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과 이별을 앞에 둔 그녀는, 모든 게 끝난 후 그는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영화]

글 입력 2021.05.0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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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영화다. 포스터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서정적인 느낌, 그리고 높은 유명세 때문에 틀림없이 남녀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같은 일본의 유명한 로맨스 영화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이런 내 예상을 비웃듯, 영화는 담백하게 흘러갔다. 남자 주인공 츠네오가 조제의 집에서 처음 밥을 먹던 순간부터, 이별한 후에 조제의 집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버린 감정의 온도와, 현실적인 문제가 겹쳐져 돌아선 두 사람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1. 사랑의 시작



할머니와 츠네오와 조제.jpg

 

 

할머니를 통해 조제의 사정을 알게 된 츠네오. 그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선천적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손녀를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조제를 유모차 속에 꽁꽁 감춰두고 산책을 해왔다. 할머니의 권유로 그녀들의 집에서 밥을 먹은 츠네오는 왠지 모르게 그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조제와 츠네오는 책 읽음.jpg

 

 

그렇게 츠네오는 자주 그녀들의 집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며 여러 도움을 준다. 의자에서 내려가려고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떨어지는 조제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집 구조를 고치는 서비스를 신청하기도 하고 그녀가 원하는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조제는 앙칼지고 무뚝뚝하지만 순수하다. 그녀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대신 할머니가 주워온 책들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밖에 나가고 싶어도 할머니의 완강한 거부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조제. 츠네오는 그녀를 데리고 마음껏 동네를 활보한다. 여자 친구가 있지만 그는 점점 조제에게 끌림을 느낀다.

 


집 탈출.jpg

 

 

하지만 조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 사실에 매우 화가 난 할머니가 그를 내쫓으면서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끊긴 듯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츠네오는 다시 조제를 찾아간다. 화가 난 조제는 그를 내쫓다가도 다시 붙잡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심을 전한다. 가지 말라고, 옆에 있어달라고, 좋아한다고 말한다.

 

 

 

2.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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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둘이 함께 향한 곳은 동물원, 호랑이 우리 앞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조제. 그녀는 꿈에 나올 만큼 무섭다고 하면서도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사랑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이별의 두려움을 미리 마주하고 있던. 그 아픔을 알고도 사랑에 뛰어들었던 조제의 용감함 아니었을까.


이윽고 장면은 1년 후로 넘어간다. 츠네오는 동생과 대화하며 가족 제사 때 조제를 데려갈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 그날 밤, 혼자 집을 지키는 조제한테 친구가 찾아온다. 츠네오가 조제와 함께 부모님을 보러 간다고 자신에게 차를 빌렸다고 한다. 이제 결혼하는 거냐며 묻는 친구에게 그럴 리 있느냐며 대답하는 조제. 차 주인은 그저 황당할 뿐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조제는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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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일찍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게 아닌 둘만의 여행이다. 츠네오는 전화로 동생에게 할 일이 있어 오늘 가지 못한다고 전한다. 자신이 없어졌는지 묻는 동생에게 대답하지 못하고 끊는다. 맞다, 츠네오는 자신이 없어진 거다. 시간이 지나 옅어진 사랑도, 조제를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도.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츠네오의 식은 마음이 보인다. 아침부터 열심히 달려 도착한 수족관이 휴관해 잔뜩 기대한 조제가 투정을 부리자 날 선 반응을 보인 것도, 이제 자신도 힘이 드니 휠체어를 사자고 하는 모습에서도. 평생 너에게 업히면 된다는 조제에게 츠네오는 나도 언젠가 늙는다고 대답한다. 조제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츠네오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그가 보지 못한 슬픈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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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족관은 몇 시간을 더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고 하자, 둘은 방향을 돌려 바다로 향한다. 소소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 도착한 두 사람. 방에 비친 물고기 조명을 보며 조제는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깜깜한 암흑 속에 살던 내가 널 만나기 위해 헤엄쳐 올라왔다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던 정적 가득한 해저에서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고. 츠네오가 잠에 들어도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간다.

 


물고기.jpg

 

 

“난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호랑이로 표현된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끝의 두려움도, 물고기로 표현된 어느새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고 있는 슬픔도. 전부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하는 조제다.

 

 

 

3. 사랑의 방식이 달라서


 

이별선물.jpg

 

 

그 후로도 둘은 몇 개월을 함께 살았다. 그리고 담백하게 이별한다. 현관에서 신발 끈을 묶는 츠네오에게 이별 선물을 건네는 조제. 내일이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담담한 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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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츠네오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아니라 단 한 가지, 자신이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조제와 헤어진 후 자신을 잊지 못하던 전 여자 친구와 만나지만, 츠네오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길가에서 그냥 울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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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제는 여전히 담담하다. 츠네오를 만나기 위해 해저에서 헤엄쳐 올라왔다던 그녀는, 그가 사라져도 여전히 물 위에 머무른다. 그리고 혼자서도 충분히 그녀의 삶을 이어간다. 혼자서 산책도 못하던 조제는 어느새 필요 없다던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장을 보고, 요리하고, 여전히 의자에서 떨어진다. 2인분을 요리하던 프라이팬에 올린 1인분의 생선을 보고 허전함을 느껴도 금세 불을 끈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랬듯, 의자에서 떨어진다.


조제와 츠네오가 사랑하는 방식은 달랐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조제와 달리 츠네오는 항상 한발 물러서서 그녀를 사랑했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조제의 집으로 달려온 츠네오가 조제의 타박에 신발을 신을 때, 조제는 말한다. 가란다고 가버릴 사람이라면 당장 가버리라고. 먼저 붙잡은 것도,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도 전부 조제다. 츠네오는 먼저 표현한 적이 없다.


조제와 연인이 되어 사귀던 사람에게 작별을 고할 때도, 그는 조제를 혼자 둘 수 없다고, 지켜줄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말했다. 1년이 지난 후에도 츠네오는 여전하다. 회사 선배에게 듣는 조언조차 네 할 말은 제대로 말해야 한다는 것. 츠네오는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도망친 츠네오가 나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방어적인 자세는 그의 사랑하는 방식이었을 뿐,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집안에 고립되어 있던 조제를 바깥으로 이끌고, 혼자였던 그녀가 세상과 마주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 사람이다. 그의 다정함은 분명 조제에게 큰 위안이었다. 갈수록 커지는 현실의 무게가 사랑하는 마음을 짓누른 것이 꼭 그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4. 몸이 조금 불편할 뿐인데


 

어렸을 때 보육시설에서 자라던 조제는 친구와 함께 무작정 시설을 도망쳐 나와 지금의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할머니는 조제를 위해 온갖 책을 주워 오거나 매일 아침 산책하러 나가는 등 살뜰히 그녀를 보살핀다. 다만 한 가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 장애가 있는 손녀를 마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굉장한 수치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제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자라왔다. 그래서 츠네오가 조제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할 때도 할머니는 미친 듯이 화를 내시고, 심지어 집 구조를 고치기 위해 찾아온 건설회사 사람들에게도 조제를 숨긴다.


할머니는 조제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탓에, 자신이 없어진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그렇게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맨몸으로 높은 세상과 마주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간단한 일조차 남의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해내기 힘든 자신의 처지가 분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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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와 연인이 되었어도 행복했던 시간은 일 년 남짓이었다. 그의 마음이 식은 게 무조건 조제의 장애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예 영향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이별 후에 집을 나가는 츠네오를 배웅하던 밝은 얼굴은 이내 공허한 표정으로 바뀌고 만다.


하지만 영화는 조제를 그저 비관적이고 안타까운 인물로 남겨두지 않는다. 혼자가 된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마냥 방에서 도움을 기다리지 않는다. 휠체어를 타고 직접 밖으로 나가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홀로 자립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어엿한 모습의 그녀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장애의 정도가 심할 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에게 큰 실례가 된다. 그들의 일을 대신 해주기보다도,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립을 도와야 한다.


로맨스와 장애 모두를 섬세하게 다루어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 후반에 조제가 홀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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