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풍경은 가고 사람은 남는다 [여행]

여행이 남긴 사람들
글 입력 2021.04.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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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기간동안 나는 총 두 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첫째는 가족과 함께한 제주도 2박 3일 여행이었고, 둘째로는 동아리 언니들과 함께한 춘천 당일치기 여행이다.

 

여행에서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는 것이 큰 이벤트이자 놀라움이 된다. 눈이 휘둥그레져 여행에서 마주하는 풍경을 탐색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자연을 보고 가만히 있었던 적이 없다. 이 말인 즉슨, "우와 저것봐!" "진짜 아름다워" 등 온갖 감탄사를 방언처럼 터뜨리거나 핸드폰을 꺼내 바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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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갔던 세계자연유산이자 생물권보전지역인 제주도의 자연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서울에서 지겹게 투쟁했던 미세먼지와 황사는 기어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신 드높게 맑고 청아한 하늘이 섬을 감쌌다. 또 청록색, 하늘색, 남색빛을 오가며 빛을 내는 에메랄드 빛 제주 바다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끌어 안아주는 자비로움을 뽐냈다. 마시기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드는 상쾌한 제주의 공기는 우리 어머니의 막힌 코가 뻥 뚫리게 하는 마술을 이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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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로 다녀온 춘천 또한 빼어난 산수를 자랑했다. 용산역에서 itx 청춘을 타고 1시간 정도만 가면 남춘천역에 내려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폐역 '김유정역'을 둘러볼 수 있고,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배터지게 먹을 수 있다. 남춘천역에서 강촌까지 이어지는 레일바이크도 즐길 수 있다. 레일바이크에 앉아 성심성의껏 페달을 밟으며 귀를 간지럽히는 산새들의 노래를 듣고, 시원하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위엄있는 병풍처럼 자리한 산을 음미하기도 했다.

 

 

 

풍경은 가고 사람은 남는다


 

여행이 끝난 뒤 알았다. 나는 강철체력이 아니라는 것을. 연속으로 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오니 몸이 흐물흐물한 계란후라이처럼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가 후라이팬이라면 나는 지금 막 팬 위로 던져져 뭉개진 노른자 같달까.

 

여행이 끝난 후 찾아오는 것은 활기찬 에너지가 아니라 약간의 무기력함이었다. 분명 밖에서는 온갖 자연의 정기를 맡으며 새사람이 된 것마냥 파이팅이 넘쳤는데 말이다. 허나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졌고 몸이 무겁다는 것을 온전히 체감하게 되었다. 요즘 재택근무를 하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나 둘다 집에서 조금의 늦잠을 잤고, 정말이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게 귀찮아졌다는걸 무섭게 실감했다.

 

"물이 약간의 우울함을 덜어내는 자연 치유제라더라"

 

어머니께서 샤워를 하러 들어가셨다. 나도 그 말을 듣고 '그래, 일단 씻기라도 해서 정신을 차려보자'며 다른 방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없이 샤워기를 들고 온수를 틀었고, 언제나 그랬듯 나는 40~41도를 웃도는 따끔하게 뜨거운 온수에 몸을 맡긴다.

 

그러더니 불현듯 지난 제주도와 춘천 여행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경이로움을 느꼈던 순간들은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그날들의 하이라이트는 자연이 아니었다. 물론 춘천에서 바라본 '구곡폭포'의 황홀한 광경, 아홉굽이를 돌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또한 제주 바다에서 1시간을 기다려 처음 잡은 물고기 '쏨뱅이'의 앙증맞은 자태도 또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순식간에 반짝이고 사라졌다. 대신 선명하게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었으니.. 바로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아빠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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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해군인 할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해군사관학교를 다녀오셨다. 그런데 잠깐이었다. 왜 중간에 해군 장교 과정을 그만두고 나오셨는지는 아빠께서 설명해 주신 적이 없다. 인생의 방향을 우회했던 당신의 결정의 이유가 나는 항상 궁금했다.

 

드넓은 '자연' 앞에서 사람은 '자연히' 겸손해지는 것일까. 평소에는 당신의 역사에 관해 일절 말씀하지 않으셨던 아빠께서 입을 여셨다. 나는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이 순간은 너무도 반갑고 강렬해서, 늙어서까지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장면임을.

 

아빠는 지금 막 제주 바다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잡은 쏨뱅이의 싱싱한 회를 한 입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우. 나는 바다를 보면 우울하다 아주. 너네 바다에서 훈련하는거 얼마나 힘든지 아냐? 아침 9시부터 들어가서 5시나 되어야 나와."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곧이어 질문했다. 그럼 그 긴시간동안 바다에 있으면서 점심은 어떻게 먹었냐고. 그러면 매일 지겹도록 바다에 들어가 뭘 하냐고 말이다.

 

"그냥 바다에 크림빵 던져주면 그걸로 점심먹었지. 훈련 어떠냐고? 너무 힘들어. 동전 100개를 바다에다 뿌려. 그거 2개 주워오라고 하는거야. 만약에 못찾지? 그럼 찾을 때까지 밤새 내내 바다에서 찾게 만들어. 나중에는 정말 죽고 싶더라. 질려가지고 그냥 '아유.. 죽자 죽어.'하면 몸에 힘을 푸욱- 풀게 돼. 그럼 그제서야 바다 밑까지 더 내려가는거야." 내가 말했다.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거네요?" 아빠가 고개를 지긋이 끄덕이셨다.

 

1시간 40분동안 낚시를 하는동안 아빠는 처음 30분간만 낚시를 하셨고, 남은 시간에는 동생을 도와주거나 바다를 등지고 앉아 핸드폰을 보셨다. 건너편에서 낚시대를 놓고 아빠를 바라보면서 '왜 아빠는 여기까지 오셔서도 또 핸드폰을 하실까.' 생각했다. 알고보니 아빠는 바다를 보면 우울해지는 필연을 간직하셨던 것이다.

 

 

 

죽음을 논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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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동안 러닝크루 동아리 회장을 하고, 올해의 회장 임기를 2명의 언니에게 넘겼다. 공동 대표 자리를 만든 것이다. 각각 나와 8살 차이, 2살 차이가 나는 언니들이지만 어쩐지 나보다도 더 귀여운 사람들이다.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귀엽다'의 실제 사전적 의미가 꼭 맞는 언니들이랄까.

 

언니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러닝크루' 그리고 '임원진'의 자리 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앞서 일컬은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러닝크루 운영을 위한 공적인 대화가 곧바로 수면 위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런데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함께하는 동안은 달랐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러닝크루 이야기는 종이접기하듯이 곱게 접어 넣어두고 서로의 마음을 펼쳐보았다.

 

땅에서 태어나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세 사람은 시원한 물줄기가 끊임없이 떨어지는 대자연의 폭포 앞에서 사뭇 엄숙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어쩌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느새 "죽을 때 느낄 고통이 너무 무서워. 그래서 나는 죽기가 싫어"라고 내뱉고 있었다.

 

그러자 태연하게 인생 8년 선배인 언니가 말문을 텄다. "아니야. 죽을때 하나도 안 아파!" 언니는 수능을 100일 앞둔 어느날 자전거를 타다 자동차와 부딪혀 공중으로 온 몸이 부양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날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 짧은 순간인데도 온갖 생각이 들더라. 이 자전거 동생꺼인데 어떡하지, 나 정말 죽는건가? 정말 별 생각이 다들어.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는데 피는 철철 흘러.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하나도 안 아프더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 눈동자에서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그때 죽는게 어떤건지 깨닫고 나서 다짐했지. 나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죽을거라고."

 

이야기를 들으니 그제서야 그녀에게 품었던 호기심이 풀렸다. 학부와 대학원을 각각 두 번이나 경험하기로 선택한 그 열정과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이 항상 궁금했기 때문이다. 죽으면 끝나는 인생의 감각을 직접 느껴본 언니는 진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의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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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을 가지 않아도 언제나 여행을 하고 있다. 삶 자체가 잠깐 왔다가 떠나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행이라는 삶 속에서 또다시 다른 장소, 다른 하늘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신나는 일이다. 여행 안에서의 여행, 그 속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나는 두 번의 여행을 통해서 깊이 깨달았다. 결국 여행 끝에 풍경은 가고 사람은 남는다는 것을. 사람이 남은 뒤에는 또 다시 삶이라는 새로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서 체력은 잠시 방전되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도 충만하게 채워졌다. 알 수 없는 확실한 자신감도 생겼다. 내 곁에는 두 손을 붙잡고 함께 나아갈 든든한 가족과 우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여행이 끝나더라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또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에 접어들 것이며 결국 풍경은 지나가지만 우리는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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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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