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플레이리스트 1 [음악]

고생했어, 오늘도
글 입력 2021.06.1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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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를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음악이 한 사람의 성격과도 같은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 음악에는 듣는 사람의 감정이 잔뜩 묻어 있다. 취향과 감정을 담고 있는 플레이리스트는 그렇게 한 명의 사람 자체를 담아낸다.


내 음악 취향은 양극을 띠고 있다. 아주 시끄러운 노래를 선호하거나, 아주 조용한 노래를 좋아하거나. 시끄러운 노래는 가사 상관없이 비트와 멜로디가 내 피를 끓게 한다면 좋아하는 편이고, 조용한 노래는 가사를 곱씹을 수 있는 잔잔한 노래를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은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 음악을 듣기도 한다.


취향이 들쑥날쑥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 그래서인가,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내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를 털어보고자 한다. 오늘 소개할 플레이리스트는 조용한 노래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나는 음악을 여러 플레이리스트에 분류해두고 듣는 걸 좋아해서 핸드폰 단말기에 음원을 넣어 다니는 걸 선호한다. 계절 별로, 상황별로 분류해둔 플레이리스트가 여럿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용량이 상당해져서 단말기를 교체할 때가 되면 더 이상 듣지 않는 음원은 삭제하는 식으로 용량 관리를 했다. 그러니까, 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음악들은 몇 대의 단말기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음악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플레이리스트엔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듣던 노래들을 비롯해서 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음악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 그래서 이 플레이리스트의 이름은 뭐냐면,


고생했어, 오늘도.

 

 

 

No One Told Me Why -알레프

내 맘을 내가 알 수 없는 건 어째서인지


 

 

 

이 곡은 처음 들었던 그 날부터, 내가 종종 찾았던 자장가와 같은 곡이다. 알레프의 약간 먹먹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부르는 가사 하나하나가 잠에 들기 전 곱씹기 정말 좋은 노래이다. 너무 늦지 않게 나를 사랑해달라는 가사는 어느 순간 맥이 풀리게 만든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내 몸의 모든 긴장을 풀리게 한다는 의미다. 대개는 사람에게 상처받은 날에 이 노래를 틀고 잠에 든다.


나한테도 그런 순간들이 많다. 내가 주는 만큼의 감정을 돌려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들. 그렇지 못하다면 나도 사랑을 주는 걸 멈추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날 어지럽힐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는 것 같다. 어차피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라 제가 주는 사랑이 항상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를 통해 돌아오는 것을 얼마나 바라든 간에, 어쨌든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기 전에, 나는 내 주변인의 마음을 생각해줬는지 먼저 생각해보라고, 이 노래는 나한테 그렇게 말한다.

 

 

 

Stars -로시

길을 잃어버렸니 그럴 수도 있어


 

 

 

학생 때,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항상 이 노래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나를 항상 채우고 있었던 때라서 그랬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몰랐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나 혼자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실제로 나는 방향성을 잃은 채 빙글빙글 돌고만 있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공부라는 가장 큰 과업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념이 날 괴롭힐 수 있었던 건 하교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이렇게 목적지 없이 살아도 되는 건지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그럴 때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뭔지 몰라도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이 소중하다는 가사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노래의 아티스트 로시가 나와 같은 나이라는 사실이 이 노래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도왔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이 노래를 듣는다. 나는 아직도 내 방향을 찾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딜 향해 가는 길인지 모른다. 시간이 흘렀지만 자꾸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는 기분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범람해서 나를 덮친다.


이 노래는 그럴 때마다 날 안심 시켜 준다. 고등학생 때를 떠올리게 해주면서, 그 시기를 잘 넘겼던 나를 회상시킨다. 내 이야기를 다 아는 하나의 별처럼 이 노래는 여전히 날 보듬어준다.


 

 

소란했던 시절에 -빌리 어코스티

그 소란했던 시절에 그대라는 이름


 

 

 

라디오를 참 많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자주 듣지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잘 모르는 DJ의 진행과 유명하지 않은 게스트의 목소리, 모르는 타인의 사연과 들어본 적 없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면 나는 온 힘을 다해 집중하지 않고 흐릿하게 그것들을 날리는 과정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배경 음악처럼 라디오를 켜뒀다. 여전히 잘 모르는 게스트가 모르는 사람의 사연을 읽고, 신청곡으로 처음 들어보는 가수의 노래를 재생했다. 그 순간 마침 풀던 문제를 다 풀어 고개를 들었던 건 우연이었다. 처음으로 귀 기울여 들었던 신청곡이었던 것 같다. 잔잔한 피아노 배경음에 덧입혀지는 조금은 슬픈 가사가 나를 매료시켰다. 무엇보다 아티스트 빌리 어코스티의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결국 빌리 어코스티의 모든 노래를 전부 듣고 다운받았다. 그의 노래는 ‘소란했던 시절에’ 처럼 잔잔하고 슬픈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경쾌한 노래도 분명 있었지만, 담담하게 슬픔을 노래하는 게 그만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타이밍 좋게도 내가 그의 매력에 빠진 해의 겨울에 빌리 어코스티 콘서트가 있었다. 당연히 티켓팅에 참전해서 콘서트를 관람했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 한 곡 한 곡 실제로 들어보니 그의 음악이 더 좋아졌다. 가장 처음으로 그를 알게 해주었고 그와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소란했던 시절에’를 들을 때는 실제로 듣는 것보다 큰 감동이 날 먹먹하게 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행복했던 그 콘서트장이 떠오른다. 처음 이 노래에게서 받았던 것과 그 위안의 방법은 달라졌지만, 이 곡은 아직도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노래 중 한 곡이다.

 


 

너무 많은 연애 -김사월

운명을 안 믿어서 운명이 사라졌나


 

 

 

난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에 푹 꽂히고 말았다. 내가 이 노래에서 느끼는 공감은 분명 연애에 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연애뿐 아니라 많은 사랑을 하고 있기에, 나는 그 모든 사랑들로 인한 우울에 대해 공감한다.


김사월은 정말 말하듯이 노래한다. 조곤조곤한 말투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문득 서러워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정말 사랑 딱 하나였는데. 가끔은 내가 그렇게 어려운 걸 바랐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경향이 다소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냥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날 저 먼 곳의 무저갱으로 끌고 간다.


가끔은 그 어둠 속에 머물고 싶을 때가, 가만히 혼자 서러워하고 싶을 때가 있다.


김사월의 노래는 그때마다 내 옆에 있었다.



 

서로는 서로가 -위아더나잇

오늘 하루는 어땠어 우린 더 잘 될 거야 바빠도 건강해야 돼


 

 

 

위아더나잇의 노래는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한다. 가장 처음 이들을 접했던 노래는 ‘그대야 안녕’이었는데 이렇게나 담담한 목소리와 가사로도 애절함을 전할 수 있구나, 하는 충격을 느꼈다. 그들의 노래 중 좋아하는 노래가 참 많은데, 내가 다운 받은 거의 모든 노래가 이 플레이리스트 안에 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노래는 그중 가장 많이 듣는 ‘서로는 서로가’라는 노래이다.


가장 먼저, 이 노래의 가사는 듣고 있으면 힘들었던 하루를 보듬어주는 느낌이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소소하지만 내 생각을 해주는 듯한 가사를 곱씹으면 그만큼 챙김 받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서로. 서로를 생각하기에는 조금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생각한다. 서로의 하루가 안온하길 바라고, 밤에 잠을 잘 자는지 궁금해하고, 식사는 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서로를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꼭 가사창을 켜두고 듣게 된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우린 더 잘 될 거야. 바빠도 건강해야 돼. 차가운 온도계를 꺼내 서로를 살피며. 이 가사를 듣는 순간에는 내가 생각하는 ‘서로’ 여러 명이 떠오른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떠올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노래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서로’ 안에 속하기를 바라게 해주는 노래이다.

 

 

 

Love me -이루마

작은 행복으로부터 -세레노


 

 

 

 

원래 가사가 없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루마의 ‘Love me’를 들은 순간, 취향은 순식간에 개조당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내게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고, 습한 여름밤은 어느새 청량한 기억으로 미화되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 ‘Love me’만 들었다. 우울할 때도 행복할 때도 이 노래만 들었다. 가사가 없는 노래는 그때 그때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을 수 있다. 같은 선율이라 할지라도 어떤 때에는 위로가, 어떤 때에는 격려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이 곡의 화자가 되고, 때로는 청자가 되면서 참 많은 날들을 이 곡과 함께 했다.


그걸 시작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많이 찾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내가 무조건 가사가 없는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가사가 없는 만큼, 멜로디가 취향에 맞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찾은 아티스트가 세레노였다. 세레노는 아름다우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독특한 멜로디가 특징인 아티스트이다.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작은 행복들로부터’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후에 공개된 곡이라 유튜브 최초 공개를 애타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지친 날 이 노래를 들으면 작은 행복들이 모여 내게 말을 거는 기분이 든다. 작고 귀여워서 부담 없이 안아줄 수 있는 그런 행복들 말이다.


이 플레이리스트 속 가사 없는 곡은 여럿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두 곡을 골라봤다.

 

 


오늘 하루도 잘 견딘 우리에게



유독 견뎌내었다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하루가 있다. 하루를 잘 보낸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견뎠다는 느낌의 하루. 그저 흘러가는 대로 떠밀려가다 보니 어영부영 하루의 끝에 도달해버린 날.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잔뜩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하루. 종국에는 그 모든 게 나를 짓눌러 버릴 것 같은 그런.


이 플레이리스트는 정말 가끔, 아주 가끔 그런 날들을 견딜 수 없어질 때 재생하곤 한다. 가슴이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 때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 조금 차분해지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잔잔하게 고생했다는 위로를 건네는 이 곡들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가라앉은 나의 위로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들을 걷어낼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 때 많이 들었던 노래가 다수 포함된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될 일이 없는 것이 나에게 좋을 수도 있다. 그만큼 힘든 날이 없다는 의미이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날들이 아예 없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작은 휴식처를 여기에 마련해 두었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멈춰 버려도, 이 노래들은 얼마든지 ‘잘 견뎠다’고, ‘고생했다’라고 말해줄 것이기에.


요즘도 여전히 일흔여 곡의 노래들이 이 플레이리스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하루도 잘 견뎌낸 나를, 우리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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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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