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양한 만남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은 대체 어디에
글 입력 2021.05.1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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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는 성격이 좀 나랑 안 맞아."

"걔 이상해."

 

 

나와 다른 사람은 좋게 말해 새로운 사람이고, 나쁘게 말해 이상한 사람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과 좋게 지내려는 나에게 타인의 '이상함'은 크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는 문제이니까. 그 사람이 '예의'의 면에서 크게 어긋난 게 아니라면!

 

최근 들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많아졌다. 자기소개를 듣고 연락해보고 싶어서 무턱대고 같이 팀플하자고 연락했던 같은 과 윗 기수 선배. 작가명으로만, 안부 글로만 대화를 나누던 사이에서 오픈채팅방이 아닌 실제 카톡을 나누게 된 작가님. 그리고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연합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배경, 성격,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만남의 폭을 넓히자 한 것은 맞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확장을 바란 것은 아니었기에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옛 친구들을 찾게 되었다. 내가 알던 사람들, 내가 잘 아는 사람들.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 친구들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왜 이렇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왜 항상 사람과의 관계에서 골머리를 앓는가. 내가 너무 단편적인 만남에만 취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질수록 자책은 늘어가는 법이다. 특히나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길은 두 개인데 어느 한 곳에도 발을 뻗지 못했다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관계는 '대화'를 통해 잘 풀어나갔었다. 굳이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카톡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도 크게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좀 달랐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피하기', '들이받기'. 공평하게 한 번씩 했다. 한 번은 최대한 받아들이며 문제가 생기는 걸 피했고, 그 이후의 한 번은 들이받았다. 언쟁을 끝내고 나니 남은 건 피곤함 뿐이었다. 득도, 실도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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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심한 대로 들이받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참을걸'. '아니야 그냥 참았으면 화병 났을지도 몰라'. 두 가지 기분이 공존하며 나를 쿡쿡 찔러댔다. 참자니 바보 되는 것 같고, 참지 않으니 괜히 감정적으로 굴었나 후회가 되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것이었다.

 

가끔 대화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나쁜 애들은 속 편하게 살 텐데. 괜히 우리만 이런 고민 하고 있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 라는 정의에 크게 동의하지 못한다. 굉장히 철없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우리도 나쁘게 살아버릴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킬킬거리기도 한다.

 

물론 남에게 해를 가하고 살 성격은 못 된다. 애초에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사소한 문제가 크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난 좋게 말했는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지. 내가 뭘 잘못했나. 이런 자책도 힘겹기만 하다.

 

결국 '피하기', '들이받기'를 한 번씩 했지만, 성공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했다. 이러다간 나 자신을 잃을 것 같았다.

 

 

 

넌 좀 독특해



'내가 봐도 넌 좀 특이하지'. 이런 이야기는 꽤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뒤에 꼭 이어져 오는 말까지. '그러니까 나쁜 건 아닌데, 확실하지'. 병도 약도 아닌데 찝찝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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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누군가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과거에는 남에게 맞추고, 매사에 눈치를 보는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눈치를 보되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나'를 지키고 싶었다. '나'를 잃을 정도로 눈치를 보고, 남에게 맞추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는 굉장히 쉬운 것이 되었다. 좋게좋게 웃으면 단편적인 만남은 끝나 있으니까.

 

융통성이 부족한 성격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왔다. 자기가 할 건 잘하니까 사회에서 일을 못 하진 않을 건데,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크게 잘할 것 같지도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고쳐야 하나. 잘 안 되던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넘기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잘 넘어가지 않았던 적이 많다.

 

확실한 성격이라 누군가가 팀에 피해를 주는 걸 아주 싫어한다. '내가 할 건 내가 하고, 네가 할 건 네가 해서 잘 끝내면 되는데 왜 저럴까'. 내가 남의 일을 더 해주는 건 상관없다. 그러한 호의를 권리로 아는 게 문제지.

 

일할 때마다 생각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이다. 타인의 친절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것, 호의를 감사하게 여길 것. 너무 명확해서 그런지 그러지 않은 사람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언행이 누적되면 참기가 힘들다. 남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성격이기에 사소한 말에는 동요하지 않지만, 선을 넘어가면 속이 끓기 시작한다. 그리고 슬슬 열이 오른다. 물론 다행히도 아직 그런 경험이 많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내가 독특해서 그런 걸까. 너무 '참기'의 역치가 낮은 것일까. 답이 없는 질문만이 늘어가는, 아주 좋지 않은 현상이다.

 

 

 

일단 피하고 생각할래



반복된 회피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 내린 결론은, 해보고 안 되면 피하는 것이다. '일단 참고 눈치 보고 맞춰주자, 그리고 안 되면 피하자'. 물론 칼로 무를 썰 듯 한 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참는 과정은 힘들고 괴롭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짜증도 조금 늘어난다.

 

이 모든 것이 마지막 어딘가에 있을 '완성될 나'를 위한 중요한 거름이 될 것이라는 건 알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단편적인 만남을 제외한 모든 만남은 쉽지 않고, 사람 개개인은 더 어려웠다.

 

누군가가 답을 제시해 주었으면. 아니면 이런 경험이 누적되어 미래의 내가 답을 내려주려나.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안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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