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상공의 날개짓,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

난세의 영웅은 없고 개척자만이 있을 뿐
글 입력 2021.04.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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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궁금한 삶의 페이지를 열 영웅이시여



이 연극은 ‘아기 장수 우투리’ 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빛 바래고 간혹 변주되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끊임 없이 전해 내려온 이 설화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그런 흔한 영웅 이야기이다. 아는 것이 없지만 천진무구한 아이와 성숙하지만 희망을 잃은 어른의 경계에서 모서리로 날아가버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디 있니 어데 있니 등허리에 구름 같은 날개 달린 아이야

우투리 우투리 너는 언제 올거니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 中

 


날 때부터 등에 날개의 흔적을 달고 태어난 아이, 팍팍한 세상을 뒤집고 흙먼지 일으키며 새 세상의 첫 자락을 열어줄 아이. 언제, 어디에서나 있었던 이 뻔하고 흔한 영웅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 여러 입을 거쳐 숨쉴 수 있었을까? 그만큼 시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이들이 간절히 원해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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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름이 없다. 이름 대신 그들은 각자의 숫자를 붙이고 나온다. 1,2,3,4,5…이들은 간혹 이야기의 해설자처럼 나레이션을 하기도, 주인공 ‘3’의 이야기 속 다른 등장인물이 되기도 한다. 어쩐지 이야기의 주인공 ‘3’보다 그들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뒤를 잇는 6,7,8일수도 있다.


즉슨, 어쩌면 우리 또한 말도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뒤바꿀 날개 달린 영웅을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형체 없는 이 영웅의 이야기는 실로 위대한 힘을 가진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눈 앞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빵 조각 보다도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이 신기루 같은 영웅에 대한 갈망과 희망이 더욱 큰 힘을 지닌다.


적어도 내일이 궁금할, 기대될 삶을 살기를 모든 이들이 원한다. 그 누구도 이미 알고 있는 고통을 지겹게 가져올 내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웅은 존재해야만 한다. 비록 그가 영웅이 아닐지라도, 혹은 영웅을 빙자한 그릇된 야망을 품은 자라도 말이다. 이 허무맹랑한 영웅을 사람들을 품에서 빼앗는다면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질지 알기에 ‘3’은 ‘1’을 저지하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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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끝없는 디스토피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고통 없고 행복할 기대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그리고 어제의, 수많은 과거의 고통을 희생시킨다. 그것을 발판 삶고 영웅은 더욱 위대해지고 신기루 같은 희망은 더욱 비대해진다. 핏 비린내 나는 전장 한 가운데 앉은 ‘3’은 비로소 이 모든 굴레는 뫼비우스의 띠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극의 마지막, 그녀의 총구는 어디로 향했을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누구든지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나 희망 가득 찬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당신은 이제 그 희망이 겉의 몸집만 불린 빈껍데기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디로 총구를 돌릴 것인 가? 멋모르고 치열하게 살아온 자기 자신일 수도, 희망을 불씨를 지피고 장작을 집어 넣어 부추긴 이일수도, 어쩌면 나에게 끝없이 고통을 주고 있는 원수를 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가능한 연극을 통해 가능을 이루어 내는 일


 

[크기변환]우투리 가공할만한 연습실 스케치.jpg

 

 

서사극은 극이 진행 되는 내내 관객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하게끔 만든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하여 극대화된 감정을 느끼다가도 이것이 결국 무대 위의 만들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결국 관객은 극 중 스토리에 몰입 하다가도 자신을 둘러싼 차가운 현실을 인지하게 된다. 어쩌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끔찍하고 무자비함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우투리: 가공할만한>, 제목 뒤에 부제처럼 붙은 ‘가공하다’는 두 가지의 뜻을 지닌다.

 

 

'가공할 만한'

1 인공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

2 두려워하거나 놀랄만하다

 

 

곱씹어 보면 정말 그러하다. 무대 위의 행위는 인공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어떠한 사건이며, 이를 통해 새롭게 인지하는 익숙했던 현실은 두렵고 놀라운 존재로 다가온다. 너무나 익숙해 바꾸어야할 필요도, 의지도 느끼지 못했던 우리에게 찬물을 끼얹고 현실의 이질적인 불합리함을 별안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가능한 연극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결국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연극은 허구이다. 허구는 그 자체로 실제를 절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관객’이라는 요소가 개입함으로써 이 법칙은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허구를 접한 현실의 한 개인인 ‘관객’은 이를 통해 각자의 일상을 바꾸어 나갈 것이고, 이들이 모여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운명을 따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영웅의 운명을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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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처음부터 ‘연극’임을 자처하며 시작한다. ‘3’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은 돌아가며 상황 해설자가 되고, 심지어 연극 중간 자신의 ‘분량’에 대한 토로를 하는 배우도 있다. 극은 끊임 없이 이어지는 내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연극이에요’를 온 몸으로 내 뱉고 있다. 불가능한 연극을 통해 가능을 이루어 내려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작품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3’이라는 인물의 캐릭터성에 있다. 그녀는 여태까지 우리가 접해온 영웅들과는 어딘지 다른 구석이 있다. 여태까지의 남성 영웅들은 늘 뛰어난 운명을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났다. 마치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처럼, 그렇게 태어났기에 그는 날때부터 비범했고 정해진 비범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3’은 달랐다. 무엇이든 잘 고치는 능력 외에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그녀는 백지장 같은 그녀의 운명 위에 스스로의 그림을 그려 나갔다.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죽도록 노력하고 밤을 새워가며 갈고 닦은 그녀의 아이디어와 그것을 담아낸 흠 잡을 데 없는 무기들로 ‘3’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비로소 높은 곳에 올라가고 나서야 ‘3’은 그 위로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천장이 그녀를 가로 막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날 때부터 날개의 흉터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영웅’, 그 신기루 같고도 철옹성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 ‘3’은 더는 올라갈 수 없었다. 그나마 ‘1’이 내어준 자리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 그녀의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래 영웅이 될거야. 내가 하려는 일에는 그 이름이 필요하니까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 中

 


극 중 가장 인상 깊었던 ‘3’의 말이다. ‘3’은 오히려 그를 가로막는 ‘영웅’의 존재를 수단으로 전락 시킴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날 때부터 가진 자만이 그 운명을 타고 날 수 있다면 본인의 운명을 그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새로 쓰면 된다. ‘3’이 알려준 그녀의 삶의 방식은 가히 세상을 바꿀 만한 영웅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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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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