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전은 여전히 건재하다 - 프로페서 앤 매드맨 [영화]

P.B. 셰므란 <프로페서 앤 매드맨>
글 입력 2021.06.0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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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꿈의 프로젝트, 그 시작에는 두 천재가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부활을 위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정의할 '옥스퍼드 사전 편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임자로 부임한 이는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괴짜 교수 제임스 머리(멜 깁슨). 그는 영어를 쓰는 모든 이들로부터 단어와 예문을 모으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전국에서 편지가 빗발치던 어느 날, 머리는 고전을 풍부하게 인용한 수백 개 예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한다. 보낸 이는 닥터 윌리엄 마이너(숀 펜), 그의 천재적인 능력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사전 편찬 작업엔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윌리엄이 정신병원에 구금된 미치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사전의 정의다.

 

그렇다면 사전은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언어가 존재했으나, 그 언어에 대한 기록(문자)은 그보다 훨씬 후에야 이루어졌고, 그보다 더 늦은 후에야 비로소 ‘사전’이 만들어졌다.

 

17세기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영어로 된) 사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교육의 확산으로 인해 ‘사전’이 등장했다. 17-18세기를 거치며 외래어 논쟁과 철자 개혁, 언어를 고정시키고 표준화하려는 열망이 나타났고, 19세기 후반에는 언어의 과학적 연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1857년, 런던의 문헌 학회에서 트렌치 주교가 당시 영어 사전의 결함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그는 어휘의 역사를 명료하게 하는 사전의 필요성을 논한다. 그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해서 언제 폐어(廢語)가 되었는가, 그리고 단어 형태와 뜻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전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 작업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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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 주교가 새 영어 사전을 만들자는 요지의 연설을 한 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1879년, 제임스 머리가 영국 문헌 학회를 대신하여 새 영어 사전을 만들기로 한다. 그는 정식 학위는 없지만 수십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학자로,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해당 시점에서부터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제임스 머리는 사전 편집을 진행할 기록실(스크립토리엄)을 세우고, 자원 봉사자를 모집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새 영어사전 발간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는 여덟 쪽으로 된 호소문을 작성한다. 그의 호소문은 영국과 미국, 호주와 캐나다의 서점과 도서관에 전해지고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었다. 상점과 도서관은 작은 나무 상자에 호소문을 담아서 비치했고, 사서들은 호소문을 책갈피에 끼우는 종이로 사용하기도 했다.


제임스 머리의 호소문은 정신 이상으로 살인을 저질러 수용소에 갇힌 미 군의관 출신 윌리엄 마이너의 손에도 들어가게 된다. “1천여 장의 단어 목록을 함께 첨부합니다. 내게 편지를 써서 지금 어떤 단어가 선생님의 손끝에서 잡히지 않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그는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어와 예문을 정리해 제임스 머리를 돕는다.


둘은 다양한 어휘와 어원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단어와 예문을 찾으며 윌리엄 마이너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제임스 머리는 고전 예문을 풍부하게 인용한 윌리엄 마이너의 편지를 통해 사전 편찬 작업에 속도를 더한다.


하지만 한 영국 잡지에 의해 윌리엄 마이너가 수용소에 구금된 미치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정신착란 증세로 살인을 저지르고 구금돼 치료를 받는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전 편찬 작업은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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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은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제임스 머리와 윌리엄 마이너의 언어에 대한 열정과 광기를 보여준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 과정, 그리고 ‘프로페서’와 ‘매드맨’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소 복잡하게 전개되며 서사의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멜 깁슨(제임스 머리)과 숀 펜(윌리엄 마이너)의 연기력이 영화를 탄탄하게 이끌어 나간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 한 게 독이 되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언어를 낚아채고, 기록하려 했던 제임스 머리와 윌리엄 마이너의 모습만은 선연했다. 1910년, 윌리엄 마이너는 수용소에서 30년 이상을 지낸 후 석방됐다. 1915년, 제임스 머리는 사전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문자 ‘T’에 대한 작업을 계속했다. 미국에 돌아간 윌리엄 마이너는 1920년 사망했다. 1928년에서야 사전 초판이 완성된다.

 

사전 편찬, 그리고 언어 뒤에서 집념의 추적을 벌였던 둘의 모습이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무를 것 같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들을 기록해나가고 있다. '프로페서'와 '매드맨'의 열정과 광기는 저 먼 곳에서 시작해, 지금 여기까지 이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사전은 여전히 건재하다"라는 자막이 유독 묵직하게 다가온 이유다.

 

 

*

 

프로페서 앤 매드맨

- The Professor and the Madman -

 

 

감독 : P.B. 셰므란(파하드 사피니아)

 

출연

멜 깁슨, 숀 펜, 나탈리 도머,

스티브 쿠건, 에디 마산, 제니퍼 엘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개봉

2021년 06월 02일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1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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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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