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적 영화와 영화적 시가 지닌 무국적성 - 2편

영화와 시의 서사성 비교
글 입력 2021.07.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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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영화와 영화적 시가 지닌 무국적성- 1편>에서 이어집니다.


 


서사적 인간들을 위한 의식- 시 <갈색 가방이 있던 역>과 영화 <로제타>를 바탕으로



심보선 시인은 산문집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집필하며 한국 사회를 ‘절규하는 처절 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절규가 외부로 표출되어 타인과 공동체를 향할 때, 공적인 절규, 즉 ‘절규의 연대’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2016년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역시 공적 절규의 피치가 절정을 향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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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는 홀로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 김 씨(당시 19세)가 출발하는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로, 비정규직 수리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산업 비리가 표면화된 계기였다. 심보선 시인의 시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은 시인으로서 이 비극적인 사고를 재현하고 서사 속 인간을 애도하는 방식을 살펴보기에 아주 적합한 작품이다.


 

갈색 가방이 있던 역 /심보선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없었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전지전능의 황금열쇠여,

어느 제복의 주머니에 숨어 있건 당장 모습을 나타내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이것 봐. 멀쩡하잖아, 결국 자기 잘못이라니까.”


갈가리 찢긴 소년의 졸업장과 계약서가

도시의 온 건물을 화산재처럼 뒤덮네.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무렴. 직업엔 귀천이 없지, 없고 말고.”


소년이여, 비좁고 차가운 암흑에서 얼른 빠져나오렴.

너의 손은 문이 닫히기도 전에 홀로 적막했으니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난 그를 향해 최대한 손을 뻗었다고.”


허튼 약속이 빼앗아 달아났던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자, 스크린도어를 뒤로하고 어서 달려가렴.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에게로 쌩쌩 달려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주세요!

우리가 지옥문을 깨부수고 소년을 와락 끌어안을 수 있도록.

 

 

심시인은 이 작품이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의 형식을 고쳐 썼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원작은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 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라는 연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주인을 잃고 흩뿌려진 물건들을 시를 통해 한데 모으기 시작한다. ‘컵라면’, ‘나무젓가락’, ‘스텐수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편적 이미지와 중첩되어 처절한 일상의 오브제들로 모인다. 그에 반해 소년에게 없었던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학’, ‘싸다 만 선물’은 부재라는 공통점으로 모인다. 삶의 무게에 짓눌렸던 소년에게 청춘이라면 응당 가질 만 한 종류의 상징물들은 허락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오브제를 잘 분류하고 또 모은 후에야 진짜 '의식'이 시작된다.

 

다양한 요소들로 서사를 사방에서 입체화한 시인은 소년을 ‘서사적 인간’으로 만드는 지점에 다다른다. 서사적 인간은 곧 하릴없이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나’라는 1인칭 대명사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 ‘우리’로 확장되는데, 이것이 소년을 비롯한 수많은 서사적 인간들이 조우하게 되는 부분이다. 스크린 도어 정비공의 개인적 서사가 보편적 서사로 확장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인은 기꺼이 서사적 인간들을 끌어다 잇는 매개가, 심보선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당’이 되어 그들의 분노와 혼을 달래고 있다. 이에 대한 시를 적어 내려가고 또 공유하는 것은 하나의 문학적이며 사회적인 ‘의식’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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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제타> 포스터

 


영화 <로제타>는 리얼리즘의 거장 다르덴 형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큼 그 뛰어난 재현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더불어 시 <갈색 가방이 있던 역>과 동치해 보면 다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대표적으로는 <로제타> 역시 불안한 고용 상태를 견뎌내는 빈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를 서사적 주인공으로 포섭하는 방식은 이러하다. 카메라는 주인공 소녀의 바쁜 하루를 핸드헬드로 따라가는데, 앞서 설명한 시인처럼 이번에는 카메라가 매개이자 무당의 역할을 해낸다. 카메라는 소녀의 삶에 대한 동정과 가치 판단을 배제한 객관적인 시선  ̄말하자면 키노 아이의 시선 ̄을 취하는데,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은 ‘나’라는 주관을 개입시키긴 했으나 역시 서사 바깥으로부터 날아든 말을 큰따옴표 안에 그대로 옮기고 실제적인 오브제들을 병치시킨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보장한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서사적 인간들을 뭉치게 하는 방식이다. 시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이 시를 읽는 이들까지를 하나의 서사적 인간 군상으로 결집해 ‘우리’로서의 행동 양식을 주장하는 반면, 영화 <로제타>는 오히려 관객을 서사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서사적 인간 집단을 구성한다. 여기서 밀어냄이란 관객의 서사를 주인공의 서사 밖으로 사태를 객관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껴안음에는 분명 청년 실업의 궁극적 해결책으로 제시된 ‘로제타 법’의 통과와도 관련이 있다. 서사적 인간들은 의식을 통해 위로받고, 곧 사회적 인간들로 비대해진다. 한 마디로 서사적 인간들의 조우는 서사에 기동성을 불어 넣는다.

 

 

 

이미지로서의 연출- 시 <이별 씬>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바탕으로


 

이 파트에서는 서사를 만드는 양식적 측면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심보선 시인의 시 <이별 씬>은 그 제목에서부터 영화 용어인 ‘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하나의 영화적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주목할 지점은 정말 시 속에서 영화의 구성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별 씬 /심보선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어

머리 위에선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어


겨울밤 네 집을 나설 때

내 손바닥에 닿았던 철문의 냉기가

갑자기 온몸을 감쌌지


그 뜨거운 여름날에

우리는 길 한복판에 얼어 있었어


신은 우리를 따로따로 발견했지

2월과 8월에

다른 배 속의 암흑과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거슬러 천천히 하나가 되었지


사랑은 두 존재를 하나라 믿는 신의 착란이라고

사람을 떠나는 것은 사람의 첫 번째 자유라고


나는 말하지 않았어


지나는 행인들은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다만 말 없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후략)

 

 

‘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어/머리 위에선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어’는 마치 행동 지문과 상황 지문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엉터리 비극 배우’라는 시어를 통해 배우와 대사의 존재도 공고히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갖 소리’들의 존재를 통해 영화 사운드의 감각을 살려낸다. 현장음은 물론 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음, 또 이들을 하나의 소음으로 중첩해 인식하게 되는 관객의 환상까지도 묘사하는 방식이다. 또한 산산이 부서지는 햇빛의 이미지는 인공적으로 직조해낸 조명 세트를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은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지’라는 행은 관객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별 상황을 객관화해 담는 카메라의 존재까지도 암시한다. 이것은 완벽한 ‘씬’이며, 상당히 영화적인 묘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시 <이별 씬>은 선명한 이미지성으로 뭉쳐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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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애의 온도>의 스틸컷

 


일반적으로 ‘씬(Scene)’이란 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반영하는 영화의 기본 구성 단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시적으로 구성된 씬이란 독특하게도 한 장소, 같은 시간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시간은 겨울밤이었다가 뜨거운 여름날이 되기도 하고, 2월과 8월을 넘나든다. 또 공간적으로는 ‘네 집’, 도시 속 ‘길 한복판’에서 ‘타인의 꿈의 입구’까지도 다다른다.

 

그러나 이 시공간들은 결국에는 이별하는 순간의 두 남녀 상황으로 끊임없이 수렴한다. ‘우리는 헤어지는 것에 그토록 집중했기에/헤어지는 데 실패했던 거지’라는 시구처럼, 독자(엄밀히 말하면 관객이 될 수도 있겠다) 역시 이별하는 상황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이미지를 정교하게 짜낸다. 마치 영화의 편집 기법 중 하나인 몽타주를 보는 것 같이 계절의 이미지가 선명히 오고 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이 시가 지닌 함축성이 오히려 이미지성으로 선명해진다. 이것을 시만이 표현할 수 있는 '영화성'이라 일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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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스틸컷

 

 

비교군의 영화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선정한 것이 다소 의외일 수 있겠다. 시 <이별씬>과 이미지적으로 겹치는 장면이 존재하지 않음은 사실이다. 지중해의 햇빛과 이를 흠뻑 받은 달뜬 풍경, 어린 사랑의 열기, 복숭아 과즙의 아릿함으로 가득 찬 이 작품에는 단 하나의 이별 씬이 존재한다. 보편적인 그것과는 그 양상이 달라 이별 씬이라는 지칭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이는 크레딧과 이어지는 엔딩 씬으로, 주인공 엘리오가 벽난로 앞에 앉아 아주 느리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인상적인 점은 시마저 갖추고 있는 이별 씬의 구성 조건들이 영화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씬에는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이별의 상황뿐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도, 현장음인 모닥불 소리 외에는 그 어떤 환상적인 음향 효과도, 심지어 이별하는 대상조차도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다. 이는 정말로 ‘헤어지는 것에 그토록 집중하는’ 그 상황 자체만을 남겨둔 채 나머지의 여타 요소들을 거세하는 방식으로 이목을 끈다. ‘씬’의 완벽한 묘사를 위해 시는 더하고, 영화는 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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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이 샷을 통해 엘리오를 관조하는 관객들은 픽스된 카메라의 존재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도 이별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이별이라는 서사성을 담는 그릇으로써 영화와 시의 차이점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는 둘 사이의 매체적 특징으로부터 기인한다 생각하는데, 직접 시각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로서는 이별의 여타 부산물들을 제거한 채 ‘헤어지는 것에 그토록 집중하는 대상’ 하나만으로 ‘실패한 헤어짐’의 서사를 부풀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로 이미지성을 빚어내는 시가 영화적 이미지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여러 상황과 사운드, 색감을 중첩해 서사의 층을 쌓아가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마치며: 영화와 시가 다루는 서사


 

본론을 통해 서사적 인간과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공백, 이를 채우는 방식, 서사적 인간과 그들을 애도하고 위로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씬’의 개념에 집중해 서사가 이미지화되는 방식에 대해 톺아보았다. 본론의 분석 글은 분명 심보선이라는 단 한 시인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했고, 다룬 영화의 수도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분석한 내용을 영화와 시의 서사성 전반으로 확대해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소적 분석이 의의를 지니는 것은 그간 영화에서 가장 경시되어온 부분이 ‘시적인 특성’이며, 반대로 시에서 가장 경시되어 온 부분 역시 그 ‘영화적 특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당 둘의 그러한 특징을 '무국적성'이라고 정의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인지하고 나면 둘 사이의 매체적 교류가 보다 자연스러워질 것이고, 창작자의 입장에서 서사 세계의 외연을 더욱 넓힐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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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의 스틸컷

 


시에 있어 서사성이란 단순히 영화적으로 상황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적 서사에만 익숙한 나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서사를 이루는 요소들, 특히 공간, 시간, 인물, 상황이라는 풍선에 바람을 넣어 그 어느 곳에서 보아도 똑같이 둥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가 채택한 방식이다. 이를테면 시적 공간을 서사적 인간들이 공유하는 고향으로, 시간은 모두가 돌아가고 싶은, 혹은 조우하게 될 시간으로 설정하는 방식 등이 있다. 따라서 시는 다양한 독특한 기법을 차용해 영화나 소설 등의 네러티브 매체와는 또 다른 서사성을 직조해가는 것이다. 시의 보편적 특징인 함축성과 영화적 서사성이 결합된 심보선 시인의 작품은 그렇기 때문에 감각적이며, 영화학도의 입장에서 큰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화와 시는 다룰 수 있는 서사의 외연이라는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서론에서도 밝혔듯이 영화는 서사의 사실성, 나아가 실제성을 설득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며, 이를 통해 느낀 실감이 감상의 기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해서 감정적 동화를 이끌기에 유리하다. 그런데 이는 보통 물질세계의 입장에서 본 사실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는 서사적 상황에 깃든 인간 내면의 환상, 감정,  ̄심보선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규’가 지닌 사실성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

 

아이러니 하지만 물질세계에서 발생하는 피상적 서사는 필시 이에 엮인 인간의 환상을 낳고, 최종적으로 형상화되는 것은 이들이 마구 뒤섞인 서사이다. 결론적으로 물질세계와 환상세계의 경계에 선 이도 저도 아닌 듯해 보이는 무국적자가 어찌 보면 가장 사실적인 서사인 것이다. 시의 서사 역시 영화 못지않게 날카로운 사실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앞서 제기했던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론의 말을 옮기자면, 영화와 시 사이의 서사성이 포개질 수 있는 지점에 대해 파헤치고자 한 필자의 시도가 꽤나 의미 있었다 사료된다. 영화와 시는 각자만의 서사를 표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예술 장르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끊임없이 변주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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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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