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가 인생을 가르쳐준다, 나태주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글 입력 2021.07.1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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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엮은이 나태주 | 2021년 6월 25일 출간 | & 출판 |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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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 꽂힌 책을 본다.

 

독립한 나의 공간에는 본가처럼 많은 책은 없으나, 독서를 하지 않았던 시간에 비해 여러 권의 책이 있다. 종이와 글자가 주는 느낌에 수집하는 목적도 있었다. 가끔은 읽고 싶은 충동이 들어 책을 구매해 완독하지 못한 적도 있다. 다 읽지 못해도 어느 날, 그 충동이 다시 찾아오면 책을 샀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국, 책은 다 읽었더라.

 

나태주의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를 읽는 도중, 문득 '시'를 읽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라는 것을 느꼈다. 빼곡한 책장에 시집은 단 두 권이었다. 그것도 지하철에서 팔던 손바닥만 한 작은 시집. 종류를 보아하니 미니미니북이라고 적혀있다.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백석의 <사슴> 시집이 전부였다. 지방에 내려갈 때 들고 가 몇 번 펼쳤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작은 책이라 눈이 아파 그 뒤로 손에 집은 적도 없었다. 왜 샀나 돌이켜보면, 먼 거리를 갈 때 심심할 수도 있겠다 싶어 가볍게 구매했던 시집이었다.

 

그저 말이 예쁘다고 생각하며 넘기던 어구를 조금씩 이해한다. 겉멋이 잔뜩 든 문학이라 단순히 생각했는데, 한 글자에 눌러 담은 감정이 태풍에 휩쓸리는 파도처럼 거세게 몰아친다. 그간 감춰둔 울분이 토할까 짧은 글귀로 물꼬를 터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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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게 시란 어떤 것일까? 작가의 심상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이런 질문을 통해 시를 배웠다. 내가 읽고 느낀 바가 아닌 정해진 답이 있고 외웠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전혀 경험하지 않은 나는 시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어떨 때는 비문학이 더 편할 때도 있었다. 비문학의 답은 항상 나를 납득시켰다.

 

물론 기나긴 의무 교육 기간, 기억나는 시도 있다. 고전 시조나,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시는 기억난다. 하지만 그때 접한 시는 예뻤으나 내 마음을 울리지는 못했다. 지금에서 시를 읽어보니 그럴 만했다. 그때의 나는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고, 적어도 좀 더 살아온 지금이 돼서 한두 개의 시정도 는 공감이 된다. 그리고 한 페이지의 시를 읽고 한 번 더 읽고 두 번 더 읽을 줄 아는 마음이 생겼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경험이란 값진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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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가 엮은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는 말 그대로 인생을 가르쳐준다. 아이러니하게 경험에 따라 가르침이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으며, 깊거나 얕을 수도 있다. 이 사실을 그간 살아온 시간을 통해 공감한다. 이해 못 한 시도 많다. 엮은이가 뒷장에 적어둔 해설과 감상이 아니었다면 뜻하는 바를 모를 수도 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 나는 이 표현이 시의 가치를 다르게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시는 시인의 인생을 담는다. 인생을 글로 읽는 우리가 그만한 깊이가 없다면, 혹은 그를 이해할 만한 힘이 없다면 시의 심상을 외우고 객관식 문제를 찍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그만한 시가 들어올 공간을 만드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먼 훗날 노인이 되어 어느 시 하나 마음속에 담지 못한다면 슬프지 않을까? 그만큼의 경험을 하지도 못하고 나이만 들었구나 싶어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책을 덮은 지금, 모든 시가 와 닿지 않는다. 모두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중 제목과 시인 모두가 마음에 새겨진 시가 있다. 조약돌이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것처럼, 돌멩이가 물의 표면과 만나 잠기는 소리와 튀는 물방울에 일렁이는 잔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시가 가장 첫 장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엮은이기에 큐레이션에 기준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은 <책머리에> 나와 있다.

 

아, 여담이지만 보통 독서를 시작할 때 작가의 말부터 읽는 편이다. 책을 읽어가며 알아내는 재미도 있지만 보통 이유를 알고 시작하는 편이라 책이 뜻하는 바부터 챙긴다. 그리고 내용과 달리 작가의 말투가 들어가 있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나태주의 <시가 인생을 가르쳐준다>는 청년 → 장년 → 노년 → 유년으로 분류한다. 본인은 청년으로 분류되는 나이기에 누구보다 1장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을 여러 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실로 내가 진정하고팠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아껴준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그런 시기라 그런 것인지, 가장 와닿게 느껴지는 시였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은 나를 아껴주는, 나에 대한 사랑이 근본이고 모든 것의 시작이라 말한다. 본인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에게 위안과 위기를 동시에 안겨줄 법한 시라고 생각한다. 공감했다면 앞으로 펼쳐질 무수히 많은 난간을 헤쳐나가기 위해 버티고 즐겨야 할 것이고, 아직 모르거나, 용기가 없다면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기가 두려운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믿는 것이고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청년이기에 청년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고, 장년과 노년의 마음을 어렴풋이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어 아리송하다. 아마 나는 아직도 부모님께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 세대의 청년이겠다. 가끔 쌓여있는 부모님의 부재중 전화를 무심코 넘길 때를 떠올려본다. 좀 있다 연락해야지, 하고 까먹는 나를 되돌아본다. 유년의 감정은 이미 지났기에 기억하지 못한다. 젊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자기 검열의 시간을 잠시 가져야겠다는 마음도 약간 든다.

 

*

 

나태주가 엮은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읽으며, 나는 아직 세상을 더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경험을 통한 이해와 머리로 하는 이해는 극명한 차이를 주며, 시를 대하는 태도의 가치가 달라진다. 누누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생각해보자. 의무 교육 시절을 견디며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접해온 고귀한 시들을 우리가 그만한 대접을 해줬나?

 

생각해보면 '시'를 그렇게 선입견 없이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하고, 가장 순수한 시기다. 동시에 시의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순수하기에 가장 어렸고, 어렸기에 경험이 부족했던 우리에 속했던 나는 인문학적 요소를 배제한 채, 시를 성적을 내기 위한 하나의 문제로만 여겼던 지난날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 다행이지 않나, 나의 속도를 찾은 지금 깨달은 것이 있다.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소화할 겨를을 만들어야 그릇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또 시간이 흘러 다시 인생을 배우고 되새길 필요를 느꼈다. 저명한 시인이 주제를 가지고 직접 엮은 시인만큼 인문학적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볍고 짧은 호흡과 동시에 깊이를 느끼고 싶을 때 읽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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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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