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둘기는 날지 않는다. ...정말? [만화]

현실에 순응하고 기꺼이 날기를 포기하는 비둘기, 그리고
글 입력 2021.05.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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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들이 날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비둘기는 비행하는 동물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정상적으로 날개를 가지고 있는 조류다. 올리브 가지를 물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모습은 전 세계적인 평화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의 비둘기는 더는 평화를 상징하는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가 아니다. 현대의 사람들에게 비둘기는 새보다는 게임 속 귀찮은 '몬스터'처럼 여겨진다. '닭둘기'라는 말이 유행한 지 벌써 수년이 지났고, 상대적으로 하늘을 나는 비둘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손에 꼽는다. 그들은 사람이 와도 도망가지 않고, 뒤뚱거리며 느릿느릿 거리를 누빈다. 어째서 그들은 새이면서 땅에 머물러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강인하게 세상을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비둘기들은 날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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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면서 비둘기들은 날 필요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간편하게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마주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굳이 날갯짓을 할 필요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친절한 인간들은 기꺼이 자신의 간식들을 땅에 흩뿌리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비둘기들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그 간식들을 쪼아먹었다. 바닥에 두 발을 붙이고 노력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정직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생도 아니었고, 틀린 생도 아니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갔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인스턴트와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비둘기들의 체중은 점점 불어났다.


한 비둘기 가족이 있었고 그곳에 주인공이 있었다. 그들이라고 다른 비둘기들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길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들을 만족스럽게 먹고 배를 불렸다. 그리고 통통히 오른 살과 함께 바닥을 걸어 다녔다. 도심을 돌아다니다가 횡단보도를 건널 일이 생겼다. 문득 어린 주인공 비둘기는 아빠 비둘기에게 물었다. "아빠, 횡단보도는 어떻게 건너?" 그의 아빠는 대답했다. "우린 비둘기니까 당연히 날아가야지."


그렇게 아빠 비둘기는 먼저 시범을 보이듯 날았다. 하지만 그들이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불었던 체중은 그의 비상을 방해했다.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그의 비행은 땅에 붙어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육중한 몸체와 함께 초라한 비행을 하며 느릿느릿 횡단보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차에 치여 죽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배우자와 부친을 잃게 된 엄마 비둘기와 주인공은 그 이후 나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순응했다고 보는 쪽이 옳다. 그들은 그 이후 다시 날 수 있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기꺼이 날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을 택했고, 그렇게 계속해서 바닥을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동안 그들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안타깝게도 인간 소년이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것은 정기적이거나 규칙적인 것이 아니었고,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은 직접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먹이를 찾으러 다녀야 했다.


길을 떠돌던 두 모자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먹이를 찾아냈다. 엄마 비둘기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쓰레기더미 속에서 먹을 것을 찾으러 갔고, 순조롭게 먹을 것을 발견했으나 근처에 있었던 고양이의 습격을 받았다. 물론 강인한 한국의 비둘기는 쉽게 고양이에게 당하지 않았다. 비록 날개를 쓰지 않고 체중은 불어나 있었지만 그들은 현란한 발놀림으로 고양이를 따돌렸다. 그리고 고양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골목에서 튀어나온 차에 치였다. 엄마 비둘기도 죽었다.

 

시간이 지나 주인공은 어른이 되었고, 앞서 허무하게 죽어버린 어버이의 죽음에서 세상의 고난을 배우며 먹이를 찾기 위해 강하게 컸다. 그렇게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날지 않고 바닥을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아다니고 열심히 발놀림하는 뚱뚱하고 훌륭한 닭둘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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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런 그의 앞에 이상한 소녀가 나타나 계속 그를 귀찮게 하고 따라다닌다. 닭이다. 그것도 그냥 닭이 아니라 미친 닭이다. '통닭'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쫓아다닌다. 비둘기가 아무리 피해 다녀도, 아무리 도망쳐도 닭은 끈질기게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자신을 통닭집에 안내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리 비둘기가 거절해도 그녀는 완강했다.


노을을 사이에 두고 결국 둘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닭 소녀의 삶의 첫 목적은 암탉으로서 알을 낳는 것이었다. 그것이 모든 암탉의 기쁨이었고, 본인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자 기쁨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임 진단을 받았다. 당연시했던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그녀는 이후 수탉들을 따라 아침에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또한 성대결절 진단을 받으며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닭으로서의 의미가 사라졌다. 다른 암탉들처럼 알도 낳지 못하고, 다른 수탉들처럼 아침 울음소리를 내지도 못한다. 그녀는 살아가야 할 이유, 즉 새로운 꿈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침내 통닭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그녀가 닭으로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꿈이었다.


"아저씨는 꿈이 없어요?" 묻는 닭의 질문에 비둘기는 머뭇거렸다. 살기 바쁘다. 먹이를 찾아다녀야 하고, 차에 치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꿈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그러나 기대를 품은 닭에 눈빛에 비둘기는 결국 자신의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생각해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냥 한 번쯤 날아보고 싶다는 거.

그게 꿈이라면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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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닭은 비둘기의 안내를 받아 통닭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후회하지 않냐는 비둘기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며 웃어 보이는 닭. 비둘기는 그런 닭은 불안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통닭집으로 들어가는 닭을 보고 몸을 돌린다. 이후 끝없는 밤 골목길을 열심히 달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닭이 통닭이 되기 위한 준비를 끝내고 도마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어디선가 비둘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마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니 비둘기가 어느새 다시 돌아와 숨을 고르며 닭을 바라봤다. 그리고, 온 감정과 마음을 다해 닭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그녀를 향한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비둘기는 한 발자국, 도로를 향해 내디뎠다. 자신의 어버이가 그랬던 것처럼 차에 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며 그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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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대 사람들에게 꿈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그 진부한 이야기는 생명력을 유지해가고 있다.


그저 대학만 가면 된다는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미성숙한 소년·소녀들, 사회에 들어서기에 앞서 뒤늦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청년들, 혹은 현실에 타협하며 애써 가슴에 묻어두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부터 꿈이 비둘기의 것처럼 문득 사라졌다는, 혹은 버려버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분명 가지고 있었다. 존재했다. 그러나 어느새 자신의 앞길을 막아내는 위험한 것이 되었다. 그것이 없어도 사는 데에 지장은 없다. 그렇기에 기꺼이 버렸다. 그리고 잊었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에게 닭과 비둘기의 이야기는 투영과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한 비둘기의 모습에서 문득 지금까지의 삶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고, 기꺼이 죽음으로 꿈을 이뤄내는 닭과 비둘기의 모습은 '꿈'이라는 단어가 가진 울림을 심화시키며 감동과 용기를 준다. 그리고 다시 꿈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

 

비둘기는 날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기꺼이 그만의 방식으로 다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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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웠던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목표로 하는 꿈과 그 꿈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든 감정은 다름 아닌 의문이었다.


닭 소녀는 자신으로서의 꿈이 아닌 암탉으로서의 꿈만을 찾았다. 주변 모두가 그랬기 때문에. 모두가 알을 낳았고, 울음소리를 냈고, 그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리고 닭 소녀는 그런 그들 사이에서 그들과 같이 알을 낳고 울음소리를 내지 못해 크게 상심했다. 그리고 이윽고 죽음으로서라도 닭으로 남아있기를 바랐다. 모두가 그랬고 그것이 기쁨이었기에,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게 된 닭의 꿈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이것은 과연 또 다른 순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비록 세상에 틀린 꿈은 없으나, 현실에 대한 순응에서 벗어나자 이야기하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메세지이기 때문에, 이런 의문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둘기가 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다시 살을 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날갯짓을 연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날개를 다치거나 해서 앞으로 다시는 날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다. 죽음만이 정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죽음을 택했다. 보다 극적인 결말을 위해 이러한 방법을 선택했을 수는 있으나, 너무 과하고 무모하게 다가왔다. 꿈을 이야기하는 애니메이션에서 그 꿈과 꿈을 이루는 방식이 하나의 지양해야 하는 부분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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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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