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상성, 그리고 환상성의 작가들 박솔뫼·이유리 – '브로콜리 펀치' 다시읽기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7.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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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Opinion] 삶과 회복의 이야기 - 브로콜리 펀치 [도서/문학]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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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작가는 재미있고 엉뚱하고 판타지스럽다. 물론 환상적 소설 구조를 도입하는 시도는 최근 다른 작가들을 통해서도 시도되었고, 각 작가의 환상성은 서로 다른 지점을 점유하고 있고 서로 다른 종류의 환상성 덕분에 우리의 문학이 더욱 풍성해 지고 있다. 환상성을 통해 비현실적인 지배원리의 공간이 그려지지만,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속 우리의 감정을 여느 리얼리즘 작품보다도 더욱 잘 그려내고 있다. 박솔뫼의 「수영하는 사람」을 통해 그런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유리 작가를 포함해 이들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할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유리의 단편소설 「브로콜리 펀치」의 환상성이 가지는 의미는 한강, 박솔뫼 작가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쓰는 글은 「브로콜리 펀치」를 더욱 풍성하게 읽기 위한 시도이지만, 어쩌면 너무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읽고 싶은, 또 이 작품과 연관된 다른 작품들은 추천받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글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크기변환]브로콜리 꽃.jpg



일단 문학에 있어서 환상성이라는 것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먼저 밝혀두는 것이 좋겠다. 기본적으로 환상성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원리의 지배 하에서 작품이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판타지 소설은 현실의 물리법칙이 지배되지 않는 공간―예컨대 지팡이를 타면 중력을 거슬러 날아다니게 된다든가―을 그리고 있고, SF 소설은 현실의 물리법칙이 적용되고는 있지만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학기술이 보편적으로 실현된 공간―유전자 조작이 상용화돼 누구나 아기의 신체 스펙을 조작할 수 있는―을 그린다. 양쪽 모두 현재 지구에 없는 환경을 그리고 있으므로 환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 작품에 있어서 환상적 요소가 등장하게 되면, 독자의 이목은 이 새로운 지배 원리에 주목하게 되고 모든 인물들이 동일한 법칙하에 놓인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환상성이 없는 소설은 각 인물 사이의 현실적인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일단 환상성이 개입하면 이 새로운 거대한 환경이 부각되고 따라서 각 인물들의 현실적인 차이는 관심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결국 환상성은 거대한 세계를 조작하여 모든 인물을 동일한 법칙에 처하게 만들고 인물간의 차별성을 소멸시킨다.


이유리의 세 작품, 「빨간 열매」, 「둥둥」, 「브로콜리 펀치」에서 이러한 환상성의 모습들이 잘 드러난다. 「빨간 열매」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을 묻은 화분이 살아서 말을 한다. 이내 공원을 산책하다가 또 다른 말하는 화분―여성 화분(?)―과 친해지게 되고 이 둘은 궁극적으로 가정을 이룬다. 젊은 남녀의 사랑과 두 화분의 사랑이 이질감 없이 나란히 그려진다. 반면 「브로콜리 펀치」에서는 ‘원준’에게 ‘브로콜리-손’ 질환이 발생하며 주인공들 중에서 원준만이 환상성의 요소를 지니게 되며, 해당 질환에 대한 이전의 소문과 기억들을 통해 인물들이 원준에게 동조하고 그의 회복을 함께 돕는다.

 

그러한 측면에서 「브로콜리 펀치」의 환상성은 인물들을 평행하게 그리기 보다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다른 인물들 수렴하게 한다. 모든 인물들의 차별성이 제거되고 동일한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상성의 역할은 동일하지만, 「브로콜리 펀치」에서의 환상성은 하나의 중심점으로 모두를 결집시키는 양상에 가깝다. 이러한 특별한 환상성의 양상을 통해 원준이라는 인물의 상처와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작품의 구조이 완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둥둥」에서의 환상성의 적용범위는 오직 여주인공 은탁에만 집중된다. 형규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머무는 세계에는 환상성이 적용되지 않고, 은탁의 사후세계(?)에서만 환상성이 적용되어, 환상성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양립하는 이원적인 구조로 소설이 전개된다. 다만 소설 내부에 인물간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유리 작가의 소설들은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다정하고 무해한 소설을 그리려는 공통점을 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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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서로 다른 작가들의 환상성을 비교해 보려고 한다. 한강, 박솔뫼의 작품과 이유리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그들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로 등단한 시기로만 보았을 때는 박솔뫼 2009년, 이유리 2020년으로 서로 10년 안팎의 차이를 보이며, 분석을 진행할 작품은 「수영하는 사람」(2020년), 「브로콜리 펀치」(2021년)로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다.


박솔뫼의 「수영하는 사람」에 나타나는 환상적 요소는 인간들이 한 달 이상 수면하며 휴식을 취하는 새로운 의료 기술이다. 동면을 통한 휴식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세상에서, 동면으로 인한 갈등은 드러나지 않으며, 동면을 취하는 사람을 돌보아주는 주변인물은 주기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산책을 떠나거나 맛집을 찾아 다닌다. 이러한 소설 전개는 열정적인 사랑 혹은 고통스런 상처와 같은 극적인 감정을 작품에 담지 않으며, 오직 잔잔한 휴식과 여유로운 생활만을 작품에 드러낸다. 박솔뫼의 작품은 고로 독자에게 감정적인 부담을 전가하지 않고 독자 역시 함께 휴식을 선사하는 느낌을 준다.


박솔뫼의 환상성이 이유리의 환상성과 다른 것은 감정을 작품에 표출하는 정도와 관련된다. 이유리의 작품은 인물의 사랑의 감정(「빨간 열매」, 「둥둥」)이든 고통의 감정(「브로콜리 펀치」)이든 독자가 그 감정을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지켜보도록 한다. 이유리의 환상성은 모든 인물들과 독자가 하나의 감정에 한껏 취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해준다. 반면에 박솔뫼의 작품들―특히 소위 ‘동면 연작’에 해당하는 작품들 「수영하는 사람」, 「달리기 수업」, 「이 방에서만 작동하는 무척 성능이 좋은 기계」 등―은 감정을 극대화시키지 않고,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그 감정의 폭력성을 지워버린다.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 플롯이 갈등의 고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작가의 환상성 모두 굉장히 특이한 지점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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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각 작가, 혹은 한 작가 내에서도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차별성을 천천히 파악하다보면 자신의 소설 취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읽을 소설을 선택하고 애호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권리이며, 여러 소설의 특징을 정리해나가며 더욱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유리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실천문학》 2020년 봄호에 발표된 「손톱 조각」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이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아 이를 함께 공유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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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작가

 

 
[크기변환]이유리.jpg
이유리 작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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