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스포일러 리뷰
글 입력 2021.05.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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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당신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군요!”


어느 때처럼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보고 있을 때, 스크린 속에서 한 인물이 그녀에게 말을 건다.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온 톰은 세실리아의 손을 잡고 극장 밖으로 나간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자유와 사랑을 위해 영화로부터 도망친 톰과 영화에서 행복과 꿈을 찾는 세실리아의 이야기다.


우스꽝스러운 의상과 가짜 돈을 가진 톰은 오직 사랑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말하며, 현실에서 영화같은 삶을 기대하며 세실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세실리아는 별볼일 없는 남편과 살며 레스토랑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며 살아간다. 영화를 보는 것, 영화를 꿈꾸는 것, 스크린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그녀의 유일한 낙이다. 그런 그녀가 톰에게 현실을 말해준다. 가짜 돈과 사랑만으로 살아갈수 없다고. 그럼에도 톰과 보내는 시간만큼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행복해보인다.

 

현실을 갈망하는 톰과 영화를 갈망하는 세실리아의 만남 자체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것을 사랑하지만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둘의 사랑을 응원하면서도 결국 좁혀지지 않을 문제들이 그려지기에 마냥 해피엔딩을 바랄 수가 없다.


그때 길 쉐퍼드가 나타난다. 그는 톰을 연기한 배우이자, 차기작을 위해 톰을 영화속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온 것이다. 우연히 길을 만난 그녀는 그의 작품 세계를 칭찬하며 팬심을 표현한다. 길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응원하는 세실리아에게 호감을 느끼고, 함께 할리우드로 가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세실리아는 누구를 선택할까?


영화관에서 톰과 길, 세실리아가 한 자리에 모이게 되고 그 둘은 세실리아에게 함께하자고 고백한다.

 

세실리아는 길을 선택한다.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던 톰에게 사랑이 떠났으니, 다시 영화 세계로 들어가게된다. 다음날, 세실리아는 길과 함께하기 위해 남편을 떠나 약속한 장소로 왔지만, 길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세실리아는 거리를 떠돌다 새로운 영화가 걸린 상영관을 찾아가고,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황홀하다.


결국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톰은 영화 속으로, 길은 차기작을 위해 할리우드로, 세실리아는 영화를 사랑하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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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세실리아

 

둘은 서로 닮았다. 톰은 반복적인 영화로부터 벗어나 세실리아와의 사랑의 도피를 꿈꾸고, 세실리아는 반복적인 현실로부터 벗어나 영화같은 삶을 꿈꾼다.

 

톰은 변하지 않는다. 가짜 돈이 먹히지 않는 현실에서도 영화같지 않은 삶에 놀랄 뿐, 그의 행동은 그대로다. 세실리아는 혼란스럽다. 톰의 사랑과, 영화처럼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의 괴리감이. 그녀에게는 톰도 조금 다른 상황의 현실 일 뿐, 영화가 아닌 곳에서 영화같은 삶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일이었다.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간 후의 톰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닐 쉐퍼드가 연기한 ‘톰’이라는 캐릭터의 삶이 달라질리가 없다. 결국 톰에게는 반복적인 영화의 삶이 계속됨을 암시할 뿐이다.

 

 

닐과 세실리아

 

닐이 나타나지 않을때, 세실리아는 울지 않는다. 오히려 ‘이럴 줄 알았다’는 허망한 표정이 그녀를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세실리아를 이용하고 헐리우드로 돌아가는 닐이 조금은 슬퍼보이지만, 그렇다고 세실리아를 향한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 배우가 한 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것은 가능해보이고, 결국 그는 앞으로 본인의 미래를 위해 떠났기 때문이다.

 

세실리아에게 결국 영화라는 것은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닐은 그녀에게 또 다른 형태의 영화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언젠간 나에게도 영화같은 삶이 찾아오리라 믿고 살아가는 희망처럼.

 

영화같은 삶에 가까워 졌다고 생각할 때, 결국 이루지 못하고 현실로 돌아가버린다. 하지만 다시 영화에 빠져 꿈꾸는 세실리아의 표정을 보면 ‘영화같은 삶은 없지만, 영화가 삶의 이유는 줄 수 있다’고 위로받는 것 같다.

 

허구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현실속에서 잠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영화가 그녀에게 주는 가치있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나정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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