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나아가는 세계 [문화 전반]

절대성과 상대성이 나타나는 과정, 그리고 그 활용에 대해
글 입력 2021.07.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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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험이 끝났다.

 

계절학기를 듣는 3주 동안 무지막지한 속도로 나가는 진도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학기에 들을 과목을 3주 안에 해치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듣는 계절학기지만 이렇게 머리 아픈 기간이 될 줄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과목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이 설명을 친절히 해주셔서 개념에 다가가기는 수월했지만, 내용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2번, 3번은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공식들이 너무나 끔찍해보였다. 비슷해보이는 공식이어도 사소한 부분에서 달랐다. 품고 있는 의미가 달랐고 설명하고자 하는 대상이 달랐다. 그래도 시험이 끝나서 다행이다. 조금은 해방감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

 

며칠 뒤면 나의 실력에 따른 성적이 나오게 될 것이다.

 

상대 평가에 의존하기 때문에 나보다 잘 본 사람이 많으면 나는 낮은 성적을, 나보다 잘 본 사람이 적으면 나는 높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대부분 수업의 평가 방식이다. 아닌 과목도 있겠지만, 대학교 내의 많은 수업은 상대 평가로 성적을 매긴다.

 

반대로 90점 이상은 A+, 85점 이상은 A0, 80점 이상은 B+ 이런 식으로 성적을 매기는 수업도 있을 것이다. 학생 수에 상관없이, 특정한 기준만 만족시키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시험이 수능 영어이다. 수능 영어는 원래 상대 평가였지만, 최근 절대 평가로 평가 방식이 바뀌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상대 평가 혹은 절대 평가로 성적을 받는다.

 

상대 평가는 '비교'가 우선되고 절대 평가는 '기준'이 우선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의 바탕이 되는 개념으로 '상대성'과 '절대성'이 있다.

 

 

 

상대성과 절대성



'상대성'과 '절대성'은 서로 대비되는 개념이다.

 

절대적인 것이 '정확한 것', '어떠한 기준에 맞춘 것',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이라면 상대적인 것은 '모호한 것', '쉽게 비교할 수 없는 것',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위에서 상대 평가는 '비교'를 이용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평가를 위한 방식이 '점수에 따르지 않음'이었을 뿐, 본질적인 상대성의 뜻은 '비교할 수 없음'이다.)

 

그럼 위와 같은 성질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 것일까?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일까?

 

위에서는 시험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왔듯이 분명 우리 근처에 있을텐데 말이다.


 

 

절대성, 무지에 의한 인간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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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거의 없고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던 과거에는 절대적인 존재가 사람들에게 필요했다. 알 수 없는 난해한 현상들을 설명해 줄 어떤 우월한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신'이 있다. 신을 추앙하던 시대에는 모든 기준이 신에게 맞춰졌다. 신의 가르침이 정답이었고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 오답이었다. 신이야말로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의 가르침에 충성하며 그것을 따르는 행위를 '선'이라 일컬었다. 약자를 돕는 것, 교리에 쓰인 내용대로 행동하는 것,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선'이었고 약자를 돕지 않고 교리에 쓰인 내용을 무시하며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모두 '악'이었다.

 

그리고 신의 대리자로 불리는 왕, 족장 같은 존재를 사람들은 최고의 권력자라 받들며 그들을 따랐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의 말이 곧 법칙이어야 이 세상을 쉽게 통치할 수 있었다. 그들이 신의 이미지를 등에 업은 것은 그런 절대성에 기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고 과학 기술이 발전하며 우리가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더 많아졌을 때에는 더이상 신이 예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비가 오는 것은 신의 노여움, 혹은 신의 축복이 아니라 대기의 움직임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화산과 지진 또한 지구의 지질 활동에 의한 자연 재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빛은 신의 가호가 아니라 태양으로부터 오는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여러 종교의 교리 또한 해석하기에 따라 내용이 천차만별로 바뀔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신은 우리에게 절대적 규칙을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신은 우리의 염원을 대신할 존재가 될 수 없었고 자연스레 '절대자'의 위치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신은 초월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죽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상대성,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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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존재로 대변되었던 신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야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와 수많은 가치들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유일신만이 정답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는 무교, 여러 신을 추앙하는 다신교 또한 정답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신의 교리가 여러 방향으로 해석되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모습 또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왕과 귀족은 고귀하고 백성과 노예는 열등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이념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 또한 소중하다는 생태주의로 가치관을 확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상대주의 가치관이 등장하면서 우리 세계는 빠른 속도로 진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에 무수히 많은 고유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각자 나름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옳고 그름을 함부로 규정짓지 않는 사회, 인종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 모두 상대주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절대성의 역할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절대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초월적 절대성은 사라졌지만, 특정한 기준이 필요한 곳에는 이러한 절대성이 깃들어 온전한 세상을 이루기 위한 기본 뼈대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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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시가 '법'이다. 법은 '우리가 하면 안될 일'을 규정해 놓으면서 안정된 세상을 이루는 1등 공신 역할을 해냈다. 법이 폭력을 '해서는 안될 것'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폭력을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고 암암리에 숨어있던 '폭력'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과거 학교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지던 체벌, 집 안에서만 벌어져서 남들이 알기 어려웠던 가정 폭력 등이 우리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다 법이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법은 타인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으로 제한이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절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제한하기 위해서 절대성이 쓰여야 한다.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절대성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절대성이 쓰이는 것은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성이 쓰여야 할 곳과 상대성이 쓰여야 할 곳을 명확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상대성이 쓰여야 할 곳에 절대성의 가치를 들이민다던지(어떤 문화가 옳고 어떤 문화가 미개하다 하는 식), 절대성이 쓰여야 할 곳에 상대성의 가치를 들먹인다면(내가 하는 범법 행위는 괜찮고 네가 하는 범법은 나쁘다는 식) 그것만큼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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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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