼앗긴 뒤 '인간다움'에서 멀어지고야 만다. 가족을 천대하고, 다른 사람과 본인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스스로를 잃고 과하게 남들과 동화되어버린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단순히 성격이 나빠졌다, 멍청해졌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품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신지를 포함한 세 명의 외계인들은 처음 신지가 나루미의 언니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개념'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점차 진짜 인간에 가까워졌다. 어색한 말투와 억양도 자연스러워졌고, 다른 존재를 친구라고 생각하며 믿음을 가지기도 하며 진짜 인간보다도 인간다운 외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이면 인간답게 살아야지."


TV에서도, 영화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책에서도 종종 마주할 수 있는 문장이다. 주로 사회적 논란을 빚어내거나 상식 외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이야기하는 말이다. 그 외에도 방을 지저분하게 사용한다든지,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통탄의 말로도 사용된다.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과 외계인, '개념'이라는 요소를 활용해 이뤄지는 두 존재의 이야기는 '인간다움'은 그저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해지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품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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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심오한 주제였기에 자칫하다간 무겁기만 한 연극으로 갈 수 있었으나 중간중간 웃음 코드를 너무도 잘 잡은 덕분에 즐겁게 웃으며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으며 연극에서 굳이 어떠한 '답'을 내려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대신 관객들이 직접 고민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며 의미 있는 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 조명과 무대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세심한 연출도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연극이 끝나고 그저 '재미있었다' 하고 끝나지 않고 생각할 요소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겨준 의미 깊은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는 8월 15일까지 공연된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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