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건 [사람]

부유하는 현재
글 입력 2021.04.0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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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의학에 따르면 먼 미래와 과거를 생각하는 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를 늘 애타게 하는 것은 대부분 먼 미래와 아득히 먼 과거의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참 질기게도 우리를 괴롭힌다.

 

나는 아직도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날의 공기와 그 말이 내 입을 떠나 깨버린 적막도, 그래서 생긴 전과는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진 분위기도. 그려낼 수만 있다면 내 눈앞에 있는 그 무엇보다 더 또렷하게 꺼내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눈에 훤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러한 기억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때때로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시간의 되새김질은 그걸 가능케 한다.


동시에 미래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더 잔인하게 나를 괴롭힌다. 상상으로 그린 먼 미래의 일은 아득하지만 동시에 손에 닿는 두려움이다. 막연하지만 치명적이다. 절망은 그 무엇이라도 되고 어떠한 형태로라도 곳곳에 나를 잡아먹으려 도사린다. 상상은 절망을 너무나 손쉽게 그려낸다.

 

그렇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득 채우면 현재는 까마득해진다. 그리고 나는 부유한다. 햇살이 비추면, 빛을 비추면 그 존재가 드러나는 공기 속에 넘실대는 먼지처럼, 미약하고 때때로만 드러난다. 결국, 이는 세월의 이야기다. 과거의 긴 세월과 미래에 올 세월에 관한 한 인간의 긴 서사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삶의 무책임함에 대해 생각한다. 삶은 아무런 방도를 알려주지 않고 핏덩이의 우리를 이 세상에 던져 놓는 것으로 생을 시작시킨다. 가족이, 친구가, 인자한 누군가가 있을 수도, 또 누군가에겐 그 모든 게 부재한 상태일 수도 있지만, 본디 인간은 혼자이고 그 생 역시 오롯이 혼자의 몫이다. 그리고 무책임한 시작과 달리 여정은 오래된다.


누군가는 그러한 여정을 기꺼이 감당해 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다. 누군가에겐 삶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버겁다. 그래서 때때로 누군가에겐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 된다. 삶은 하나의 절박한 여정이 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의 절박함에 대해 생각한다. 힘들었던 나날 앞에 이어질 나날들에 대해 생각한다. 낯선 고통은 익숙한 고통으로 대체되고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던 밤은 홀로 지새우는 법을 깨우치게 해줬고 힘든 나날은 익숙한 힘든 나날이 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서서 앞과 뒤는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이에게, 세월은 그 자체로 고달프다. 세월은 그 자체로 무게이고 속박이고 두려움이다. 그래서 나는 더 좋은 날이 있을 거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더 좋은 날만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건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걸 아예 모른다면, 생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앞에서 내 고통은 무력하다. 그리고 삶이 마냥 그랬더라면, 그리 많은 예술의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은 절망의 다른 말이다.

 

또한, 삶의 무게 자체에 짓눌리는 이에게 세월을 떠올려보라 말하는 건, 그래서 그렇게 세월 자체를 부과하는 건, 그 기억의 좋고 슬픔을 떠나서 삶이 고달픈 이에게는 더 괴로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에게 세월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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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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