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스로를 위한 하루의 시간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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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복되는 하루 24시간을 꾸준히 살아간다. 그 24시간 동안 우리는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밥을 먹거나 놀기도 하면서, 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낸다. 즉,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그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과연 24시간 중에서 정말로 나를 위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한 시간 말고, 외부의 영향으로 이루어지는 시간 말고, 정말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 글에서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정의하겠다. 생각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건 어렵다. 일을 하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전부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노력이 포함된 시간이지만 과업을 해내야 하는 시간이라면 온전한 나의 시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물론 그 과업들을 하는 시간 속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찾는다면 그 역시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위한 시간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에서 그 시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이 으레 그러하듯, 바쁘게 사는 사람이다. 그 바쁜 시간은 전부 과제나 일, 가사 노동이 주를 이룬다. 그렇게 매일을 살다 보니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 하루인데,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는 생각 말이다.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은 단순한 여가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 여가 시간도 아무 생각도 의미도 없이 흘려보내 버린다면 결국에는 죽은 생각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찾고 싶었다. 내 삶 속에 분명히 존재할, 그리고 존재해야 하는 ‘나의 소중한 시간’을 찾고자 했다.
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시간
가사 노동은 하루 중에서 빠질 수가 없는 일이다. 청소기를 밀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개는 시간은 하루 중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 가사 노동 중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찾았다. 바로 내게 식사를 대접하는 시간이다.
식사를 챙기는 건 중요한 일이다. 특히 나는 끼니를 챙겨 먹는 걸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내 식사도 타인의 식사도 꽤나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스스로 밥을 차려 먹을 시간이 많지 않다. 밖에서 외식을 하게 되거나, 귀찮아서 배달을 시키는 등의 연유로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보통 외식이 식사의 대부분을 이루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집밥을 차려 먹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일주일에 대여섯 번 정도 있는 스스로를 위한 요리를 하는 시간은 내게 정말 소중하다. 요리를 하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설거지도 많이 나오지만, 그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게 된다.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하려고 장을 보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조합해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는 것도 재밌다.
요즘은 유튜브나 블로그에 레시피 정보가 자세하게 나와 있는 것들이 많아서, 보다 손쉽게 요리에 도전할 수 있다. 다양한 재료와 소스로 변형이 가능한 파스타나 볶음밥은 내 주방에서 인기 메뉴이다. 조리 과정을 거쳐 그럴듯한 음식을 완성해냈을 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대치 않은 훌륭한 맛이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붙는다.
무엇보다 음식을 완성하고 한 상 차려냈을 때의 기분이 날 들뜨게 만든다. 사실 나는 요리를 엄청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항상 레시피를 참고해야 하고, 그마저도 없는 재료들이 있다면 감으로 레시피를 조정하기도 한다. 또, 플레이팅에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라서 음식을 그저 그릇에 담아냈을 뿐인 모양새가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스스로 차린 한 상이 오로지 나를 위한 식사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대접받는 느낌을 준다.
분명 귀찮은 시간이지만 나를 위한 식사 한 끼를 준비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쓰이는 시간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자주 만들어나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해나가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도 나를 위한 시간이다. 흔히들 취미라고 이르는 것 말이다. 나는 이 취미에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선택한 취미는 베이킹이다.
처음 베이킹을 시작했던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집에 에어프라이어기가 처음으로 생겼고, 오븐의 기능을 얼추 수행할 수 있었던 기계였기에 간단한 베이킹이 가능했다. 기계의 모양 특성상, 다양한 틀을 넣어 굽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정말 작은 케이크나, 파운드 케이크, 틀에 구애받지 않는 스콘이나 과자 등이 내가 만들 수 있는 전부였다. 지금은 정말 작지만, 어쨌든 미니 오븐이 생겨서 그때보다 다양한 것들을 구워볼 수 있게 되었다.
베이킹 역시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일이다. 반죽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계량하고, 반죽을 만들고, 휴지 시간을 거쳐 적당한 모양으로 팬닝을 하고, 마지막으로 굽는 시간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이 일은 심지어 끝난 후에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바로 설거지다. 설거지까지 끝내고 구워낸 과자나 빵이 식기까지 기다리고 나면 그제야 만들었던 것들을 시식할 수 있다.
심지어 베이킹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영역이라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물론 나의 재능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취미다. 재료의 온도를 적당하게 맞춰주어야 하고, 오븐의 온도도 잘 조절해주어야지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때로는 레시피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나 재밌다.
버터가 녹으면서 설탕과 섞여서 내는 냄새가 베이킹을 하는 내내 코끝에 맴돈다. 그 달콤한 냄새는 지금 힘들게 섞고 있는 반죽이 재탄생할 맛있는 빵을 상상하게 한다. 반죽을 할 때 점점 윤기가 도는 모양새는 내가 선물할 빵을 받고 좋아할 친구들을 떠오르게 한다. 타이머가 맞춰진 오븐이 시간에 맞춰 띵 하고 알람음을 울릴 때는 결과물을 기대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게 된다. 그 과정은 날 두근거리게 하고, 온전히 그 시간을 즐기게 만들어준다.
갓 구워낸 빵들은 정말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입에 넣자마자 부서지는 갓 구운 빵의 식감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어떤 빵들은 식고 나서야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마들렌도 식었을 때 그 포슬한 식감이 더 살아난다. 그 기다림조차 내게는 즐거운 시간이 된다. 좋아하는 걸 얻기 위한 적당한 기다림은 오히려 기대를 증폭시켜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라.
베이킹을 하는 시간 동안은 좋아하는 것에 열중한 나를 만날 수 있다. 그 시간이 모여 온전한 나를 만들어낸다.
당신의 시간은 언제인가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의 시간을 살아내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일에 열중하는 시간이 온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없이 걷는 시간이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간 속에서 온전한 나 자신이 존재하는지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에 휩쓸려 살아간다.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과업들을 처리해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 곳을 향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마라톤처럼, 우리는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러나 마라톤은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달리기 위해서 참가자들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중간에 물을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 삶도 우리가 조절할 수 있다. 각자의 체력과 페이스가 다르듯이, 우리 역시 스스로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달릴 수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물을 마시면서 쉬어갈 수도 있다. 그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외부 압력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나라는 중력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나 역시 여전히 그 시간을 찾는 중에 있다.
오늘 하루에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중, 당신을 위한 시간은 몇 시간이었는가?
[황시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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