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를린의 빛, 밤의 찰나를 그린 화가 '레세르 우리' [미술/전시]

레세르 우리의 눈으로 바라본 밤을 만나다
글 입력 2021.05.0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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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과 밤거리의 조합은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도시의 불빛과 어둠은 대조되어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고, 여기에 비가 더해지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여기, 눈과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독일의 인상주의 화가 레세르 우리(Leo Lesser Ury)이다.


레세르 우리의 그림은 감상자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영화 속 멋진 한 장면을 보는 듯하고, 내 머리 속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 가져온 듯하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홀린 듯 저장하기 시작했고 가만히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밤거리 전문 화가라 불렸던 레세르 우리. 그의 작품을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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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 Lesser Ury

 

 

레세르 우리는 독일계 유태인 인상파 화가이다. 프로이센의 비르바움에서 태어난 그는 베를린으로 이주해 긴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잠시 베를린을 떠나 브뤼셀, 파리, 슈투트가르트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889년에 열린 그의 첫 전시회는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떠오르는 화가로 거듭나게 했다. 어두운 도시를 주로 그렸던 그의 작품 속 빛은 인상주의의 맥을 이었다. 빛을 포착하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인상주의만의 특징이 드러났다. 독보적이고 일관성 있는 그의 그림은 그를 ‘밤거리 화가’로 굳히게 했다.


말년의 레세르 우리는 운둔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항상 내성적이었던 그는 사람들을 불신하기 시작하면서 어둡고 암울하게 변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베를린에서 마지막을 보냈고,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유럽의 빛, 밤의 찰나를 그린 화가. 레세르 우리의 삶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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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er Straße, 1889


 

<라이프 치거 슈트라 쎄>는 베를린의 중앙 미테 지구에 있는 주요 도로이다. 그는 베를린의 다양한 거리를 분석하고 표현했다. 그가 살아생전 가장 집요하게 파헤쳤던 주제가 바로 베를린의 거리였다. 그 중 겨울의 베를린 거리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연말 준비로 분주한 겨울 도시, 눈으로 젖은 바닥과 그에 반사되는 불빛. 아마 작가는 이 같은 풍경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 작품 역시 이와 같은 순간을 담았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도시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마차를 끄는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레세르 우리의 밤은 정말 아름답다. 계속해서 작품을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실제로 레세르 우리의 작품을 바라보면 아름다워 작품 앞을 떠나기 어렵다고 한다. 나 역시 그의 작품을 자꾸만 찾아보았다. 내가 아는 밤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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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sdam square by night, mid-1920s


 

레세르 우리의 주요 작품으로 꼽히는 <포츠담 광장의 밤>이다.

 

베를린의 유명한 포츠담 광장을 그만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엷은 안개와 젖은 아스팔트로 인해 풍경과 건물의 외곽은 짐작만 가능하다. 전광판과 트램으로부터 나오는 도시의 빛은 젖은 바닥에 반사되어 감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이 작품에는 20세기의 유럽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대중교통이 점차적으로 발달하며 도시는 번잡해졌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다채로워졌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포츠담 광장은 새로움과 변화를 상징하는 자부심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당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20세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밤의 움직임이 생생히 느껴진다. 사람들과 트램의 소리, 빗소리, 각종 도시의 소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뚜렷한 경계와 외곽선이 없어 이 생생함이 더욱 극대화된다. 우산 밑에서 베를린 밤의 한 순간을 눈에 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이 아름다움을 더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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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 dem Café(Berlin bei Nacht), between 1920 and 1929


 

이 작품 역시 도시의 밤을 담은 <베를린의 밤>이라는 작품이다.

 

카페로 추정되는 곳에 사람이 붙어 서있고, 차가 여러 대 지나가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도시의 밤이다. 그래서일까, 이 평범한 한 순간을 편안하게 바라보며 이곳저곳 살폈다. 어떤 순간에 매료되어 이 그림을 그렸을까, 어떤 눈으로 이 도시를 바라봤을까 등 많은 생각을 했다.


어둡고 차분한 색이 주를 이룬 작품 속 노란 빛은 감상자들의 눈을 끈다. 노란 빛은 조금 더 우아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두운 도시를 표현할 때도 다채로운 색감이 가미되어있다. 여러 색이 겹쳐진 바닥은 울퉁불퉁한 유럽의 돌바닥을 연상케 하고, 반사되는 그림자 역시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밤이지만 차갑거나 쓸쓸하지 않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따뜻한 색감과 뭉툭한 표현 형식 때문일 것이다. 새삼 레세르 우리의 눈이 부럽다. 평범한 한 순간도 아름답게 여기는 눈 말이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밤은 이러했으리라 짐작해본다.


*


밤거리 전문 화가 레세르 우리. 평범한 찰나를 평범하지 않게 표현했다. 웅성거리는 도시, 따뜻한 어둠, 퍼져나가는 빛. 밤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범할지 모르는 일상적인 순간을 다시 한 번 지그시 바라보게 했다.

 

레세르 우리가 선물해준 아름다운 밤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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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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