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는 잘 지내요 [사람]

언젠가는 다 말하겠지만
글 입력 2021.06.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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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볼까 고민했다.

 

엄마 보고 싶어, 라고 적힌 문자 칸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껐다. 아직은 마음이 이른 문자를 보내기는 힘들었다. 물 한잔을 마시고 계속해서 엄마 생각을 했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 엄마와 딸이 똘똘 뭉친, 유대관계가 깊은 모녀 관계는 흔했지만, 나는 그 안에 속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팠고 나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엄마를 원망하지 않지만, 종종,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하고 허공에 이름을 뱉었을 때 마음은 조금 덜 시렸겠지, 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쯤이었다. 그쯤에는 작은 삼촌네와 함께 살았는데, 많이 무섭기도 또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늘 일기장에 무언가를 적었다. 어느 날은 삼촌을 원망했고 또 어느 날은 멋진 어른이 된 날 마구잡이로 적었다.

 

눈치 보는 삶에서 빛나는 삶으로 순식간에 도약하고 싶은 마음을 한 자 한 자 흰 종이에 찍어냈다. 지금 그때 적은 걸 보면 유치해서 다시 읽기 민망할 정도인데, 그때의 진심만은 유치하지가 않다. 종종 타임머신이 있다면 나는 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흰 종이 위에 작은 손으로 그렇게도 열심히 적는 한 꼬마 아이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득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글을 쓰면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이름을 떡하니 올려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이후에는 특히 그랬다.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허심탄회하게 적어 보기도 했다. 개인 사정이 쑥스럽다거나 내 별난 성격을 숨겨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딱히 안 했다. 오히려 누군가 글자 위에 놓인 진심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상하게 글을 쓰는 건 나를 다른 사람처럼 만들곤 했다.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속에 놓여 있는 것이 바깥 공기도 맡을 수 있게 되는, 그래서 마냥 썩어들어가지만은 않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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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된 이후로는 많은 게 변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글감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주로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적었다.

 

올해 들어서 사주를 봤는데 이번 연도가 많이 힘든 해라더니, 정말 복채 값을 했다. 매일 같이하던 일도 힘들어진 시기에 글쓰기는 더 간절해졌다. 일주일 내내 울컥 치솟은 마음을 글로 쏟아낸 후 축 늘어져 새로운 주를 맞이하는 게 일상이 된 지난 4개월을 보냈다. 글을 쓰는 건 매 순간이 고통이었지만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면 아마 올해는 아주 많이 어두운 한 해였지 않을까 싶다.


엄마에게는 아직 단 한 번도 내 글을 보여준 적이 없다. 쑥스럽기도 하고 또 엄마가 관심을 두지 않을 걸 알았다. 사춘기를 다 지난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엄마의 사랑에 있어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는 나를 또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한 번도 보여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문득 엄마가 내 글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해졌다. 장하다고 할지, 아니면 왜 이렇게 우중충한 글만 쓰냐고 할지 궁금해졌다. 근데 아마 엄마는 우리 딸 장하다고 하다가 근데 글이 왜 이렇게 우울하냐고 할 것 같았다. 그리곤 결국에 다시 늘 그렇듯 먼 허공을 바라보겠지만.

 

엄마는 늘 엄마 품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하는 나를 많이 걱정하곤 했다. 걱정의 끝은 늘 얼른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거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나올 낌새가 보이면 나는 전화를 끊었다. 삼 학년이 된 후로 매우 바쁘기도 했고, 현실에 부딪혀 자꾸 부모님을 원망하는 못난 마음을 피하고 싶었다. ‘잘 지내’란 말은 쉽게 입밖에 나왔지만, 나는 잘 지내지 못했고 밑에 내려가면 그런 내가 들통 날 게 뻔해 서울을 고수했다.


언젠가는 그래도 엄마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적당한 칭찬을 받고 적당한 꾸지람도 받고 적당한 무관심에 실망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아주 평범한 범주에 있는 것들을 온전히 누리는 상상. 하지만 아직은 엄마도 나도 잘 지내지 못하기에 여기에 이렇게라도 적고 싶다. 그래서 아주 나중에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아무런 아픔 없이 웃을 수 있다면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엄마 아직은 문자로 보낼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 말할게요. 나는 잘 지내요. 그러니까 엄마도 잘 지내세요.

 


에디터 생활의 마지막 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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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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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하루하루 버티면서 사는 게 너무 싫었던 적이 있었어요 남들은 화려하게 혹은 안정적이게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보내는데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 올 내일은 희망보단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으로밖에 안 느껴졌거든요
      죽지 못해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힘들었던 순간들을 지나고 나니 남들이 하는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었더라구요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더 단단해진 지금, 그 순간들을 반추하면 꾸역꾸역 버티면서 극복했던 힘듦들이 마냥 구질구질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도 이처럼 각자만의 시련과 고난 후에 변하는 것일테니 에디터님의 미래도 더 단단해져 있길 바라겠습니다 언젠간 에디터님이 썼던 글들을 행복하게 반추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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