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색깔일기 프로젝트 : 일상에 색깔 부여하기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5.0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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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나는 내 전공과 관련된 개인 레슨을 받았다. 몇 년을 목멨던 전공임에도 숭숭 뚫린 단점들 사이로 내 꿈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이제라도 메꿔보려 들었던 수업이었다. 만족스러운 수업이었고 그 후로 배운 것을 복습하느라 간만에 밤늦게까지 열정을 쏟아부었다. 침대에 누워 찬찬히 훑어본 하루에 보람이 가득 참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의 나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즐겼다. 밤새 열의에 밀려나야 했던 잠은 다음날의 느지막한 아침까지 침범했고, 여느 주말이 그렇듯 해가 오르막 정상에 선 시점에서야 눈을 떴다.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좀 보다가 휴대폰을 하고, 어제 했던 작업도 조금 마무리하다가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이것이 어제 ‘나는 무엇을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루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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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도 침대에 누워 하루를 살폈다. 뿌듯함 없이 일상적으로 흘러간 하루가 그 전날과 비교가 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나의 그저께도 그다지 대단치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저께는 전진이었고 어제는 정지였다. 뭐라도 했어야 했나, 다른 작업을 시작했어야 했나,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좀 더 일찍 시작할 걸 그랬나 하는 죄책감들이 지나간 시간을 쿡쿡 따갑게 찔렀다.


잘못한 것 없는 하루가 괜히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잘못이 아니었는데, 왜 나는 그걸 잘못 같다고 느꼈을까. 그저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였는데 말이다.그저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였는데 말이다.

 

 

 

평범의 잘못



비단 하루뿐만 아니라 우리는 많은 것들에서 평범함을 비난한다. 나의 일상이, 나의 외모가, 나의 성격이, 나의 능력이, 나의 꿈이 남들보다 평범함을 알아차릴 때, 죄책감이나 좌절이 함께 따라오기도 한다. 보통의 것들에서 왜 절망을 느낄까. 세상에 존재하는 규율은 모두 평범함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말이다.


반드시 남들과 달라야 할까. 가장 앞장선 우두머리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일까. 보통의 다수를 책임지는 그들이 어쩌면 가장 보편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어야 하지 않나. 애초에 보편성은 어떻게 생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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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집단에 속했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떠오른 문구가 있는데, ‘하늘 아래 같은 핑크는 없다’라는 말이다. 연분홍으로 분류되는 흰색 섞인 분홍색부터 진분홍, 핫핑크로 불리는 쨍하고 비비드한 분홍색까지 우리는 모두 뭉뚱그려 핑크라고 말한다. 내가 파란색이 아니라고 해서 나의 분홍색과 남의 분홍색이 같은 색은 아닌 것이다.

 

이 지점이 평범을 잘못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분명히 핑크 속의 나와 너는 다른데, 파란색, 노란색 등등의 아예 다른 색을 가진 이들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그냥 핑크로 부른다.

 

내가 분홍색인 게 잘못은 아닌데도, 나의 분홍빛을 세밀히 살펴주지 않는 세상 때문에 나의 색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분홍빛 하루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의미 없이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평범한 어제를 다시 떠올렸다. 이렇다 할 일들 없이 지나친 분홍빛의 하루들은 많다. 파란색, 노란색의 하루들만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보낸 분홍빛의 하루들이 모두 같은 색이었을까?

 

어제는 여유를 느꼈다면 다른 분홍빛의 하루엔 슬픔이, 또 다른 분홍색 하루엔 은은한 즐거움이 맴돌았을 것이다. 이렇듯 모두 다른 색의 분홍색을 가졌는데 나는 이것이 그저 수많은 핑크색이라고 아쉬워한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모두 다른 의미와 감정을 지녔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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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할 일을 지금 미리 해보아야겠다. 오늘의 하루는 어땠나.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분홍색의 하루를 보냈다. 다만 특별한 것이 있다면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보낸 이틀의 색깔을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그저께와 어제의 하루를 회상해본다. 그저께의 나는 노란색의 하루를 보냈다. 창의적이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제는 조금 탁하고 옅은 분홍색의 하루를 보냈다. 그저께의 노란색을 부러워하느라 초라해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는 보라색에 가까운 분홍색의 하루를 보낸 듯하다.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간 하루였지만, 분홍색 하루들의 다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푸른색이 일상의 분홍색에 섞여 보랏빛을 띠었다.

 

 


색깔일기 프로젝트


 

생각의 흐름을 행동으로도 옮겨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나는 색깔 일기를 써볼까 한다. 내일의 하루는 어떤 색을 띨까. 분홍색의 하루였을까, 확연히 튀는 색깔이었을까, 혹은 오늘처럼 다른 색이 물든 분홍색일까.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하루들이 이제는 각자의 색을 뽐낼 것이다.


2주 뒤, 이 주제로 글을 다시 한번 써볼까 한다. 꾸준히 적어 내려간 하루들이 모여 어떤 한 달을 만들어갈지 궁금해졌다. 혹여 이 글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동참해 주길 바란다. 당신의 하루에 어떤 색을 칠하고 싶은가. 알록달록한 한 달이 될 수도, 한 톤의 일정한 한 달이 될 수도 있겠다.

 

색깔을 채워가며 각기 다른 보통의 나날들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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