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지 않고' 외치는 변화 - '후시딘' 광고 [문화 전반]

동화약품 & 이노션 월드와이드, ‘후시딘’ 광고
글 입력 2021.05.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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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딘. 가정마다 그 이름을 외치지 않은 곳이 없으리라. 마데카솔과 함께 연고계를 주름잡는 후시딘은, 우리 집에선 단연코 1등 연고였다. 다치기만 하면 “후시딘 발라라” 소리가 되돌아왔다. 덕분에 접착식 메모지가 포스트잇이 되고, 스테이플러 호치키스가 된 것처럼, 내게는 연고가 후시딘이 되었다.


그럼에도 후시딘의 광고는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한결같이 ‘후후’ 불며 “상처엔 후시딘"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름만 남고 내용은 사라졌다.


그런 후시딘이 새로운 카피를 입었다. “상처 지지 않아.”

 

 


변화



동화약품과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지난 20일에 후시딘 광고를 온에어했다. 전과 달리 제품 이름은 물론 광고 내용도 깊이 남을 것 같은 광고였다. 이 광고에 눈길이 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의약품 광고가 답습해온 패턴을 벗어났다는 점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을 알리기 위한 목적 이외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 때문이다.


의약품 광고는 약의 효능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둔다. 약품으로서 그 점이 가장 중요해서인데, 그로 인해 광고는 뻔해진다. 뻔하기 때문에 잊힌다. 새로 출시된 약은 이미 시장의 선두에 밀려 광고도 약도 잊히고, 선두에 있는 약품은 사람들에게 제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정도에서 그친다.


후시딘도 마찬가지였다. 작년까지 후시딘의 광고는 뻔했다. 누군가가 다쳤고, 다른 사람이 후시딘을 발라준다. 그 서사로 15초가 채워졌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라는 효능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게다가 그 서사에선 ‘누군가’는 아이, ‘다른 사람’은 엄마였다. 2009년에 ‘마음의 상처’를 소재로 한 광고와 2013년의 ‘상처 없는 대한민국’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중심인 모성 서사(2020, 2011, 2005, 2003, 2001, 90년대, 80년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엄마도, 아빠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 어른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들뿐이다.

 

 


주체의 변화, 메시지의 변화, 그리고 가능성



 

 

다쳐서 우는 아이들은 없다. 울면서 어른을 찾고 달려가는 대신, 아이들은 지지 않겠다고 외친다. 이들의 어떤 선언 같은 외침은 어린이를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전환해낸다. 더불어 그들 스스로 헤쳐나갈 힘이 있다는 걸 강조하면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도 바꾼다. 이유 없이 ‘다’ 해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른과 마찬가지로 의견이 있고, 의지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광고 속 어린이를 주로 수동적 존재로 보여주다가 이번에 능동적 존재로 전환했다. 어린이를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꿈을 지향하고,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보고 이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 이택기 동화약품 광고홍보팀 이사

 

한겨레, [영상] 2021 후시딘 광고 속 어린이들 ‘성별 고정관념 지지 않아!’ 2021. 05. 25. 박고은 기자

 


한편, 어린이는 당연히 보살핌이 필요하다. 충분한 돌봄과 사랑을 누리며 커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서 ‘나’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때에 맞는 돌봄을 얻지 못해 생긴 결핍은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 그 맥락에서, 이전까지의 후시딘 광고는 틀리지 않았다. 아이가 다쳤으니 부모는 케어를 한다. 아이가 보호받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신경 써주고, 아픔을 알아준다. 얼마나 맞는 말인가?


그러나 거기엔 가능성이 없다. 어린이가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직접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하는 능력. 그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그러니까 변화



정신분석학자이자 소아과 의사인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utt)은 아이의 성숙 과정에서 ‘괜찮은(good enough) 양육자’의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을 제시한다. 영아기 때는 양육자가 아이의 필요와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며 적응을 돕되, 아이가 클수록 스스로 자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여 돌보는 것이다. 이 환경을 안아주는 환경이라 한다. 즉, 아이는 실패 등의 경험을 겪으며 나와 내 세계를 형성하고 적응하는데, 이때 양육자는 무엇이든 다 해주는 해결사의 역할이 아니라 쿠션 같은 뒷받침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기가 태어나 세상과 잘 조우하기 위해서는, 주체로서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이 필연적이다. 그리고 양육자는 그 경험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아이가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후시딘 광고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어린이를 그린 대부분의 묘사에서 어린이가 겪는 필연의 경험은 생략되고, 양육자의 해결사 같은 모습이 줄곧 반복됐다. 어린이의 ‘성장’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어린’ 상태에 초점을 둔 묘사였다.

 

그런 식으로 상처 앞에서 아이들은 졌다. 이겨보리라 생각지도 않았고(못했고), 어쩔 줄을 몰랐다. 이런 묘사는 어린이의 오늘을 그리는 데 멈춰있지만 이번 후시딘 광고는 어린이의 내일을 그린다. 어린이는 오늘 울어도 내일은 울지 않는다. 오늘, 울면서 무언가를 알게 되고 내일은 알기 때문에 울지 않는다. 매번 상처에 지던 아이들은 이제 지지 않는다. 이길 수 있음을 알기에. 상처 하나에 무너지지 않아도 됨을, 잘 치료하고 잘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할 수 있다. 그들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결국 이 광고가 말하는 변화다.

 

 

참고 자료

Jeffrey Longhofer. (2015). 「Good enough mother (Holding environment)」. 『A-Z of Psychodynamic Practice』. Macmillan Education UK

 

 

[송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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