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속 다양한 사랑과, 다양한 여성을 위하여 [공연]

여성 성 소수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뮤지컬 3편을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1.05.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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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작품을 보다 보면 성 소수자, 퀴어 캐릭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극보다 비교적 대중적인 극예술 장르로 여겨지는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킹키 부츠>의 롤라, <헤드윅>의 헤드윅, <제이미>의 제이미, 그리고 <베어 더 뮤지컬>의 피터와 제이슨까지 성 소수자 캐릭터는 뮤지컬 작품의 주인공 역할로 꽤 많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전부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뮤지컬 작품의 주인공 중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성 소수자 캐릭터도 있을까? 여기, 여성이 연기하는 성 소수자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세 편의 뮤지컬 작품을 소개한다.


 

 

1. 뮤지컬 <펀 홈 Fun Home>



<펀 홈>은 영화의 성평등 지수를 평가하는 '벡델 테스트'를 고안한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 '펀 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후 같은 해에 토니 어워즈에서 대상 격인 Best Musical 부문을 포함해 5관왕을 휩쓸며 화제가 된 이 뮤지컬은, 2020년 한국에서 라이선스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


극은 중년의 만화가 앨리슨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형식을 취한다. 어린 앨리슨 역할의 배우, 대학생 앨리슨 역할의 배우, 그리고 중년의 앨리슨 역할을 맡은 배우까지 총 3명의 여성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극을 이끌어간다. 극은 시간 순이 아니라 중년의 앨리슨이 과거를 회상하는 순으로 전개되며, 서로 다른 시간대의 장면들이 엮이면서 앨리슨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무대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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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펀 홈>은 앨리슨의 성장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가 확장되는 것은 앨리슨의 과거에 끊임없이 끼어드는 인물, 앨리슨의 아빠 브루스를 통해서다. 앨리슨과는 달리, 브루스는 평생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며 살아온 성 소수자다. 어린 앨리슨은 아빠를 완벽한 겉모습에 집착하는 강박적이고 강압적인 사람으로 기억하고, 대학생 앨리슨은 문학에 관해서는 대화가 통하지만 그 외의 것에 관해서는 대화하기를 회피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특히, 서로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둘의 대화는 더 어색해진다. 그렇게 앨리슨은 브루스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채, 사고로 아빠를 잃는다.


중년의 앨리슨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아빠를 이해하고자 한다. 아빠가 그토록 완벽한 겉모습에 매달렸던 것은 스스로를 향한 수치심에서 나왔던 것일지도 모르며, 아빠가 앨리슨에게 동성 애인이 있었던 여성 작가 콜레트의 책을 선물한 것은 앨리슨의 성 정체성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빠의 사고는 어쩌면, 성 소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앨리슨을 보며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아빠의 자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앨리슨은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아빠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까. 차 안에서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속 전화선만 바라보던 두 사람의 마지막 밤을 곱씹으며, 다음 신호등이 바뀌면 대화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만 하면서 끝끝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기만 할 뿐이다.


<펀 홈>은 마지막까지 브루스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며, 브루스라는 인물에 관해 앨리슨이 기억하는 것 외의 정보를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앨리슨의 기억 속 조금씩 더 드러나는 브루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은, 중년의 앨리슨과 함께 그를 상상하고 이해해보려 노력하게 된다.


<펀 홈>의 독특한 점은 성 소수자 캐릭터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넘어, '가족'이라는 주제까지 극의 서사로 포용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성 소수자 캐릭터를 응원하는 입장이거나 대립하는 입장에 머무는 가족이 아니라, 성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가족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객석에서 바라보는 앨리슨과 브루스의 남다른 유대감은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2. 뮤지컬 <더 프롬 The Prom>



<더 프롬>의 주인공은 미국 인디애나 주에 사는 고등학생 엠마다. 엠마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중이다. 엠마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졸업 파티인 '프롬'에 데려가고 싶어 하지만, PTA(학부모와 교사 연합)의 반대로 프롬 자체가 취소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교장인 호킨스는 엠마가 프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는 갓 막을 올린 뮤지컬이 망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엘리노어 루스벨트의 헌신적인 삶을 다룬 극인데, 주연 배우인 디디와 배리가 헌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디디와 배리는, 역시 일이 잘 안 풀리는 (그리고 헌신과는 거리가 먼) 뮤지컬 배우 트렌트와 앤지와 함께 자신들의 이미지를 제고할 방법을 찾아 나서고, 엠마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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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더 프롬>은 엠마에게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로 접근한 네 사람이 진심을 다해 엠마를 돕게 된다는 다소 뻔한 전개로 흘러간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 특유의 유쾌한 스타일이 극 전반에 녹아 있어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더불어 매년 추수감사절에 열리는 메이시스 퍼레이드(Macy's Thanksgiving Day Parade: 세계에서 가장 큰 퍼레이드로 백화점 브랜드인 Macy's가 주최하고, 길거리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에서 처음으로 여성 간의 키스 장면을 공연했을 만큼 PC 한 작품임에도, 비교적 가볍게 볼 수 있다는 미덕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펀 홈>이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더 프롬>은 보다 더 넓은 차원의 연대를 보여준다. 엠마가 인터넷에 올린 영상을 통해 다른 성 소수자 학생들과의 연대를 이끌어냈다면, 트렌트는 성 소수자가 아닌 학생들까지도 엠마를 인정하고 돕게끔 만든다. 트렌트를 비롯한 네 사람이 브로드웨이 출신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미국에서 상당히 퀴어 친화적인 문화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3. 뮤지컬 <해적>



위의 두 작품과 달리, <해적>은 한국의 창작 뮤지컬이다. 이희준 작가와 박정아 작곡가의 작품으로, <마마 돈 크라이>, <최후진술>, <알렉산더> 등 두 사람이 함께 창작한 뮤지컬 작품들처럼 아주 독특한 스타일을 지녔지만 특유의 매력으로 확고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두 창작진의 작품들은 아주 적은 수의 배우가 1인 다역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는 특징이 있는데, <해적> 역시 오로지 2명의 배우가 1인 2역을 맡아서 무대에 오른다. 한 명의 배우는 앤과 루이스, 다른 한 명의 배우는 메리와 잭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앤과 메리는 여성 캐릭터지만 루이스와 잭은 남성 캐릭터라는 점이다. 한 명의 배우가 서로 다른 두 성별을 번갈아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캐스팅마저도 젠더 프리로 이루어진다. 앤과 루이스 역할에 남성 배우, 여성 배우가 모두 있다는 뜻이다. 초연 당시에 <해적>의 이런 젠더 프리 캐스팅은 다소 파격적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해적>은 어떤 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 배우의 성별은 제한이 될 수 없으며, 도리어 극에 새로운 재미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무대로 입증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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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해적>은 사실 퀴어보다는 젠더 자체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 작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적>은 여성 간의 사랑을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해적들의 선상 결투 중, 검투사 메리와 총잡이 앤은 서로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이후 극이 차츰 전개되면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루이스와 잭의 이야기와 엮이면서 서사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이희준 작가 특유의 시적인 가사로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똑같이 여성 성 소수자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감에도 위의 두 작품과 <해적>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해적>의 서사에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나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앤과 메리가 첫눈에 반하는 시점부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그걸 바라보는 관객 역시 두 사람의 사랑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배우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여성과 여성, 혹은 남성과 남성, 때로는 여성과 남성의 사랑으로 표현되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는 <해적>을 퀴어 간의 사랑을 묘사한 기존의 작품들과 분명히 차별화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여성 성 소수자가 선두에 서서 극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세 편의 뮤지컬 작품을 살펴봤다. 가족과 연대, 그리고 한 발 나아간 젠더 의식 등 각각 중심축으로 삼은 소재가 다양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반갑다. 여성 퀴어 캐릭터가 포함된 서사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예로부터 한국에서 공연된 뮤지컬 작품은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을 가리지 않고 남성 캐릭터, 남성 배우가 항상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전히 그 경향은 남아있으나, 요즈음 공연계에는 여성 배우들이 주연과 주조연으로 전면에 나선 작품이 훨씬 많아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랑과 더불어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존중받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덧, 뮤지컬 <해적>은 6월 15일부터 8월 29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관심이 생겼다면 한 번쯤 직접 공연장에서 작품을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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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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