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궁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도서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글 입력 2021.06.07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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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역사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나라별 역사를 만화로 풀어낸 시리즈 책이 있었던 것을 말이다. 나는 바로 그 시리즈, '만화로 보는 OO왕조 N00년' 시리즈가 참 좋았다. 만화여서 알기 쉬운데 역사까지 알 수 있어서 재밌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분량이 많은 신라왕조 1000년 책을 가장 좋아했고,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아무래도 내가 사는 현대에 가장 가까운 조선왕조 500년 책이었다.


장성한 후에 내가 4대문 안에서 살면서 대학을 다니고, 궁궐 바로 옆에 붙어 살 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 어릴 적에 그렇게 역사를 좋아했던 탓인지 나는 서울에서 고궁이 밀집한 종로에서 살며 늘 그 분위기에 취해 살았다. 기와지붕과 돌담벼락이 늘어진 그 길을 걷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역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과연 서울 시내의 모든 궁궐을 다 돌아봤던가? 놀랍게도 아니었다. 서울에 있는 궁 중에서도 경희궁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궁궐들을 골고루 많이 다닌 것도 아니다. 집에서 산책을 갈 만한 거리에 있었던 창경궁보다도 오히려 많이 갔던 곳은 경복궁이었다. 아무래도 경복궁은 생과방 행사나 야간개장 같은 이벤트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주 갈 만했던 것이다. 이렇게, 고궁을 생각보다 많이 누비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고 나니, 나는 생각보다도 우리 궁궐을 잘 모른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래서 도서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이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 나와 고궁을 잇는 가교가 되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책 소개 >


어서 와, 이런 궁궐 책은 처음이지?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저게 한 장에 얼마짜린데...' 다섯 개 궁궐의 수십 채 전각 중 단 하나뿐인 청기와 전각의 값을 속으로 계산해보고, 쌀과 콩즙과 들기름으로 실내 인테리어를 마감했던 궁궐 건물의 고소한 냄새를 상상하는 발칙한 유물 해설가 김서울의 궁궐 탐방기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이 출간되었다.

 

궁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유적이다.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거대한 역사가 무거워서일까, 서울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호기롭게 입장했다가도 꽃구경만 하다 안내판의 한자투성이 설명에 압도되어 슬쩍 나와버리기 일쑤다.

 

아니, 꼭 조선 역사를 다 알아야만 궁을 즐길 수 있나? 그저 뒤뜰을 거닐 듯, 모델하우스나 인테리어숍 둘러보듯 구경하면 안 되나? 국사 공부에 대한 부담감은 잠시 잊고, 마음의 벽을 조금만 허물고 궁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볼 순 없을까? 막연히 지루할 것이라 생각했던 궁궐에도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표정들이 곳곳에 잔뜩 숨어있다는 걸,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는 김서울 작가의 안내를 따라 궁을 거닐어보자. 섬세하고 유쾌한 김서울 작가의 글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포착해내는 정멜멜 사진작가의 사진이 생생함을 더한다.

 

오늘날 우리가 벽에 액자를 걸고 철마다 커튼을 갈아 끼우듯 궁에 살며 자신의 집을 꾸몄을 조선 사람들의 취향과 미감을 상상하고, 또 현재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의 시선으로 궁 이모저모를 관찰하다 보면 궁궐 산책의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만 아는, 내 취향에 꼭 맞는 새로운 궁궐의 표정을 찾게 될지도.

 


 


나는 분명 고궁에 가면 그 분위가와 정취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궁 근처에 살면서도 매일같이 궁을 찾아갈 정도까지는 아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궁을 한 번 전체적으로 돌아본 뒤 어느 순간, 궁의 모습들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꼈던 게 떠올랐다. 궁은 기본적으로 주춧돌 위에 목조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는다. 처마 아래에는 아름다운 단청이 있고 추녀마루에는 와제토우가 앉아있다. 그 기본 골조가 비슷하다보니, 현판이 없으면 건물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따지고 보면, 분명 고궁 건축물의 기본 골조는 비슷하다. 그러나 궁궐은 오랜 역사가 배여 있는 곳인 만큼, 세세하게 뜯어보면 이면의 많은 이야기들을 알 수 있게 된다. 맥락에 따라 각 궁궐이 우리에게 다르게 와닿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복궁은 육의전부터 경복궁 내부까지 모두가 일직선으로 놓여 있어 사실상 사람이 거주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조선왕조에서 경복궁을 주궁으로 삼아 기거하며 지냈던 왕은 세종대왕뿐이고, 오히려 창덕궁이 가장 많은 왕실 사람들이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경복궁처럼 직선적인 구조가 아니라 중심에서 약간 빗겨나간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궁에 얽힌 이런 비화는 각 고궁을 더 깊게 느껴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그런가 하면 서울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에 비해 경희궁은 정말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고궁이다. 저자 김서울은 종종 경희궁에 가면 사람이 한 명도 없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에겐 고궁인 경희궁보다 아파트 경희궁자이가 더 유명할 수도 있을 법한 정도다. 그런 경희궁에 대해서 도서 '아주 사소한 궁궐 산책'이 콕 집어 주고 있다보니, 나도 주말에 한 번 경희궁을 가보고 싶어졌다. 나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은 가봤어도 경희궁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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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궁궐들은 목조건물이다. 그러나 목조건물이라고 해서 나무만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궁궐을 조성하는 데 있어 나무만큼이나 빼 놓을 수 없는 재료가 바로 돌이다. 주춧돌, 궁내 도로, 교각, 외부 장식물 등을 모두 돌로 조성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경복궁에 들어가기 위해 광화문으로 다가설 때, 바로 그 옆에 멋드러지게 자리하고 있는 서울의 마스코트 해치상만 생각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궐에 가면, 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돌이 궁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바로 박석 때문이다. 고궁에 들어가면 그냥 일반적인 흙길로 되어있는 부분도 있지만, 네모난 돌을 판판하게 박아서 길을 다져놓은 공간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돌을 박석이라고 한다. 근정전 같이 조정대신들이 서야 하는 자리에는 박석으로 아예 체스판처럼 바닥을 다져놓은 모습이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박석의 밑부분도 반듯하고 네모나게 갈려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조선시대에 그만한 기술이 되는 것이 항상 신기하고 궁금하곤 했다. 보기 좋은 만큼 가공이 어려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궁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구할 수 있는 화강암이 대체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궁궐에는 기와의 검은 빛, 목조의 갈색과 동시에 화강암 특유의 회색빛이 가득하다. 이 화강암은 아주 야물게 단단한 데다가 미묘한 결까지 있어 가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운 재료로 주춧돌을 만들고, 곱게 다듬어 계단과 교각을 쌓아 올리고, 동물상까지 만든 것을 생각하면 새삼 조선왕조의 위엄이 대단했던 것을 되새기게 된다. 물론 복원된 경복궁에는 흥선대원군이 착즙한 백성의 고혈이 녹아들어 있지만, 또 뒤집어 생각하면 그 때라도 했기에 지금 원래 모습의 1/10 수준이나마 경복궁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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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서울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까지도 다룬다. 고궁뿐만 아니라 옛 건물들은 모두 자연과 어우러지는 것을 고려하며 건축되었기 때문에 자연 그 자체의 조경과 건물의 조화를 보며 감상하면 더욱 그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고궁을 다니며 나무를 아주 유심히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면 광복 이후 조경을 보완한 곳들도 있기 때문에 현재의 조경이 역사 그 자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궁에는 수백 년간 자리를 지켜온 수종들도 여전히 있다.


그런가 하면 저자 김서울은 조선시대에 궁궐의 한 켠을 꾸몄던 나무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들과 다르다는 점 역시 짚어준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정원을 조성하는 데 있어 고려하는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나무들은 대개 아름다운 꽃나무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단순히 심미적인 목적을 가지고 나무를 고르지 않았다. 오히려 궁궐에 배치되었던 나무들은 과실수나 뽕나무 같이 실용적인 수종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뽕나무는 오디를 따먹을 수 있기도 하고, 양잠하는 데 필수적인 뽕잎을 딸 수도 있어 획기적일 정도로 고부가가치 수종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궁궐의 물건들을 보는 재미 역시 아주 쏠쏠했다. 김서울은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조선 왕실의 미감이 잘 드러나는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유물들이 결코 흔하지 않다. 국사책, 근현대사책에서 본 유물이 아니다. 다소 생소한, 그러나 색감이 곱고 아름다운 유물들의 모습이 지면에 담겨 있었다. 조선시대 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이 백의 그리고 백자다보니 다소 무난한 백색의 무언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 외로 색색의 유물들이 많았다. 오방색을 써서 고운 물건도 있고, 아마도 외국에서 들여왔을 법한 이국적인 태와 색감을 가진 물건들도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선의 궁궐 내부는 색색의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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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매력은 비단 메트로폴리스라는 점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대한 도시 속에 큰 산이 들어서 있어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다는 점, 그리고 현대적인 도시와 조선시대의 고궁 및 문화재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숨쉬고 있다는 점에서 그 극적인 매력이 완성된다.


가깝지만 멀게 느껴졌던 고궁을 다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먼저 도서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을 한 번 완독하고 가보길 추천한다. 이미 고궁을 좀 돌아봤다 하는 사람에게는 곱씹어보고 싶은 추억과 함께 새로 살펴보고 싶은 스팟들이 생겨날 것이고, 궁궐을 자주 돌아보지 않았던 궁궐 입문자에게는 새로운 탐험을 떠나보고 싶은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 K-궁궐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지은이: 김서울

출판사: 놀(다산북스)


분야 : 에세이

페이지: 224쪽


정가: 15,000원

ISBN: 979-11-306-3765-5 (0381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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