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돌고 돌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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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얘기하니까 책 생각이 났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한 번 시작하니 그 다음은 쉬워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이 왜 좋았을까. 왜 나만 빼고 엄마와 친척들이 단테의 신곡을 읽은 게 샘이 났을까. 오빠도 읽은 좀머씨 이야기를 나만 어렵다고 못 읽는다는 사실에 왜 분했을까.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모르는 채 누가봐도 책을 좋아하는 중학생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취향이 제법 확고해졌다. 취향에 맞지 않으면 재미없어했고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남들 다 읽는 고전이라고 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읽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무슨 책 정도는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이병이 한창인데다 반골기질까지 합쳐져 남들 다 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읽고 싶은 것만 읽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참 잘한 일이다.
고등학생 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도서관은 넓고 매일같이 신간이 들어오는데 내가 읽은 책은 너무나도 적고 내가 모르는 작가는 너무 많아서 평생 열심히 읽더라도 내가 읽은 책은 아주 미미할 거란 사실에 인생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내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하면 ‘왜 이 책을 지금 알았을까?’하고 아쉬워했다. 조금만 신경썼으면 더 빨리 알았을텐데 늦어버려서 속상했다.
그렇게 책과 함께 자라서 공강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등록금 알뜰하게 쓰기 위해 신간 찾아보면서 희망도서 신청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책을 잘 안 읽는 사회인으로 퇴화했다.
그래도 책에 대한 욕심은 못 버리고 도서전 가서 책 사오고 북클럽 가입해서 책 받고. 책을 쌓고 또 쌓았다. 어느 순간 양심의 가책이 찾아왔는데 그 시기를 지나니 책이 쌓이는 게 대수롭지 않아졌다. 왜 책은 쉬지도 않고 눈에 들어오는지, 책을 소유해야 심신의 안정이 찾아와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예약 특전인 저자 사인본을 받으려고 미리 주문해놓고 출간일 잊어버리는 일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니게 되었다.
어쨋든, 아무튼. 책 이야기 하다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최근에 읽은 책은 지난 설 연휴에 사놓고 묵히던 책이었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기 시작한지 몇 년 되었는데, 언젠가 거기서 발견한 작가였다.
무심한 듯 시크한 문체, 애써 꾸미지 않은 것 같은 깔끔함이 느껴지는데서 오는 그 멋. 몇 줄 읽고 홀라당 반해서 이름 석자 마음에 새겨두다가 책을 한 권 샀다. 여러 책 목록에 올려두고 비교하다가 왠지 마음에 오는 한 권만 골랐다. 큰 성공이었다.
“구멍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눈과 입을 계속 열어두고 아무거나 보고 아무 말이나 하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라는 구절에서 내 마음을 발견했다.
그러고 또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고 책에서 이야기 하는데 두 번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거기에 있을 또 다른 무심한듯 멋있는 문장을 알고 싶어서.
어린 시절과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게, 책에 대한 욕심이 샘솟았다.책을 사든 도서관에 다시 가든 나는 또 책을 읽어야만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돌고 돌아 다시 책으로 가고 있다.
[장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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