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AVINA & DRONES [음악]

언젠가 아문다
글 입력 2021.04.1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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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어폰 너머 무심코 흘러나온 음악이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친구도 가족도, 때로는 나조차도 모르던 내 마음에 쏙 하고 들어와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지그시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때면 그냥 그 음악과 함께 아주 먼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 음악과 나만 있는 곳으로, 그래서 아무런 걱정 없이 영원의 가까운 시간을 살고 그냥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런 음악을 운 좋게 만나 삶의 힘든 순간, 오로지 혼자로 남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는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이 함께 했다.

 

 

 

 

처음 사비나앤드론즈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한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 뜬 추천 플레이 리스트의 무더기로 넣어져 있던 곡 중 하나를 클릭한 게 그 시작이었다. 처음 듣게 된 노래는 ‘stay’란 곡이었는데, 외국어로 된 낯선 가수의 이름과 전부 영어로 되어 있는 가사에 처음에는 정말 아무런 의심 없이 외국 가수일 거로 생각했지만, 실은 한국 뮤지션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특유의 분위기조차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어서 약간의 문화 충격까지 경험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사비나앤드론즈의 정보를 찾아보고 잘 못 하는 영어 가사 해석도 해보고 라이브 무대도 찾아보며 한동안은 사비나앤드론즈에 빠져 밤이고 낮이고 그 안에 살았다.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알게 된 사비나앤드론즈는 나의 10대 끝자락에 함께했다.

 

그 당시 나는 매일 30분간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등하교했는데, 아침잠이 많았던 터라 우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버스 자석에 누워 잠을 자던 게 내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때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을 들었다. 잔잔하고 크게 감정이 폭발하는 구간 없이 그저 천천히 천천히 이야기해주는 듯한 음악의 멜로디를 들으면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렇게 흘러나온 멜로디가 이상하리만큼 위안이 돼서 꽤 고단했던 학교생활의 시작 부분에 매일 다시 시작할 힘이 났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통학 길에 마주치는 친구들과 인사 나누는데 바빠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은 내 교복 주머니 한구석에 담기곤 했지만, 매일 같이하던 산책에도 사비나앤드론즈가 있었고 친구들과 싸워 내가 나인 게 싫어 지던 순간에도 사비앤드론즈가 있었고 버거운 어른들의 사정이 조금씩 내게 넘어올 때도 사비나앤드론즈가 있었다. 감정이 폭발하고 상황이 뒤흔들리는 시기에 노래는 내게 오랫동안 머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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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수를 거치고 바쁜 대학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그렇게 한때 힘든 시간을 같이하며, 나와 동고동락했던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을 완전히 잊게 된 20대 초반을 맞이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좋은 음악은 많았지만 듣는 순간”아, 이 음악과 나는 도저히 헤어질 수 없겠구나” 하는 건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그들의 음악이 이상한 건 아니었고, 그냥 인연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겨울 꽤 외롭고 힘든 시기가 찾아와 종일 집에만 누워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시간이 좀처럼 가질 않아, 시간이 빨리 갈 수 있는 건 모조리 했다.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미친 듯이 재밌다는 드라마도 봤고 예능도 봤고 그러다가 그것들에 질리면 마구 잠을 잤었다. 그리고 일어나면 다시 그걸 계속 반복했다.

 

그런 생활을 하면 그래도 조금은 힘든 생각이 잊히지 않을까 했는데, 애써 잊으려는 건 오히려 더욱 선명해져서 그다음엔 과거에 내가 도대체 무얼 하고 살았나 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다 기억은 고등학교 때까지 타고 올라가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 나와 늘 함께하던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에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렇게 22살의 끝자락에 나는 다시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과 만났다.


 

So when it go

그 걸음을 멈추고

그대여 내 곁에서 쉬어가

숨을 쉬어 세상이 놀랍더라도

아픔은 늘 그렇게 웃어


아문다 아문다 언젠가 아문다

우리가 아닌 혼자인 너로

흐른다 흐른다 흘러 사라진다

시간과 함께 그 아픔도

 

아문다 아문다 언젠가 아문다

우리가 아닌 혼자인 너로

숨을 쉬어 세상이 그렇단다

별일 없이 길을 걸어 가는 것 같아도


없단다 상처가 없는 사람 ooh

하늘의 별은 그 아픔의 눈물 이란다

 


음악이 재생되자 그 음악과 함께 했던 나의 10대가 떠올랐다. 졸린 눈꺼풀을 들고 매일 같이 학교에 가던 고등학생의 내가 생각났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던 내가 생각났다. 성인의 문턱에 서서 미래의 희망 앞에 기웃거리던, 반짝이던 내가 생각났다. 치기 어린 나날이었지만 구겨지지 않은 마음이 생각났다. 무엇이든 되고자 했던 내가 생각났고 그런 포부를 당당히 말할 줄 알던 내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전과는 모든 게 달라져 버린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달라진 내 모습에 서러웠고 그럼에도 여전히 괜찮다고 노래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사실 그 노래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고는 말할 수도 없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다. 고통은 일회성의 것이 아니었고 그만큼 순식간에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 노래의 가사처럼 그 무엇에도 아물지 않았던 상처가 조금은 아물기 시작했다. 낮이 무서워 잠만 청하던 나는 낮에 일어나 무엇이라도 해보려 했다. 애써 보지 않았던 친구들의 연락에 다시 답을 하기도 했고 점점 좋아하는 일에 욕심도 생겨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에 지원하기도 했다. 모든 일을 오롯이 한가지의 인과관계로 정의하는 건 좋지 않다고 배웠지만, 그래도 이 경우에는 사비나앤드론즈의 음악이 나를 살렸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도 내 삶의 구석구석에는 사비나앤드로즈가 함께 하고 있다. 매일 같이하는 산책에도, 때때로 소음을 막기 위해 튼 음악 플레이 리스트에도 사비나앤드론즈가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더 이 노래가 내게 머무를지 잘은 모르겠다. 아마 사는 게 바빠지고 어쩌면 나란 사람이 변하여 이 노래에 감동하였던 것을 “어릴 때 그랬지”라고 넘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노래가 내게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당분간은 이 노래에 한껏 유영하며 이 세계에 빠져 죽고 싶은 감정을 오래오래 느끼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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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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