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방법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글 입력 2021.06.2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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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인터뷰로 표현된 글들이 하나의 에세이보다 더 깊이 스며들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평소 연예인들의 인터뷰 모음을 종종 구경하는 편이고, 이미 그들의 몇몇 인터뷰는 이곳에 글을 기고하면서 꽤 많이 인용하기도 했다.

 

인터뷰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상대방에게 궁금한 점을 공식적으로 물어봄으로써 그에 대한 답변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과 걸어온 삶의 흔적들을 짧게나마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서로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깊은 관계에서도 진지하게 인터뷰를 진행해나간다면 이제껏 몰랐던 면모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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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가까이 신문과 잡지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인터뷰 세계를 구축해온 박희아 기자의 예술가들을 상대로 한 인터뷰집 시리즈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의 두 번째 책이다.

 

우리에게 노출된 유명한 사람부터 그들을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예술을 다루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질문과 답변,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단순히 인터뷰이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아닌 그들의 개인적이면서도 일반적인 사유를 통해 예술을 넘어 삶의 방향성을 한 번 더 재정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예술가들의 인터뷰는 흰 도화지 위에 형형색색의 물감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흩뿌리는 행위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예술가로 칭할만한 이가 없어서인지, 예술가라는 단어가 주는 웅장함과 품위 때문인지, 또는 예술가가 지니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이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라고 칭해지는 이들은 왠지 모르게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그들의 예측불허한 생각과 삶의 흔적들이 흥미로운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읽는 걸 좋아하는 것도, 이번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생각도 그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 산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에 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일,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러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들의 답변을 보며, 그들이 있는 곳이 마냥 다른 세계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예술은 순간적인 창조. 크리에이트되는 순간에 모든 건 예술이에요” - 음악가 겸 배우 이자람 289p
 

 

한 사람의 생각이 공통된 질문에 확답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 의견에 대해 일말의 반감이 없었다. 예술가의 자질이라 여겨지는 것 중 하나인 창의성도 사실 그들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뒷받침되어야 하는 능력이기 때문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작품을 창조하고 사람들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우리는 이처럼 상업적인 성격을 띠는 예술을 다루는 이들만 예술가로 인식하는 편협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 실은 수면 밑의 예술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가 창조되는 순간이 예술이라면 내가 4개월 동안 이곳에 남겼던 흔적도 예술이 되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콘텐츠 영상 하나하나가 예술이 된다. 즉, 예술은 우리가 일상이라 불리는 것들에 이미 녹아있는 상태이다.

 

 

 

공통된 열정


 

 
“제가 맡은 캐릭터가 말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그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 주변 인물들이 이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많이 봐요” - 배우 나하나 41p
 
“정말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가 돼요. 배우듯이 연습해서라도 하면 돼요. 모든 상황들을 생각해보죠.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지 매일같이 생각해보고, 누굴 만났을까, 하루의 시작에서 바라보는 아침은 어땠을까 같은 거. 작가는 그렇게 쓴 게 아니더라도 배우는 그렇게 해야 하죠. 그 사람의 일상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절대 몰라요.” - 배우 박영수 93p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이해하려고 상상하고, 이해하려고 고민해요. 어디선가 발견한 하나가 무척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 배우 이재균 120p
 

 

각기 다른 질문에 대한 이들의 답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연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과 하나 되기 위한 노력과 열정이다. 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스스로 고뇌하고 갖은 방법을 통해 그 인물의 삶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자신과 융화하려 한다. 그래야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배우의 몫이자 제 할 일이라 생각하니까.

 

위 인터뷰뿐만 아니라 26인 모두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를 톡톡히 해내기 위해 제 위치에서 열정적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왔다. 예술이라는 게 객관식이 아닌지라 모두를 끄덕이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란 상당히 어렵다. 아마도 그들은 최대한 다수에게 적합한 정답을 도출해내기 위해 뒤에서 자신의 시간을 일에 쏟아붓는 선택을 했나보다.

 

 

 

그럼에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저를 위한 일이 일을 위한 일이고, 일을 위한 일이 저를 위한 일이고. (중략) 제가 좋아서,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 음악가 림 킴 205p

“이거 아니면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아직 못 찾았어요.” - 시인 황인찬 243p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근데 포기를 안 하려면 삶을 살아야 하더라고요. 내가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단계까지 가야지 그 일을 안 놓지.” - 연출가 김동연 268p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지 취미로 남길지에 대한 선택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막상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리면 그에 잡아먹혀 더욱더 힘든 시간을 보내다 포기하는 사례도 워낙 많으니 말이다.

 

음악가 림 킴은 음악과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 받아들여 무엇을 하든 간에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했다. 시가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못 찾았다는 시인 황인찬의 말은 그의 삶이 얼마나 시에 동화되었는지, 얼마나 시를 사랑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출가 김동연은 좋아하니까 포기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가한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때로는 자신을 갉아먹으며 창조해야 하는, 미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을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그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보다 일하지 못하는 고통이 더 큰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이전보다 창작하는 고통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한 예술가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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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예술은) 역할론으로 얘기하기 보다는, 공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한국 사회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음악감독 김문정 339p
 

 

누군가가 나에게 예술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일상의 순간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고민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도 예술이고, 입시학원에서 무수히 생산되는 작품들도 예술이고, 작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일반인들의 춤사위도 예술이다.

 

시대가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예술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욱 낮아지고,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 세상이 받아들이는 제한된 예술의 폭 안에서 예술가가 늘어날수록 예술가로 살아가는 방법은 어려워지겠지만,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이 또한 묵묵히 이겨내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26인의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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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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