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담대한 해프닝 [미술]

마우리치오 카텔란 <또 다른 빌어먹을 레디메이드>
글 입력 2021.06.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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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또 다른 빌어먹을 레디메이드>, 1996



흑백사진 속 여러 상자와 래핑 된 물건이 한쪽에 쌓여있다. 어떤 물건들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사하는 풍경 같기도 하며 적재된 창고 같기도 하다. 질서 없이 쌓인 모습은 긴박했던 상황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속 상자와 물건은 아주 평범했다. 그저 한 갤러리의 작품들, 팩스 기계와 캐비닛 같은 물품들을 훔쳐 다른 장소로 옮긴 모습이다. 이 대담한 행동을 실행한 작가는 카텔란으로, 이 일로 인하여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절도 행위로 인해 새로운 장소에 모이게 된 작품과 물품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또 다른 빌어먹을 레디메이드>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기획하게 된다. 작가는 장소의 이동을 토대로 작품을 다시 정의했다.

 

장소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장소는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테마 현대미술 노트’의 저자는 장소 특정성에 대해 “작품이 어떻게 보이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작품이 놓이는 공간 배치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뜻”(테마 현대미술 노트, 235p)으로 그 정의를 서술하고 있다. 이는 록시 페인의 <소용돌이>로 예를 들고 있는데, 알루미늄판으로 제작된 복잡하게 얽힌 나무의 모습으로 미술관이 아닌 센트럴파크에 위치하여 의미를 제시한다.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이 작품은 “자연을 작품이 설치되기 전의 상태에서 회의론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테마 현대미술 노트, 234p)모습에 주목한다.

 

카텔란의 작품에서 장소 특정성은 강하게 드러난다. 전시를 목적으로 한 카텔란과 갤러리의 목표는 같았으나, 작가가 주도한 물품의 위치 변화 행위로 인해 위법이 된다. 훔친 것들은 이전의 갤러리에서 전시된 작품과 필요한 물품들일 뿐이었다. 여기서 무엇을 훔쳤는가 면면히 살펴보기 위한 구성요소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된 과정에 주목할 수 있다. 시간의 점유 속 일어나는 사건들은 장소의 의미를 더해주며, “장소는 시간이라는 주제와 상호 교차”(테마 현대미술 노트, 226p)하게 된다. 카텔란은 훔치는 것을 성공해 전시를 기획했고 이것은 하나의 해프닝이 된다. 우리는 유형의 형태로서 다시 볼 수 없다. 한 장의 사진과 고증하는 이야기로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작품의 과정에 주목한 작가는 기성품에 이름표를 붙이는 형식의 ‘레디메이드’를 말하고자 했다. 해프닝에 제목을 붙인 후 전시한 작가 본인처럼 말이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의 역할로서 하나의 그릇을 떠올려보자. 그릇의 의미는 무엇일까? 음식이나 물건을 담는 물건을 말한다. 기성품으로서의,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그릇은 기능과 용도에 집중하게 된다. 사전적 정의로서의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예술적 측면에서 레디메이드는 작가가 뽑은 기성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예술작품이 된다. 이는 기성품의 기능적 면보다 작가의 심상에 따른 기성품의 상징성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 속 작가의 심상을 담기 위한 물품 선택이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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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 1917

   


레디메이드의 선구자로 알려진 뒤샹은 가장 미적이지 않은 소재로써 소변기를 선택했다. 그 후 R.Mutt라는 간단한 표식을 남겼다. 뒤샹은 소변기를 반대로 뒤집고, 좌대에 올려놓는 작품적 행위를 통해 소변기가 더욱 예술작품으로 보이도록 했다. 카텔란은 작가 본인의 선택마저 고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가져왔다. 갤러리의 작품과 기계들, 즉 내용물을 마구잡이로 훔쳐 전시를 진행하고자 했다. 그가 기성화 된 레디메이드를 따르고자 했다면 갤러리의 기성품만을 훔쳐 약간의 표식을 남기기도 한 후 전시를 기획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 역시 하나의 물건으로 인식한 듯 더욱 대담하게 갤러리의 작품마저 훔쳤다. 한쪽으로 쌓아놓았을 뿐, 그것들이 미적으로 보이도록 노력하지 않았다.

 

레디메이드의 등장으로 현대미술은 작품의 표현 방법보다 심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개념 미술이 대두하며 의미 부여 행위는 증폭되었다. 마치 기계 부품처럼 대량생산되는 레디메이드 작품들은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카텔란은 예술가의 선택만으로 예술품이 되는 수많은 레디메이드를 풍자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대담한 훔치기 행동을 통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 작가는 뒤샹보다 쇼킹한 레디메이드 해프닝을 만든 것이다.

 

“무릇 예술가란 속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 없는 심상을 표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발칙한 현대미술사, 32p) 카텔란은 기성화 된 예술에 질문을 던졌으며 사람들에게 이를 생각하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는 ‘풍자’의 형식을 과감히 사용하며 고착된 사회에 화두를 던진다. 그것이 카텔란의 담대한 예술이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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