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마지막 저널; 외계인이 고향을 침략했다 - 산책하는 침략자 [공연]

글 입력 2021.08.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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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작성자 본인이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를 감상 후,

허구적 요소를 상상해 추가하여

등장인물 사쿠라이 쇼조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해안가 작은 항구, 나의 고향



해안가의 작은 항구 마을,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도 않고, 마을 축제가 간간이 열리면 이웃 주민들과 함께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곳. 내 어릴 적 추억 속 고향은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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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로 지냈던 고향을 떠나 일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저널리스트로 꽤 긴 시간 동안 활동했다. 열정 넘치는 젊은 청년이었던 난 쓸만한 기삿거리를 찾을 겸, 고향 친구도 볼 겸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했다.

 

몇 년 만에 찾은 고향은 무엇인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공기의 변화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나를 자극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이 마을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나, 사쿠라이 쇼조는 지난 40년 간의 기자 활동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저널로 이제서야 나의 고향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당신은 나의 고향이 외계인에게 침략당했다고 주장하면 믿을 것인가? 산책하는 침략자들에 대한 이야기.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외계인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

 

첫 번째, 내가 만난 인물; 카세 신지

 

고향에 내려가 미군 기지 주변과 해안가를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바다의 파도 뿐이라는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걷던 중, 이상한 부랑자를 발견했다. 발이 다 까져서 피를 흘린 채 죽은 금붕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산책하고 있다"고 말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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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나는 이 남자를 경찰서까지 태워다줬고, 알고 보니 이웃 주민이었던 나루미의 남편이었다. 그는 약간 어눌하게 말을 했다. 문장 구조가 완벽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예문을 말하고 있는 듯한 어색함과 거기서 오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겉보기엔 멀쩡한 사람인데, 속으로는 사람인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내가 만난 인물; 아마노 마코토

 

이 마을에선 최근 75세 할머니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거리엔 발 벗은 이상한 부랑자가 걸어 다니고, 어느 집에선 동반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고향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런 모습만이 남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이 사건을 더 취재해보기로 했다. 나의 친구인 경찰 후나코시 히로키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자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손녀 타치바나 아키라를 만나고자 병원을 찾았을 때, 나와 같이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 남학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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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그는 아마노 마코토로, 매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논리를 자랑하려는 듯하며, 완벽하게 딱 끊어지는 문장을 구사해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하는 모양새였다. 그와 대화를 나눠보니 자신은 외계인이라며 나에게 가이드를 요청했다. 장난을 많이 치는 허세에 찬 남학생임을 직감하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하고 그의 가이드가 되었다.

 

 

세 번째, 내가 만난 인물; 마루오 세이치

 

직접적으로 대화를 많이 한 적은 없지만, 마을 취재를 다니면서 마루오 세이치가 하는 1인 시위 현장에 가보았고, 그의 주장을 들어보았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우리는 평화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반전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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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최측근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원래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자발적 실직자로 하루하루 신나는 일 없이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전투기 소리가 나면, 이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이 제로부터 다시 시작이기 때문에 거지 같은 인생도 리셋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전쟁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마루오 세이치는 반전시위를 하고 있던 걸까? 그것도 아주 기쁜 얼굴로, 행복하고 신나는 일을 하는 모양으로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된 걸까? 좋은 변화이지만, 최측근은 갑자기 하루아침에 그가 저렇게 바뀌었다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마루오 세이치는 누군가를 만난 이후에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고 있던 어떠한 무거운 개념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분을 찾아야 한다면서 친한 동생에게도 그분을 찾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강요를 반복한다.

 

 

 

마을 사람들의 변화


 

모든 것을 밝힐 순 없지만, 내가 만난 인물들은 모두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카세 신지는 결핍의 상태에서 점점 채워졌고, 마지막엔 정말 '사람'처럼 눈물을 흘렸다. 카세 신지는 다소 기계적인 말투에 자신을 둘러싼 이 세상을 처음 마주하게 된 외계인인 마냥 궁금증 투성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만나 여러 질문을 던지며 산책하며 점점 세상을 알아갔고 내가 마을을 떠나기 전에는 몸짓과 말투 또한 이전보다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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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카세 신지는 아기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내가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인간다웠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처음 제대로 느끼는 것 같은 벅참과 알 수 없는 슬픔이 섞여 있는 복잡미묘한 눈물을 흘렸다.

 

아마노 마코토는 당당했던 인간의 모습을 넘어서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안하무인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그게 마법인지, 마술인지, 외계인의 능력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한 행동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상대방의 기억, 생각, 개념을 빼앗아 올 수 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내 고향에서 일어난 일들의 비밀을 풀기 위해선 이러한 가정이 필요했다.

 

 

우리 마을은 외계인에게 침략당했다. 그들은 물건과 자연을 약탈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뇌 속 추상적 존재를 가져갈 뿐이다.

 

 

그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추억, 기억, 개념, 감정들을 가져간다. 산책하는 침략자들은 그렇게 지구의 인간들을 약탈하고 사라져버렸다. 이를 믿을지 말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마루오 세이치는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했다. 무언가를 잃었는데, 이를 통해 해방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 결핍을 통한 해방은 그에게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그 열정이 마루오 세이치의 현실을 바꾸어 놓았나에 대해선 미지수다.

 

그의 상황과 배경에 빗대어 예측해보기로, 그는 아마도 소유에 대한 개념에서 해방된 듯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일본 청년 관련한 문제를 모두 갖고 있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나이에 비해 돈도 많이 못 모아뒀으며, 일을 구하려고 해도 실직 상태가 길어지자 사실상 자발적 실업자가 되어버린 청년이다. 실업 급여로 버티고는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없어 그저 해안가를 보다가 전투기, 미사일 소리가 나 하늘을 쳐다보며 전쟁이 나길 기다린다. 이 사회에서 내가 다시 일어서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선, 전쟁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군대에 가서 적군과 싸워도 좋으니 전쟁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는 부와 명예, 성공보다는 실직, 패배, 빈곤이 익숙했던 청년이었다. 점점 자신의 소유물보다는 타인의 소유물이 더 커지는 것에 거리감을 느끼며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타인이 가진 부와 사회적 지위, 행복을 질투하며 이를 끝낼 수 있는 건 아군과 적군이 나뉜 전쟁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그에게서 '소유'에 대한 개념이 사라졌다. 그 원인을 확언할 수 없지만, 위에서 가정한 대로 외계인이 인간이 갖고 있는 개념들을 빼앗았다면, 상황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갈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얽매고 있던 한계를 없애고 열정을 되찾았다. 사회에서 나와 너를 구분 짓는 차별을 해선 안 되며, 그의 끝에는 결국 비극적인 전쟁이 있다며, 반전 시위를 주도한다. 소유에 대한 자신의 패배감이 사라지자 '얼마나 가졌는가'에 대한 측정과 판단을 하지 않아도 되어 그는 해방되었다.

 

당시, 최측근은 그가 요즘 공산주의에 푹 빠져 있다며 위험하다고 말했다. 소유의 개념이 사라져 모두가 공평한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그의 눈에는 평화와 열정이 담겨있었지만, 그 열정의 방향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요구였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판단, 현실적인 노력과 변화가 아니었다. 현실적 판단에 의한 어떠한 실천과는 동떨어진 주장을 해댔다. 곧 전쟁이 터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마을에서 혼자 이 세상은 하나라며 전쟁은 안 된다고 외쳤다. 그의 결말은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아직도 공산주의를 외치면서 이룰 수 없는 환상의 나라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산책하는 침략자의 비밀


 

누군가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국 비밀을 풀지 못하면 그가 천재, 초월적 존재, 혹은 외계인이라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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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그 비교와 분석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 우리가 탐구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외부의 존재라고 판단하고 끝내는 게 훨씬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진짜 문제는 가려진다. 비밀을 헤쳐보다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문제를 마치 빙산의 일각을 마주하듯이 만나게 되면, 인간의 힘이 닿을 수 없는 존재들을 들먹거리며 빨리 덮기에 바쁘다.

 

나의 고향, 작은 항구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감정을 잃어가는 사람들, 비인간화되어가는,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일상생활에 지쳐 결국 삶을 포기해버린 사람들, 그렇게 냉탕과 온탕 오가듯 극단적인 주장들을 해대는 사람들, 담장 옆 일들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그러한 일들을 숨기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정확한 사실을 취재해야 하는 나마저도 산책하는 침략자라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들을 둘러대며 그 비밀을 외면하고 황급히 고향을 떠났고, 끝내 취재 기사를 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돌이켜 보니, 나의 고향의 모습과 변화는 단지 이 해안가 작은 항구 마을에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외계인이 침략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는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 나기에 적합한 변명이 시대에 따라 바뀌면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 고향에선 외계인의 침략으로, 어딘가에선 현대사회의 고질병, 다른 곳에선 청춘의 아픔으로, 우리 종교를 믿어야하는 이유로, 종말의 예고라고 진단해 각종 미신과 헛소리들이 판치고 있다. 그리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비밀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여러 시대를 잠식한 이 무거운 변화는 또 다른 변명으로 정치질에 이용되거나, 각종 논란으로 사람들 입에 조금 오르내리다가 결국 다시 깊은 지하 속으로 들어가 우리를 조종한다.


 

우리 마을은 외계인에게 침략당했다. 그들은 물건과 자연을 약탈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뇌 속 추상적 존재를 가져갈 뿐이다.

 


젊은 청년 저널리스트였던 내가 내릴 수 있던 최선의 가정이자 완성되지 못한 결론이었다. 침략자가 약탈해 가버린 추상적 존재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재하다. 언젠가 잠식당한 사람들로 가득 차 도저히 회복 불가인 지경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난 희망을 보았다. 카세 신지의 마지막 모습은 복잡미묘한 울음이었지만, 분명 그것은 사랑의 감정이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면, 그가 외계인이든, 천상계 존재이든 상관없이 인간과 같은 동등한 존재가 된 것이다. 강렬한 사랑의 힘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는다. 이는 다시 인간의 다양한 감정, 추억, 기억, 개념을 이 세계에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희망은 아직도 살아있다.

 

40여 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기자로서,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면서 세상엔 정말 인간의 두뇌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러한 일들로 인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진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직시해야 할 문제는 말 그대로 마주 보고, 모두 머리를 맞대어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고 실천해야 한다. 외계인의 침략이라는 핑계로 황급히 이야기를 끝내버려야 했던 내 고향, 우리 사회상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고, 더는 외면해선 안 되기 때문에 이렇게 나의 인생 마지막 저널을 쓴다. 지금, 당신의 마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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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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