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따뜻한 살인자들, 와이 우먼 킬 [드라마]

젠더와 섹슈얼리티로 살펴본 드라마 <와이 우먼 킬>
글 입력 2021.03.3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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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익스클루시브 드라마 <와이 우먼 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 대한 논의가 더욱 뜨거워지면서,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젠더 감수성을 갖춘 영화나 드라마가 큰 인기와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의 경우에는 글로벌한 구독 플랫폼이 발달함과 동시에 그 소비 장벽이 낮아졌고, 넷플릭스나 왓챠 등 스트리밍 사이트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거나 여성의 유대가 주가 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주체적인 청소년 여성이 주인공인 넷플릭스의 <빨간 머리 앤>, 여성 캐릭터 2인을 주인공으로 페미니즘과 퀴어 담론을 모두 아우르는 왓챠의 <킬링 이브> 등과 같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으며, 여성 5인을 중심으로 한 티빙의 추리 예능 <여고추리반> 등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늘은 젠더와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퀴어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는 현재, 각각 다른 시대에 살며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백인, 동양인, 흑인 여성 3인의 이야기를 추리 형식으로 풀어나가 여성 소비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은, 왓챠의 익스클루시브 드라마 중 하나인 <와이 우먼 킬>을 소개해보려 한다.

  

배스 앤, 시몬, 그리고 테일러, 이 세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각각 다른 시대에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발굴해 나가는 드라마의 서사를 따라가며 자매애와 함께 인종, 성별, 시대를 뛰어넘는 연대의 가치를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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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우먼 킬>은 1963년, 1984년, 2019년, 이렇게 세 개의 다른 시간대에 같은 저택에 살고 있는 세 여자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이 남편을 죽이기까지의 과정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진행된다.

 

1963년의 ‘배스 앤’은 빨간 머리 백인으로, 죽은 딸을 그리워하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자이다. 그녀는 남편 롭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정부에게 신분을 숨긴 채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1984년에 살고 있는 사교계의 여왕 시몬은 남편 칼이 게이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2019년의 테일러는 양성애자이자, 변호사, 페미니스트로, 남편 일라이와 개방적인 성생활과 다자 연애의 허용을 약속하고 결혼했지만, 여자 애인인 제이드를 집에 들이고 나서부터 남편과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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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적이고 차분하며 복종하는 아내 배스 앤과 결혼한 롭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며, 여러 여성을 동시에 지배하는 마초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불륜을 통해 성적인 관계를 즐기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고 안정감을 주는 배스 앤과 헤어지지 않고 모든 관계를 비밀스럽게 유지한다.


회차가 지나며 그가 끊이지 않고 불륜을 해왔으며, 배스 앤과 롭 사이의 딸이 롭의 내연녀가 불륜 현장을 급하게 떠나며 문을 열고 가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당했음이 밝혀진다. 롭은 여러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지배적 감정에 도취되고, 딸이 죽은 것 또한 배스 앤의 탓으로 돌리며 그녀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해 가부장적 권력을 견고히 한다. 하지만 그의 행적이 배스 앤에게 발각되고, 배스 앤은 그의 남성성에 혐오감을 느끼고 그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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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남편 칼의 경우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칼은 동성애자이지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시몬과 결혼했으며, 나중에는 에이즈에 걸려 죽음을 맞는다. 칼은 자신이 게이임을 숨기며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 시몬에게 충격을 안기지만, 당시에 ‘더러운 질병’으로 인식되던 에이즈를 앓는 것이 밝혀지면서 지인들과 외부 사회로부터 소외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자신 또한 가부장제 사회의 피해자임이 드러난다.


드라마는 이렇듯 주변화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해가며 남성성을 답습해야 했던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존의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남성 또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칼의 상황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성으로서의 남성성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까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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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애자 페미니스트인 시몬은, 다자 연애 등 얽매이지 않는 연애와 성생활을 추구하며 주체적이고 개방적인 여성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시나리오 작가인 남편 일라이는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인물로 아내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순종적 인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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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몬의 애인 제이드의 등장 이후, 거세된 남성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시작한다. 제이드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일라이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모든 가사노동을 대신 수행하며, 마약 중독이었지만 재활에 성공한 일라이를 꼬드겨 다시 약을 복용한 채로 시나리오를 쓰도록 부추긴다.

 

일라이는 제이드의 도움으로 자신이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되찾았다고 생각하며, 제이드와 함께 시몬을 배척하고 제이드에게 사치품을 사주며 지배욕을 느끼는 등 전통적 남성성을 회복하며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제이드가 사이코패스 방화범임이 밝혀지고, 일라이는 시몬과 다시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남성성이 부질없는 것이며 사회로부터 주입된 허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드라마는 일라이를 통해 전통적 남성성을 가지지 못한 남성이 어떻게 억압받는지를 드러내며 그 남성성이 젠더로서의 남성성, 즉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밝힌다.

 

<와이 우먼 킬>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통적인 남성성을 파헤치고 해체하며, 젠더로서의 남성성의 구축과 답습이 어떻게 여성에게, 또 남성에게 폭력적인지 드러낸다는 점이다. 또한, 이성애 남성 중심적 가부장 사회에서 벗어나 있는 게이 캐릭터인 칼을 통해 가공된 남성성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 옥죄는 억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페미니스트인 아내 테일러에게 순종적인 일라이가 제이드의 현혹에 넘어가며 잃어버렸던 전통적 남성성과 마초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을 묘사하며 남성성이란 것이 허구로서 만들어지고 주입된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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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남성 인물들을 통해서는 젠더로서의 남성성에 대해 밝힌다면, 여성 인물을 통해서는 그들 사이의 자매애와 유대를 보여주며 여성 연대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배스 앤은 남편의 불륜 전적과 딸이 남편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는 옆집 여자에게 찾아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편들끼리 총을 쏴 죽이는 계획에 동참하는 것을 권유한다. 둘은 롭이 옆집 여자와 바람이 난 것처럼 꾸며 옆집 여자의 남편이 롭을 쏘고, 롭이 방어하며 그를 쏘게 만든다.

 

이렇게 옆집 여자와의 연대를 통해 남성의 폭력에서 벗어난 배스 앤은, 롭의 내연녀이자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에이프릴과 그녀의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뮤지컬 배우라는 에이프릴의 꿈을 위해 함께 브로드웨이로 떠난다. 배스 앤은 옆집 여자와 연대해 그녀를 지옥에서 구출하고, 또 다른 피해자인 에이프릴 또한 수용하여 여성 인물이 만들어내는 연대 의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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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은 게이인 남편 칼에게 충격을 받지만, 결국 칼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임을 깨닫고 그와 친구이자 동지 같은 부부 관계를 이어간다. 그는 에이즈에 걸려 소외되는 칼에 곁에 끝까지 남아 그가 부탁한 안락사를 진행한다.

 

시몬은 섹슈얼하고 성애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피해자인 칼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와 그의 성소수자 친구들과 유대하며 약자에 대한 인식을 함께 개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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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드라마는 배스 앤을 빨간 머리 백인 여성, 시몬을 동양인 여성, 테일러를 흑인 여성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다른 시대, 같은 저택에 살고 있는 것을 교차적으로 드러내며 인종과 시대에 상관없이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여성적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남성 인물을 놓고 서로 대적해왔던 TV 드라마 속 여성 인물들의 고정적인 역할을 전복해 다양한 여성성과 여성적 연대를 드러내 젠더의 지평을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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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우먼 킬>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이고, 그 사회 내부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한국 사회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시청자들이 <와이 우먼 킬>에 열광한 이유는, 인종과 시대를 넘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젠더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고 그 지평을 넓히며, 전복을 통한 통쾌함과 여성들 사이의 유대를 통한 따뜻함을 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젠더, 섹슈얼리티, 퀴어, 정체성 등의 키워드를 통해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열망이 한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강한 만큼, 이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섬세하고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 더욱 많이 생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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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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