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떤 연애담은 성장담이 된다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영화]
-
연애편지를 써본 적은 없다. 사실 편지 자체를 낯간지러워하는 편이다. 수신인이 정해져 있는 글을 쓸 때 과연 나란 놈이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설령 솔직하게 쓸 수 있었다고 해도 그 편지를 부칠 수 있었으리라 장담은 못한다. 편지를 보낸다는 건 결국 마음을 보낸다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겠다는 결심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사람 성격이라는 게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지만, 이 사실만은 예외 없는 교집합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주인공 라라 진(라나 콘도르)을 보면서 내가 쓸 수 없었던 편지를 그녀가 대신 써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라라는 미숙하다. 자기 방을 잘 정리하지도 못하고, 또래에 비해 차를 운전하는 것도 서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왔던 엄마와의 이별이 남긴 후유증이다.
헤어짐에 상처 입어본 사람은 아직 오지도 않은 헤어짐 때문에 만남을 회피한다. 선을 긋고, 그 안에 들여도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라라가 가족관계에 의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족은 보통 유별난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한 덜컹거릴 일이 없는 말끔한 포장도로 위의 서행과 같은 관계니까.
하지만 연애는 다르다. 그것은 매 순간이 충돌이고 덜컹거리는 것이 일상인 비포장도로 위의 주행과 같다. 운전에 미숙한 그녀가 감당하기엔 고난이도의 코스. 그래서 라라는 도로의 초입에 멈춰선 채 뒤를 돌아보며 내내 후진만 하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주고받는 짝사랑에 만족한 채로.
하지만 언제까지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만 타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에 있어서든 연애에 있어서든, 제때 맞춰 도착해야만 의미가 있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가 나보다 앞서 있다면, 그런데 그 간극이 두 다리와 자전거만으로 좁히기엔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시동을 걸고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후진할 때 뒤를 돌아봐야 했듯, 전진할 땐 오직 앞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니 혼자 차를 몰고 피터를 찾아가 마음을 전하는 라라의 모습으로 끝맺는 이 영화는 연애담이면서 동시에 성장담이다. 사실 어떤 연애담은 성장담의 동의어가 되기도 하는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바로 그런 연애담이다.
[임현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