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로 2020'이 우리에게 남긴 것 [운동]

글 입력 2021.07.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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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수많은 해외 축구 팬들을 가슴 뛰게 했던 유로 2020이 지난 월요일 막을 내렸다. 24개국의 선수들이 펼친 51번의 게임은 하나같이 볼거리가 충분한 명승부였다.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유럽에서 열리는 이 축구대회는 전 세계에 큰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이번 대회에 열광하였고, 한국 시각으로 새벽에 열리는 경기를 종종 챙겨보았다. 덕분에 낮과 밤이 바뀐 생활 패턴을 아직 유지 중이고, 매 경기 함께 했던 야식은 나의 배를 더욱 볼록하게 만들었다. 해외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도 아닌, 나와 그 어떠한 연고도 없는 유럽국가의 경기에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대회,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한 언더독 팀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대회에선 조별 리그 탈락, 조국에선 국민 영웅


 

본선 진출 24개국 중 가장 먼저 눈에 띈 국가는 ‘북마케도니아’였다. 피파 랭킹 62위, 이번 대회 참가국 중 가장 낮은 순위의 국가로, 이번 대회가 국가 역사상 첫 국제 대회 본선 참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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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케도니아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이자

고란 판데프의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

네덜란드의 주장 조르지뇨 베이날둠이

판데프의 이름과 국가대표 출전 경기 횟수가 적혀있는 네덜란드 유니폼을 증정하며

레전드의 마지막을 예우했다.

 

 

북마케도니아의 공격수 ‘고란 판데프(Goran Pandev)’는 팀의 캡틴이자, 북마케도니아 축구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이다. 37세의 나이, 2001년 프로 데뷔 후 20년 동안 다양한 유럽의 명문 구단을 거치며 프로 선수 생활을 해온 그도 이번 대회가 그의 첫 메이저 국제 대회였던 것이다.


그는 한국 시각 6월 14일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조국의 첫 메이저 대회 득점을 기록했다. 프로 생활 21년 차, 그라운드에는 자신의 데뷔 이후 출생한 어린 선수도 여럿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당당히 노장의 힘을 보여주었다.

 

비록 팀은 패배했고, 마케도니아는 결국 조별 리그에서 짐을 싸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판데프는 북마케도니아에서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중이다.

 

 

판데프가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에서 교체 아웃 되는 순간,

팀의 동료들과 관중들은 20여년 간 조국을 위해 헌신한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21년 여름, 바이킹 전사들이 써 내려간 기적 같은 동화


 

한편, 이번 대회에서 언더독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팀은 바로 덴마크이다.


조별 리그 첫 경기인 핀란드전에서 팀에게 정말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덴마크의 간판선수이자, 전 토트넘 소속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크리스티안 에릭센(Christian Eriksen)’이 경기 도중 심정지로 쓰러진 것이다. 그라운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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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주장 시몬 키예르가 에릭센의 아내를 진정시키는 모습(상)과

선수들을 한데 모아 에릭센의 응급 처치 상황을 보호한 모습(하)은

축구 외적인 문제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은 덴마크의 캡틴 ‘시몬 키예르(Simon Kjaer)’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까지 에릭센의 기도 확보와 가림막을 만들어 빠른 응급 처치에 대한 준비와 에릭센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이후 경기장에 온 에릭센의 가족을 진정시키며 캡틴으로서 그 누구보다 침착한 대처를 하였다.


상대 팀인 핀란드 관객들도 관객으로서의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다. 에릭센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가림막으로 사용된 것은 다름 아닌 핀란드 관중석에서 제공한 초대형 핀란드 국기였다. 또한, 덴마크 관중들과 함께 에릭센의 이름을 연호하며 상대 팀과의 경쟁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에릭센이 쓰러진 이후, 상대팀인 핀란드의 관중들도 하나가 되어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모습은 국제 스포츠 대회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덴마크는 이날 발생한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첫 경기인 핀란드전과 다음 경기인 벨기에전까지 연이은 패배로 조별 리그 탈락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러시아전에서 4대 1로 대승을 거두며 조 2위로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팀의 간판스타이자 에이스인 에릭센의 부재에도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라운드에서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모든 덴마크 선수들의 마음속에는 에릭센이 함께했다.

 

가레스 베일과 벤 데이비스, 아론 램지 등 빅 리그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한 웨일스를 16강에서 4대 0으로 격파하더니, 덴마크와 함께 이번 대회 또 다른 언더독 다크호스로 등장한 체코와의 8강 경기까지 잡으며 팀의 악재 속에서도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에이스의 뼈아픈 공백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이 하나로 뭉쳐

조별 리그 최하위에서 극적으로 16강 진출, 나아가 4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덴마크는

이번 대회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동화 같은 감동을 선사한 팀이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와의 4강전에서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약체라고 평가받던 언더독 팀이 보여준 정신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력이 만들어낸 성적은, 더는 덴마크가 언더독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이탈리아, 53년 만에 우승으로 암흑기 종결


 

이번 대회 결승전인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경기도 그 어느 대회보다 큰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잉글랜드는 ‘축구 종가’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못한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이번 대회는 손흥민의 팀 동료로 잘 알려진 해리 케인을 필두로 한 수많은 프리미어리그 스타들이 참여해 ‘우승 적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침내 4강에서 덴마크를 무너뜨리며 첫 유로 대회 결승 진출과 함께, 나아가 조국의 첫 우승을 안겨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비록 결승전까지 진출은 하였으나, 과거의 아주리 군단과는 달리 잉글랜드에 비해 스타플레이어가 현저히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함께 하던 스타플레이어들의 은퇴와 함께, 이탈리아는 지난 월드컵 60년 만에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며 세대교체에 실패한 암흑기를 걷는 팀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에서 특유의 조직력을 최대화하며 승부차기까지 경기를 끌고 간 끝에, ‘우승 적기’ 스쿼드로 불리는 잉글랜드를 꺾고 5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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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유로 2020의 챔피언이 되며 5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빅 리그의 정상급 선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고의 팀워크와 조직력을 보여주며

팀 이탈리아는 유럽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사상 초유의 전염병 사태 속에서 1년 연기되어 진행된 유로 2020, 이 외에도 수많은 명장면과 이야깃거리를 만든 대회였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승패를 나누는 것 이상의 더욱더 값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는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서로 다른 국적과 다른 팀이기 이전에 함께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 이번 유로 2020이 전 세계인에게 남겨준 따뜻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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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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