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그림책 한 권 [도서/문학]

올가 토카르축과 요안나 콘세이요의, ‘잃어버린 영혼’
글 입력 2021.07.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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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신분인 나는, 나와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대학교 수업 들을 통해 영감을 얻고 많이 배운다.

 

학기를 되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배움들 중 한 가지는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 작가인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축과, 특유의 부드러운 흑연 질감 표현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폴란드 그림책 작가인 '요안나 콘세이요'의 합작인 '잃어버린 영혼(Zgubiona Dusza)'을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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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발매된 '잃어버린 영혼'은 그림 삽화가 80%, 그리고 글이 20%을 차지하는 그림책이다. 당시 수업을 진행하셨던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의 이지원 교수님이 직접 번역을 맡으셨다.

 

당시 한남동의 알부스 갤러리에서는 책의 일러스트를 그린 요안나 콘세이요의 전시회가 상영 중이었는데 개인적인 일정상의 문제로 전시는 보러가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생각보다도 좋았던 나머지 전시를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였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사람이었지요. 자기 영혼은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였습니다.
 


책은 이 문장으로 운을 뗀다. 책이 말하는 ‘어떤 사람’은 얀이다. 어느 날, 얀은 자신의 이름을 잊는다. 두려움에 젖은 얀에게 현명한 의사는 말한다. 영혼을 되찾기 위해서는 단지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 편안히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영혼에게는 육체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영혼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것 말고 다른 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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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joanna concejo

 

 

그래서 얀은 그렇게 하기로 한다.

 

도시 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하고 매일매일 의자에 앉아 자신의 영혼을 기다린다. ’잃어버린 영혼’에는 그 기다림의 여정이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날이, 얀의 수염과 머리카락은 자라서 뻗기 시작하고, 얀이 앉아있던 책상에서는 식물들이 풍성하게 자라난다.

 

시간의 흐름은 요안나의 펜 끝으로부터 세밀하게 표현되었다. 얀은 자리에 앉아 꽃들이 자라는 모습과 장소가 변하는 모습을, 바깥세상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조급해 하지도 않고, 서두를 필요도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거치면서 얀은 서서히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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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joanna concejo

 

 

요안나 작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영혼이 홀로 얀을 찾아 얼마나 오랫동안 길을 헤매는지를 묘사해 놓았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을 영혼과 그 영혼을 기다리는 얀의 쓸쓸한 뒷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영혼이 찾아온다. 지치고 더러워지고, 할퀴어진 모습이언정, 영혼의 눈동자는 반짝임을 잃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고 얀을 찾아낸다. 비로소 그들은 서로를 응시한다.

 

영혼을 되찾고 난 후로부터 얀은 영혼이 자신을 따라올 수 있는 속도로만 걷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정원에 구덩이를 파고 시계와 트렁크 따위의 자신을 구속하는 물건들을 모두 묻어 버린다. 놀랍게도, 시계에서는 종 모양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이 피어나고, 트렁크에서는 겨우내 든든한 식량이 되어줄 호박들이 탐스럽게 열린다.

 

이어지는 요안나의 식물 그림들은 따뜻하고 몽환적이다. 요안나는 '잃어버린 영혼'의 원화를 딸이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구매해 온, 페이지 번호가 도장으로 찍혀 있는 구식 회계장부 위에 10mm 두께의 샤프심을 두 개 겹쳐 그렸다고 한다. 평안하고 여유로운 풍경들을 한참 동안 감상하고서야 나는 책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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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joanna concejo

 

 

작가 올가 토카르축은 자신이 보냈고 기억하는 어린 시절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금보다 더 느리게 흐르고,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여유가 있었던 때의 이야기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이다. 그녀는 인간의 속도로 천천히 흐르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썼다고 했다.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고 단순했던, 영혼들이 시간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던 때에 대한 그리움. 그런 그리움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천천히 흐르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이야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개의 도시를 방문하고, 인터넷을 통해 수십 개의 정보를 습득하며,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하루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것들은 너무나도 빨리 저물고, 눈을 감았다 뜨면 또 다른 내일이 다가온다. 이러한 시간의 속도 속에서, 지금 당신은 영혼과 함께 걷고 있는가?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놓치지 않고 잘 따라와 주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이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에요.
 


반복된 일상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들은 이야기 속 인물 ‘얀’처럼 서로의 영혼과 길이 엇갈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웠으니, 조급해 하지 않고 조금 더 천천히 호흡하며 나의 장소에 머무르겠다고 다짐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끝끝내 나를 찾아올,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나의 영혼을 기다리며.

 

 

[이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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