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덕분에 기분 좋게 궁며들었습니다 -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도서]

아주 사적이라서 유쾌한 김서울 작가의 궁궐 산책기를 읽고 나서
글 입력 2021.06.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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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을 둘러본지 꽤나 오래되었다. 4년 전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놀러 왔을 때 구경시켜 주는 정도가 다였고,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 가족과 여행 시 잠깐 들른 게 다였다. 다만, 오래된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더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고궁의 매력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면 다시 한번 둘러볼 의향은 있었다. 그러다 마침 김서울 작가의 에세이,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만났다. 바로 아래의 문구를 보자마자 집어들었다.

 

※ 주의! 책을 읽고 나면 당장 궁궐에 가고 싶어질 수 있음!

 

오기 비슷한 느낌으로 정말 책을 읽기만 해도 궁궐에 가고 싶어질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읽으면서 아주 묘한 동질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돌, 물, 나무, 박물관 유물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고, 마침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라하니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궁며들다 보니 ('고궁의 매력에 스며들다') 친구에게 고궁의 매력을 영업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 번 날 잡고 고궁의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정도로.

 

여기까지 읽고 나서 '책이 어떻길래?'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면, 바로 아래에서 '어쩌다 덜컥 고궁에 영업당하게 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금부터 김서울 작가의 사사로운 애정 속에 피어난 고궁 속 이야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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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 포인트 3가지



책 제목에서도 밝히듯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기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김서울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들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있다. 그 말인즉슨, 내가 보지 못했던 고궁의 사사로운 부분까지 하나하나 짚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정성스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며, 아주 사적이지만 확실한 이 책의 매력 포인트를 세 가지 정도 짚어보았다.

 

 

1.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구성 - 친절한 가이드라인이 적힌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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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조금 멀리서 바라본 광화문의 사진이 보인다. 이어서 창경궁 통명전 안의 석조 다리, 창덕궁 인정전 내부, 괴석, 창덕궁 선원전의 향나무, 해치, 돌계단까지. 고궁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과 함께 김서울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느낀 그대로의 문구를 번갈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이 특별한 이유는 '궁궐'이라 하면 오래된 시간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거리감과 어색한 느낌을 단번에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첫 구간에서부터 '내가 스쳐 지나간 궁궐의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본문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어서 에필로그와 '참고문헌 및 웹사이트'를 마지막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이 책의 가장 핵심은, 궁궐이라는 공간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궁궐'이라 하면 눈에 보이는 '건축물' 또는 '터'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김서울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궁궐의 모습은 훨씬 더 섬세하고 사적이고 사랑스럽다. 궁궐을 이루는 건축물 뿐만 아니라 기초이자 배경이 되는 돌과 나무, 그리고 유물을 통해 궁궐의 색까지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래서 1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궁궐 취향 안내서' 이후로는 궁궐을 돌과 나무로 가차 없이 분해해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이 다섯 궁을 다소 산만하게 오간다.

 

그럼에도 마냥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각 장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고 앞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 예정이며, 어떤 태도로 글을 읽어주면 좋을지에 대한 마지막 당부까지, 작가의 마음을 아주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글로 담았기 때문이다. 마치 처음 이 책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를 독자들을 고려하여 친절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듯했다.

 

 

몇 사람이 산책을 함께하기도 어려운 때지만 조그만 여행객 무리를 이끌고 궁궐 이곳저곳을 함께 걷는 상상을 해보았다. 앞장서서 깃발을 든 가이드치고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을 많이 늘어놓는 데다 이 궁 저 궁을 얼렁뚱땅 넘나들며 뒤따르는 관람객의 혼을 쏙 빼놓겠지만 말이다. 이게 모두 궁궐 산책을 막 시작한 여행자들에게 궁궐의 예쁜 구석만 보여주려는 나의 소심한 계획이자 계략이다. 모쪼록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궁궐을 거닐며 한 번이라도 더 미소 짓게 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 프롤로그 中

 

 

김서울 작가의 솔직하고도 애정 어린 말들이 모인 이 책은 아주 사적이라서 매력적이다.

 

 

2. 책 속의 작은 유물 기획전 - 이건 에세이인가 기획전인가


전체적인 책의 구성 속에서도 가장 독특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마지막 4장의 '궁궐의 물건'이었다. 해당 장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조선 왕실의 미감이 잘 드러나는 물건을 위주로 골라 소개하는데, 작가가 직접 언급한 대로 마치 작은 '조선시대 왕실 기획전'과도 같다. 각 유물마다 박물관을 갔을 때 오디오 가이드로 들을 법한 이야기를 책 속 구절로 참으로 새로웠다. 그것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분량과 말투로 담아낸 이 작은 기획전 속에서는 김서울 작가만의 사적인 마음의 소리와 감정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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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中

 

 

나각/ 분명 살아 있는 생물이었을 텐데, 어떤 사연으로 붉은색의 근사한 매듭까지 달고 조선의 왕실로 흘러들어 왔을까? 수명을 다한 뒤에도 악기로 사용되다 오랜 시간 후 박물관의 유리관 안에 전시될 자신의 운명을, 소라는 예상이나 했을까?

 

- p.172 中

 

 

이는 스스로를 문화재 덕후라고 소개하는 김서울 작가의 유물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일전에 박물관에서 유물 앞 설명 카드를 읽는 대신 그저 물건을 감상하듯 재미있게 봐주기를 바라며 <유물즈>(2016)라는 책을 쓴 것처럼, 여기 책에 담긴 고궁 속 유물도 지금껏 간직해온 애정을 바탕으로 이어진 인연이자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다 보면 처음에는 살짝 혼란스럽기도 하다. 분명 고궁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고궁 안에 있는 박물관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책 속에 또 다른 책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지금껏 책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틀을 깨는 독특한 구성 덕분에 맛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3. 김서울 작가의 사랑스러운 상상 - 책과 대화를 시작했다


고궁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김서울 작가의 뾰로통한 귀여운 상상과 감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토리가 전하는 고궁의 매력을 단단하게 느낄 수 있는 포인트다. 요컨대 책의 맨 앞쪽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해치의 사진을 두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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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中

 

 
쓰다듬고 싶어지는 복슬복슬한 등, 배 아래 깔린 뒷발과 난간의 모서리를 야무지게 잡은 앞발, 볼록하게 올라온 이마와 뿔, 메롱 하는 혓바닥, 수로 아래 물에 집중하느라 살짝 방심한 엉덩이. 어느 부분이 가장 좋은지, 인기투표라도 부쳐보고 싶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상상을 할 수 있을까?'라는 감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도 어느새 해치 사진 속 등, 앞발, 이마와 뿔, 혓바닥, 엉덩이를 차례차례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누군가 자신을 자세히 뜯어보고 있다는 걸 해치가 알아차린다면 부끄럽고 민망할 정도로. 그리고 그중 어느 부분이 제일 좋은지 스스로 되물어본다. 그러다 결국 '지금 다시 보니 살짝 방심한 엉덩이가 참 매력적이군. 아니야, 앞발도 너무 귀여운데? 안되겠어. 어쩔 수 없이 직접 봐야겠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작가님의 사랑스러운 시선 끝에 다다른 말들 속에는 그저 스쳐 지나갈 법한 무언가의 매력을 파헤쳐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방금 작가님의 귀여운 상상을 시작으로 해치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른 사람이 생긴 걸로 보면 말이다.

 

이외에도 작가님의 시선과 표현 따라 고궁의 구석구석을 보다 보면 어느새 책 속의 작가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요컨대, 김서울 작가는 겨울에 경회루를 들렀다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향나무에 우연히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다른 계절에는 이 나무가 어떤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작가님의 마지막 말에 나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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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 레볼루션 나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겨울철 우연히 시선을 빼앗긴 그 향나무가 정말 책에서 묘사한 대로 나 홀로 응원용 수술을 들고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독특한 모습일지, 또 겨울이 아닌 여름에 보는 향나무는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얼른 더 더워지기 전에 경회루에 있는 춤추는 향나무를 1열에서 직관한 후기를 작가님에게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서울 작가의 산뜻한 말말말



덧붙여, 초심자도 자연스럽게 궁며들었던 김서울 작가의 산뜻한 몇 마디를 인용해본다.

 

 
괴석에 살짝 비눗물을 발라놓고 그 옆에 앉아 바람을 기다리는 상상을 한다. 이 구멍들 사이사이로 방울이 나오면 무척 귀여울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괴석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맨 앞 '괴석' 사진

이 해치상을 엉덩이 쪽에서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몸 쪽으로 바짝 말아 올린, 핫도그를 닮은 통통한 꼬리 옆으로 곱슬곱슬한 털이 나와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해치가 반곱슬 장모종이라는 TMI도 알게 된다. 내 키가 좀 컸다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쓰다듬어봤을지도 모르겠다. - p.97~98 

시야에 꽐 들어차는 밀도 높은 화려한 장식을 계속 맛보다 그와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이미지를 보게 되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시킨 자극적인 함흥냉면 한 그릇보다 옆 사람이 나눠 준 슴슴한 평양냉면 한 입이 훨씬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비슷하게는 두루치기에 동치미 혹은 족발에 막국수 효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 p.117

잠시 도배를 막 마친 궁궐 전각을 상상해본다. 아주 말끔하고 희어서 보기에도 좋았겠지만 쌀로 만든 풀에 고소한 들기름, 콩즙까지 후각적으로도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거기다 아궁이에 불까지 뜨끈하게 땐다면 덜 마른 쌀풀이 촉촉하게 익는 냄새와 들기름 냄새가 뒤섞여 무척 배가 고차지는 방이 되었을 것이다. - p.122
 

 

 

궁며들고 싶다면 읽어보시라



책의 구성도, 말투도, 고궁도, 김서울 작가도 여러모로 매력이 술술 흘러넘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읽고 나서도 이 책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에 대해 꽤 유쾌한 고민을 안고 리뷰글을 작성하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고궁에 들렀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고, 고궁의 텅 빈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 이야기다. 하나하나 살아 숨 쉬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실은 내 궁궐 영업이 성공적이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정말 궁궐에 가고 싶어졌느냐고, 궁궐의 어떤 부분이 가장 보고 싶어졌느냐고 묻고 싶지만 꾹 참고 그저 떠올려보려 한다. 궁월의 돌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사람을, 궁궐의 나무를 조심스레 헤아려보는 사람을, 궁궐의 진짜 색을 상상해보는 사람을.

 

- 본문 p.221 中

 

 

김서울 작가의 궁궐 영업이 성공적이었는지 묻는다면, 나는 단숨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다 자연스럽게 궁며들게 된 나는 더 더워지기 전에 바로 다음 주 창덕궁과 창경궁 나들이를 가기로 결정했으니 말이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다녀오고 나서 어땠는지 '아주 사적인 나의 궁궐 산책기'로 덧붙여 보면 좋겠다.

 

이제껏 읽어온 책과는 다른 색다른 주제와 매력을 맛보고 싶다면, 그것도 기꺼이 궁며들고 싶다면, 김서울의 에세이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적극 추천한다. 스르륵 편안히 잠에 들듯 자연스럽게 고궁의 매력에 빠져드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게 김서울 작가의 고궁을 향한 사랑스러운 시선을 기분 좋게 맞이해보길 바란다.

 

덧붙여, 한 가지 소소한 바람을 말해본다면 김서울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 저마다의 방식대로 고궁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산책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고궁의 허하고 빈 공간이 사람들의 사사로운 발걸음과 애정 어린 시선들도 따뜻해지면 좋겠다. 머지않아 나도 다음 주에 창덕궁과 창경궁 나들이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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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에디터.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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