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멀티캐스팅에 대하여 [공연]

글 입력 2021.06.0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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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캐스팅. 한국의 뮤지컬계에만 존재하는 용어이다. 더블 캐스팅 외에도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이 존재하며, 더 나아가서는 한 배역에 6명의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와 같은 멀티캐스팅은 뮤지컬계 뿐 아니라 연극, 오페라 등 전반적인 공연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본 글에서는 뮤지컬계, 그중에서도 대극장 뮤지컬 시장에 국한하여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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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메인(주・조연), 얼터, 언더스터디가 존재할 뿐이다. 한 명의 배우가 하나의 배역을 맡으며, 메인 배우가 최소 주 6회 공연을 하고, 얼터가 평일과 주말 마티네 공연을 맡는 형식이다. 한국에서는 메인과 얼터의 경계가 없어졌으며, 얼터가 더블, 트리플, 콰트로로 인식되고 있다. 언더스터디는 커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언더스터디가 메인을 대신해 무대 위에 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홍광호, 박은태가 커버에서 메인이 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며, 예전에는 이와 같은 경우가 있었지만, 현재 대극장에서는 커버가 메인으로 거듭나는 일을 찾아보는 것은 극히 드물며 신인 배우가 등장하는 것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주연 배우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 명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도 다른 배우가 그 배우를 대신해 공연을 하지 커버에게 기회가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커버가 메인을 대신해 무대에 오른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뮤지컬 <팬텀>이다. 2015년 뮤지컬 팬텀에는 세 명의 크리스틴이 있었는데, 하루 공연에서 세 명의 크리스틴 모두 각각의 이유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메인을 대신해 커버였던 김지유 배우가 크리스틴 역할로 무대에 섰다. 최근에는 작년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반 헬싱 역의 커버였던 임정모 배우가 두 번의 회차 동안 반 헬싱으로 무대에 섰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커버가 메인을 대신해 무대에 서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어떠한 시스템이든지 흑백이 있으며, 이렇게 한국 뮤지컬계의 고유한 특성인 만큼 이로 인해 발생한 결과도 있다. 본 시스템의 장점과 결과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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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멀티캐스팅의 장점은 공연과 배우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일 역할이어도 배우마다 각자 표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 된다. 즉, 캐스팅에 따라 하나의 공연이 여러 작품인듯한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가령, 현재 상연 중인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김준수, 전동석, 신성록의 드라큘라는 각기 다르다. 각자 해석한 것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도 다르며 이에 하나의 작품이지만,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멀티캐스팅은 한 시즌에 관객에게 다양한 연극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또한, 뮤지컬 배우는 노래와 연기를 동시에 해야 하는 만큼 체력적 소모가 크다. 멀티캐스팅을 통해 휴식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더 좋은 컨디션으로 공연에 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매 공연마다 바뀌는 상대역으로 인해 각 공연마다 감정이 달라지거나 디테일이 바뀌면서 매 공연마다 다른 공연을 선보임으로써 공연의 특징 중 하나인 일회성, 공간성, 동시성, 소멸성(현장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바로 뮤지컬계가 작품 중심 체제가 아닌, 배우 중심 제제로 향해가며, 작품의 선택 기준이 배우가 된 것이다. 어떤 배우가 나오느냐에 따라 작품의 흥행 여부뿐 아니라 투자 규모 및 성공 여부가 달라진다. 이는 곧 소수 배우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개런티 상승을 야기하였으며, 스타 배우를 만들어내고 스타마케팅을 만들어냈다. 앙상블과 스타 배우의 임금 격차는 천지 차이로 벌어졌고, 사람들은 스타 배우가 아닌 배우의 공연을 덜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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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배우가 출현하느냐가 흥행과 직결되자, 뮤지컬 제작사는 아이돌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것이 아닌, 아이돌을 고용함으로써 신인들이 데뷔할 수 있는 루트와 조연과 앙상블이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극히 감소했다. 또한, 아이돌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은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 반감을 일으켰으며 극의 전반적인 질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저하시켰다고 평가된다.

 

2019년 뮤지컬 <엘리자벳> 당시 남자 주인공인 ‘토드(죽음)’ 역에 김준수, 박형식, 레오가 캐스팅된 것이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다. 정통 뮤지컬 배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아이돌의 캐스팅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바로, 대중화와 세계화의 측면이다. 대중 가요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통해 뮤지컬을 소비함으로써 뮤지컬의 대중화의 문을 여는데 기여하였고, 해외 팬들 또한 한국의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 배우가 동시에 여러 작품에 출연하거나 계속해서 비슷한 배우들이 작품들을 점유하면서 한국 뮤지컬계의 다양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흐름은 한국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2014년 5월 스테이지톡이 512명을 대상으로 멀티캐스팅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0%가 응답하고, 원 캐스팅에 대한 선호는 5%에 불과했다는 결과만 보더라도 멀티캐스팅이 한국 뮤지컬계의 하나의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인 배우 발굴에 힘써야 하며, 배우 중심 체제는 반드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는 뮤지컬 자체 내의 시스템뿐 아니라 뮤지컬의 대중화하고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 중심 체제는 소수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이 대중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대중들과 시간과 역사, 경험을 공유하면서 감정적인 유대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뮤지컬계는 그러하지 않다. 단지 스타 배우를 통한 대중화 전략이 아닌, 다른 전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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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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