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용할 양식(1)

글 입력 2021.05.0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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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오늘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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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 내게 내 삶이 무엇으로 영위되고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쉽게 답해줄 수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는 단연 의식주다. 사람은 그 세 가지가 있어야만 삶, 혹은 그나마 ‘살아 있음’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아니, 그 세 가지 지표를 채우기 위해 분투하는 하루하루가 생명의 지속 그 자체이자, 존재의 증명과정이라고 해야 맞겠다. 사람의 본질이 의식주에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명체의 본질은 분명 의식주의 획득과 유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가장 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꼭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면, 나는 보통 음식을 가장 먼저 포기한다.


반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집이나 옷보다도 음식에 있어서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를 쥐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거의 공짜로 끼니를 해결할 수도, 아니면 한 끼에 월세를 쓸 수도 있다. 게다가 옷이나 집이 일단 해결하고 나면 대체로 하루는 걱정이 없는 문제인 반면, ‘무엇으로 어떻게 배를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몇 시간마다 새롭게 우리를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 세 번-또는 그보다 훨씬 더 자주-찾아오는 ‘뭘 먹을까’라는 고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매일 내리는 그 선택이 하루를 굴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몸이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것들의 총체라는 생각은 전혀 새롭거나 놀라울 게 없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각보다 먹는 데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고 있다. 여기서 신경을 쓴다는 건 그저 때맞춰 적당히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식자재가 어디서 왔는지, 음식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영양성분이 어떠한지 등 아주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 또한 식단 조절이나 포장 겉면에 쓰인 영양 정보를 읽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초등학생 때 가끔 사 먹었던 불량식품 정도 되는 위생 상태의 음식들은 요즘 시대에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고, 또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영양보다 더 중요한 건 맛과 가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는 그런 것조차 고려할 새가 없어서 그냥 아무거나 빠르게 사서 배를 채우곤 했다. 그렇게 먹고 사는 사람이 태반이었으니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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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變態)의 시작


 

그러다가 작년 10월 말에 나는 헬스장 회원권을 끊었다. 사 분의 일쯤은 자의였고, 또 사 분의 일쯤은 타의였고, 나머지 절반은 충동이었다. 체중 감량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고, 되는대로 먹고 또 먹는 대로 소화하는 게 익숙했던 나는 그냥 멋진 근육을 좀 만들고 싶었을 뿐인데, 헬스장에 처음 발을 들인 그날 트레이너가 보여준 내 체성분 검사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검사지는 내게 ‘그렇게 드시면 안 돼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부로 나는 ‘건강식’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음식에 대해 이토록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몇 개월 동안 식단을 뜯어고치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건강식이 그렇게 괴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식단을 구성하면서부터 생활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까지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살이 빠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어떠한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었고, 삶의 질을 바꾸는 변화였다. 

 

물론 시행착오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 무작정 체중 조절에 좋다는 것들을 먹었다. 고구마, 현미밥, 닭가슴살, 계란, 샐러드를 먹어도 소스는 되도록 빼고. 정확히 칼로리를 계산하기 위해 주방 저울도 샀다. 변화가 빠르게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런 식단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오히려 맛있는 것들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매일 언제 무얼 먹어야 하는지 자동적으로 정해진다는 것은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정-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하나 없어진 셈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는 시간을 세상의 온갖 맛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데 충실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무자비하게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온갖 영상매체가 한몫하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에는 끝이 없었다. 더 맛있게, 더 많이 먹기 위해 온갖 조리법에 이렇게까지 열정을 쏟는 종족은 아마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매일 적어도 두 시간을 오로지 음식 생각에 빠진 채 ‘먹방’을 찾아보는 데 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건강한 식단일지언정, 건강한 삶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먹고 잘 먹는 게, 그러면서도 건강은 유지해야 하는 게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덕이 된 것 같다. 특이한 체질이어서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있는’ 음식을 산처럼 쌓아 두고 끊임없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들은 무엇을 얻고 있을까? 우리는 왜 거기서 재미와 쾌감을 느끼는 걸까? 찐 고구마를 앞에 두고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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