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1과 2분의 1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6.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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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각병’이라 부르는 버릇을 혹시 알고 있는가. 뭐든지 정각, 혹은 30분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으름을 위한 습관이다. 나는 그 버릇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내게는 다른 여느 시간들보다 의미가 남다른 시간들이 있다. 앞서 말한 정각, 혹은 30분, 월요일, 혹은 일요일, 1월과 6월, 그리고 매달 1일이 그것들이다. 그 시간들은 내게 있어 다짐과 결심을 실천하는 시작점이다. 그리고 오늘, 그 중요한 날들 중 하나인 6월, 심지어 그 달의 시작일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점이 된다고 해서 앞서 결심하고 세운 계획들을 모조리 지키며 사는 것은 아니다. 다이어리든 어느 종이든 적어둔 야심찬 플랜들 중 뿌듯한 마음으로 직직 선을 그으며 내가 해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태한 내 모습에 자괴를 느끼면서도, 이렇게 적어두기라도 해서 이거라도 했다 하는 이상한 긍정으로 이겨낸다. 그리고 또 다음 시작점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오늘은 조금 색다르게 시작해보려고 한다. 시작점이 아니라, 끝점으로서의 오늘을 보내보았다. 2020년을 보냈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전에 벌써 2021년의 절반을 보냈다. 그동안의 내가 보낸 날들 속에 나는 어떤 것들을 이루었고, 어떤 것을 미루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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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룬 것들


 

일단 가장 큰 것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시작했다는 것! 글쓰기를 좋아하긴 한다만, 내 글 자체가 좋은 글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미사여구가 많고 머릿속에 생각한 것들을 마구 뱉어내기 바빠 나중에 보면 논리나 흐름이 삐끗하거나 중간이 비어 있는 경우들이 보인다. 왜 그런 것들은 진작에 보이지 않는지, 늘 나중에 가서야 깨닫는 후회가 참 원망스럽다.


그럼에도 내 글을 어딘가에 저장하고, 나중이 되면 옅어질 무의미한 생각들을 글로 꽝꽝 박아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고 어설픈 내 글들이 영원히 박제될 것을 무릅쓰며 오늘도 글을 써본다. 훗날엔 뭐, 뿌듯함은 없더라도 배를 잡고 깔깔댈 흑역사로 남아 웃음이라도 줄 수 있지 않겠나.


두 번째로는 작년보다 고요하고 매끄러운 마음을 가졌다. 작년이야 뭐, 코로나 발발로 누구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지만 그런 상황을 차치해도 나는 누굴 만날 생각이 없었다. 내 속의 엉킨 마음을 정리하느라도 그랬지만, 사실 누군가와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었다. 그 누군가에는 친구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다.


올해는 사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다만 그 누군가 들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계기도 없이 그냥 그런 다짐이 불쑥 올라왔다. 가족도 더 많이 만나고, 친구들에게도 먼저 연락을 건넸다. 그래서일까, 혹은 이번 해가 그럴 운명이었던 걸까. 못 보던 친척들, 만나지 않던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고, 그 시간들이 더는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들과 여전히, 내가 문을 닫고 살던 시절이 무색하게 웃고 떠들 수 있어 감사함을 느꼈다.


세 번째로, 전공에 대한 재미를 다시 찾았다. 사실 그전까지 회의를 느꼈다. 어중간한 재능이 가장 잔인하다 했던가, 세상은 넓었고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은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학교에 와서야 알았다. 우물 안 1등이 바다의 1등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만, 그것이 나는 아니었다. 그런 자격지심이 모여 다른 꿈을 꾸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던 지점이었다.


그러다 직업이나 전공으로서가 아닌, 취미로서 전공을 시작했다. 클래스를 듣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나가니 다시 예전의 열정과 애정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결국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조금 더 긍정적으로, 내가 뚫을 수 있을만한 길을 모색하려 한다. 물론, 이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미룬 것들


 

사실은 이룬 것보다 미룬 것이 더 많을 테다. 어쩌면 이건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럴 것이다. 일단 다시 아트인사이트로 돌아오면, 내가 계획한 만큼 성에 차는 글을 쓰지 못했다. 스스로 늘어졌던 때도 있었고, 계획했던 것들이 급작스레 벌어진 사건들로 어그러졌던 때도 있었다.


내 뜻대로 되지 못하는 상황과 나의 태만한 버릇 탓,에 조금 더 깊은 사색과 고찰을 더하지 못한 글들이 많다. 그런 아쉬움도 결국엔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 말했지만, 그럼에도 더 잘할 걸 하는 미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변화한 마음에 행동이 비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의 부족한 점들이 정돈되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합리화를 했었는데, 그러지 않았음을 알았다. 조금 더 부지런히, 조금 더 꾸준히 하는 실천력을 갖기엔 아직도 나는 미루는 걸 좋아하고, 벼락 치기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남에 있어서도 서투른 부분들을 마주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의 사회성에 비하면 나는 한참 미숙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어떤 곳에서는 무슨 말을 전하며 그에 맞는 행위를 하고,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부족함을 알았다. 그런 것들을 진작에 익혀뒀어야 하지 않나, 앞으로 더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내가 뭘 할지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헤매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지만, 확실히 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 수준의 나는 조금 늦긴 했다. 인생이 달리기 시합도 아니고 이 정도 늦은 걸로 실패한 인생은 아니겠지. 그럼에도 주변의 앞서 걷는 사람들을 보면 조급해진다.


아직은 많이 부족함을 알고 있기에, 여전히 과거의 나와 멀어지지 못했음이 무섭다. 그래도 이쯤이면 더 멀리 나아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되돌아본 나는 많이 변한 듯하나, 격차가 크지 못했다. 해낸 것들보다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았다. 이미 해냈어야 하는 것들조차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시작하고 있으니 아쉬움과 막막함이 뿌듯함을 누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남은 반년이 있다. 이제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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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2021년의 절반이 어떻게 꾸려질지 모르겠다. 또 지금과 같은 후회를 할지, 제법 보람찬 날들을 보낼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그 끝을 보기 위해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일 년에 열두 번, 그중에서 딱 절반인 여섯 번째로 맞는 1일이다. 여섯 번째 시작점에서 나는 다섯 번의 시작점이 종료되었음을 살폈다.


이룬 것과 미룬 것, 그 둘은 전혀 다른 것들이 아니었다. 이룬 것들 속에 못한 것들이 있었고, 미루지 않고 해낸 것들도 존재한다. 이 둘은 남은 시간 속에서도 계속 함께 할 것이다. 어떤 것이 더 많은 퍼센트를 차지하냐의 싸움이지 않을까.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정각병의 나와 함께 끝점과 시작점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당신의 2021년, 절반의 시간 동안 당신은 어떤 것을 미루고 어떤 것을 이뤘는지, 앞으로의 절반은 어떤 것을 이루고 어떤 것을 미루게 될지 말이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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