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른 이의 공간을 채우는 일 [음악]

글 입력 2021.05.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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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내 손엔 아이리버와 아이팟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도입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페이스북, 카카오 등의 플랫폼을 이용할 때, 나는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그것들을 등진 채 살아야 했다. 시간과 집중력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형태의 SNS에서 오는 상당한 피로감을 쏟고 싶지 않아서였다. 주말마다 MP3에 넣을 노래를 추천받는 정도로, 아주 소극적으로 사용했다.


부모님의 직장에서 제공된 아이리버 MP3와 친척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데려온 아이팟 두 가지는 꽤 큰 즐거움을 줬다.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수험생 친구들끼리는 ‘플레이리스트 공유’가 유행이었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자신의 음악 재생목록을 자신만의 소유물로 여겨 비밀리에 간직하기도 했다.


매주 주말마다 수많은 플레이리스트를 정돈하고, 새로 만들고, 지우고, 다듬었다. 예를 들면 ‘등교할 때’ ‘학원에서 집에 갈 때’ ‘시험 직전’ ‘시험 끝난 날’ ‘OO이(첫사랑 상대의 이름이다)’ 등 때와 시기, 떠오르는 인물에 따라 약 열두 개의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미지만, 나는 그 일에 꽤 진심이었다. 후엔 간간이 소비한 영화 콘텐츠나 책에 몰입하여, 작품과 관련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대학교에 온 이후, 정신없이 술을 들이붓고 과제를 하고, 축제를 즐기는 등 잠시 그러한 취미와 멀어졌다. ‘굳이’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음악 채널을 소비하지 않아도, 수많은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 취향인 음악들을 아무렇게나 모아 담아 랜덤 재생 버튼을 누르곤 했다. 그런 노래들을 귓등으로 들으며 친구들과 정신없이 카톡을 주고받고, 인스타그램을 훑는다. 그러다 배경음악으로 듣던 음악마저도 아무 생각 없이이 재생한 유튜브 콘텐츠에 저 멀리 밀려났다.


그렇게 살아오다, 작년 초부터 문득 혼자가 되었다. 분명 신분은 변함없이 학생이었음에도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잇따른다. 자주 마주하던 주변인을 쉽게 불러낼 수 없다는 점부터, 좋든 싫든 한 강의실에 붙어 앉아 수업을 듣는 일도 없어진 데다, 졸업작품 피드백 또한 이메일 혹은 줌(ZOOM)으로 대체되었다. 혼자가 되니, 나는 다시 플레이리스트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재작년과 작년 사이, 그때부터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이 가파르게 성행했다. 떼껄룩(take a look), 연플리, 들어보송, 리플레이, 에센셜 등 몇십만 조회 수를 넘어 몇백만은 기본이다. 나 또한 혼자인 시간에 그들의 도움을 곧잘 받았으며, 플레이리스트가 가진 스토리와 감정을 따라 울고 웃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복병이 생겼다. 나는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자가 아니다. 이미 월 구독 비용만 오만 원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 백수인 현실이라, 일상적이고도 경제적인 비용을 더 이상 납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명 채널의 경우, 음악 저작권자에게 수익을 분배하기 위해 채널 관리자의 선택과 관련 없이 광고가 삽입된다. ‘집중할 때 좋은 피아노 음악’을 듣다 와썹맨의 고함 소리를 듣고 심장이 내려앉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유튜브와 함께하는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만들었다. 처음엔 나, 나의 지인 외에 그 누구도 초대할 생각이 없었기에 비공개 공유로 업로드했다. 그러다 일일이 링크를 송부하기 귀찮아져 공개로 변경했다. 많아야 60~100 사이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광고가 붙지 않을 수 있으니. 그렇게 몇몇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다가, 한 플리(플레이리스트의 줄임말)가 말 그대로 ‘떡상’했다. 평소에 깊이 관심을 가지던 아티스트의 곡 모음이자 부모님이 운영할 가게를 위해 만든 플레이리스트인데, 몇 천 단위를 넘어서더니 금세 몇 만이 되었다.

 

 

 

 

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차곡 쌓아올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지, 누군가를 위한 플레이리스트는 만들어본 적이 없기에 구독자들의 몇몇 요구에 허둥지둥 응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들의 말 몇 마디 덕분에 시간별 곡 이름도 알려 주지 않던 불친절한 플리 주인은 조금씩 성장해나가고 있다. 가장 즐거운 건 아무래도, 그들의 고백 같은 댓글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 주는 이부터 노래의 취향이 비슷해 좋다는 댓글까지.


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 애플리케이션 대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선호할까. 우선 대중 장악력이 가장 높았던 한 플랫폼의 신뢰도가 급감하면서, 그들에게 등을 돌린 소비자가 많아졌다. 하지만 비슷한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모양이 아니라, 영상 플랫폼으로 이동해왔다. 이는 아무래도, 음악을 듣는 것에 있어 시각적인 요소의 만족 또한 중요시된 소비 형태의 영향일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할 때’를 검색하면, 도서관 전경 혹은 필기하는 모습 등 감성적이고도 집중하기 편한 시각적 자료가 동시에 재생된다. 원하는 도시 분위기와 플레이리스트를 조합하면 해당 도시의 경관 사진이 붙은, 게다가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노래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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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댓글’ 기능 없는 플레이리스트는 상상할 수 없다. 누구나 나설 수 있으며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 하는 MZ 세대이니 말이다. 우울한 플레이리스트엔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첫사랑과 관련된 플레이리스트엔 지난날의 사랑에 대한 일화를 공유하며 공감을 나누기도 한다. 이쯤되면, 굳이 음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어쩌다 보니 공개적인 취미가 되었지만, ‘광고’를 불평으로 삼아 시작했던 점은 조금 부끄럽다. 디자인과를 전공으로도 뒀으면서, 심지어 음원 발매에 도전한 적도 있으면서 아티스트가 가져야 할 온전한 수익을 ‘불편하다’라고 생각했으니. 아티스트를 위해, 나를 위해 결국 나는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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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 계정에 다수 활용되는 '로파이' 이미지


 

플레이리스트 운영자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깊이’에 많은 노력을 쏟는다. 나는 <떼껄룩>처럼 센스 넘치는 사람이 아니며, <에센셜>처럼 화려한 모션그래픽을 활용하지도 못 한다. 우선 ‘이러이러한 상황에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으면 좋겠다‘가 떠오르면 포스트잇 하나하나에 기록해 둔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적합한 노래들을 발견하면 모자이크처럼 모아 차곡 쌓아 본다. 기승전결에 따라 순서를 조정하고, 혹여 뜻이 왜곡되거나 선정적인 곡은 없는지 검토한다. 간혹 곡들의 내용을 이용해 작은 스토리텔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을 채울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진다.


소비자로서, 그리고 운영자로서 플레이리스트 채널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내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의 분위기와 무드를 누군가 함께 애용해 준다는 것, 내가 만들어내 올린 것들을 누군가 찾아 들어 준다는 것 등이 그렇다. 그중 가장 벅찬 일은,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서는 음악들을 조립하는 일이다. 그들만의 공간 안에 들어서 듣는 이의 감정을 매만지고 보듬는 일은, 반대로 내 감정을 주무르는 일이기도 하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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