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양 고전 명화의 퍼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동화같은 영화 속 숨겨진 명화들
글 입력 2021.03.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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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촬영 기법 등으로 많은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기존의 다른 영화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을 둔 연출을 시도하여 만들어낸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묘한 분위기는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결과 개봉한 지 1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화자 되는 중이다. 이제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이야기할 때 그랜드 호텔 부다페스트가 언급되지 않으면 서운하다. 무엇이 이 영화를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일까? 이 영화에는 어떠한 시각 예술적인 요소들이 숨어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에 촬영 기법을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촬영 기법을 넘어선 더 깊은 곳에도 존재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명화를 숨긴 퍼즐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무슈 구스타브의 애인이자 세계 최고의 부호인 마담 D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이에 마담 D의 가족들과 무슈 구스타브, 로비 보이 제로는 마담 D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마담 D는 대부분의 재산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남겼으나 ‘요하네스 반 호이틀’의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그림 작품은 구스타브에게 남긴다. 세계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그림이 구스타브에게 남겨지는 것을 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드미트리와 구스타브를 중심으로 ‘사과를 든 소년’을 위한 추격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 추격전에 관한 이야기를 미래에 큰 부호가 된 제로가 늙은 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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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이 색감이라는 것에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현실감과 몰입도를 위해 잘 사용하지 않는 인공적이고 화려한 색들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빈번하게 사용된다. 분홍색의 호텔 외부와 강렬한 붉은색의 호텔 엘리베이터, 보라색의 호텔 로비 복과 하늘색의 멘들스 제과 포장끈 등 각자의 위치에 각자의 색들이 다채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곧 붉은색과 보라색 등의 강렬한 원색을 통한 유사 대비는 물론, 자칫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었던 보라색과 노란색의 보색 배치까지 이뤄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 강렬함을 완벽히 사용하며 영화를 아름답게 꾸며낸다.


그러나 이 강렬한 색감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명화가 숨어있다. 바로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다. 마크 로스코는 두 개에서 네 개의 직사각형이 큰 색면 위에 수직으로 배열되어있는 구도의 작품을 주로 그렸으며 이 형태 안에서의 다양한 색채와 색조는 다채로움의 조화 그 자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이러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영화의 화려한 색감에 감춰 숨겨두고 있었다. 극초반부, 늙은 작가가 로비 보이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그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황색을 배경에 두고 위에는 보라색을, 아래는 노란색을 칠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벽면과 로비 복, 테이블로 재창작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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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오른쪽 마크 로스코의 무제 작품>

 

 

이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리는 인물 “마담 D”에도 유명한 작품은 숨어있다. 세계적인 부호 마담 D는 무슈 구스타브의 친구이자 애인이다. 그녀의 첫 등장도 인상 깊다. 무슈 구스타브가 호텔에서 머물던 마담 D를 떠나보낼 때 마담 D는 자신을 떠나려는 구스타브를 보며 이대로 떠나면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을 내비친다. 그러나 구스타브가 달래주자 그녀는 구스타브에게 사랑을 이야기하며 불안한 상태로 호텔을 떠난다. 그렇게 첫 등장 때부터 적나라했던 마담 D의 사랑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무슈 구스타브 곁을 맴돌며 끊임없이 나타난다. 자신의 유산 중 세계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 ‘사과를 든 소년’을 구스타브에게 남기며 이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마지막에는 몰래 작성한 새로운 유언장을 통해 구스타브에게 재산 대부분을 넘기기도 했다. 결국 마담 D는 애인 구스타브를 향한 ‘사랑’ 그 자체였다.


이때 주목할 점은 바로 마담 D가 입고 있는 옷이다. 노란색을 바탕으로 하는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옷의 무늬가 낯이 익다. 동그랗게 말려 들어 가는 무늬들과 가슴팍에 있는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의 무늬들까지, 유심히 보지 않아도 그녀의 복장은 완벽하게 한 화가를 떠올린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다. 특히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도 ‘생명의 나무’와 ‘키스(연인)'가의 무늬를 담고있는 그녀의 옷은 그녀가 생을 마감하면서 유언장을 다시 쓰면서까지 사랑했던 그의 연인을 향한 마음이 정확히 드러나는 듯하다. 무슈 구스타브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작품 ‘키스(애인)’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같은 이름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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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과 중앙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오른쪽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인 가상 화가 ‘요하네스 반 호이틀’의 가상 작품 ‘사과를 든 소년’ 또한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작중 구스타브가 ‘미성숙한 소년이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던 이 작품은 짧은 머리의 한 소년이 붉은 커튼을 뒤로하고, 흰색 카라의 옷을 입고 사과를 들고 있는 초상화다. 세계적인 값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되는 이 작품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명화로 인해 작 중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무슈 구스타브는 감옥에 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1500년대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파 화가 ‘아그놀로 브론치노(안젤로 디 코시모 알로리)’의 ‘젊은 남자의 초상’에서 이 작품과의 많은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짧은 머리를 한 미성숙한 소년이 붉은 계열의 커튼을 뒤로 한 채 하얀 카라의 옷을 입고 있다. 구도 또한 완벽하게 일치한다. 젊은 남자의 초상 뿐만 아니라, ‘뒤러’의 ‘막시밀리언의 초상’에서 막시밀리언이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도 ‘사과를 든 소년’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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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과 중앙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오른쪽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속에서 구스타브는 이 그림을 훔치며 다른 그림을 대신 이 그림이 있었던 곳에 걸어 놓는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 그림을 대신해 걸린 그림이 아주 낯익은 화가의 데포르메를 닮았다는 것이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쉴레’다. 에곤 쉴레의 데포르메를 따라 감독이 특별히 주문 제작한 이 그림은 여성 동성애자 두 명이 성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동성애와 나체를 작품의 주제로 자주 삼았던 에곤 쉴레의 적나라함이 잘 녹아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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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에곤 쉴레의 Zwei sich umarmende Frauen, 오른쪽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물론 미술 작품들의 차용과 응용 외의 독특한 촬영기법에서도 이 영화의 특별함이 드러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니어처 기법, 세대에 따른 화면 비율의 변환, 완벽한 대칭성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전체 모습과 그 주변의 전경을 보일 때에는 미니어처 기법을 사용하며 동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허구의 공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어떠한 CG 없이 현실 속에서 촬영되었다는 점, 그러나 그 촬영된 대상은 현실의 공간이 아닌 작은 미니어쳐였다는 점에서 시각적으로 이 영화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렸다.


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1930년대, 1960년대, 1980년대로 총 세 개의 세대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을 이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시대가 변할 때마다 영화의 화면 비율도 함께 변했는데, 감독은 세 시대를 이야기할 때마다 실제 그 시대에 사용되었던 화면비를 사용했다. 1930년대에는 1.37:1, 1960년대에는 2.35:1, 1980년대에는 1.85:1로 변환하며 그 시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좌우대칭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화면의 중심선을 두고 왼쪽과 오른쪽이 완벽히 대칭적이다. 영화의 이런 대칭성을 보며 관람객들은 심리적으로 대칭이 이뤄졌다는 안정감과 너무나도 칼 같은 대칭에서 오는 불안정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된 두 감정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의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미적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며, 영화를 완벽히 완성시켰다.


그러나 곳곳에 숨겨진 명화를 찾아내며 이 영화를 바라보는 일은 이러한 촬영 기법을 즐기는 것 만큼 즐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다음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볼 때에는 지금까지의 명화들의 오마주와 함께 혹시 필자가 찾아내지 못한 또다른 명화가 숨겨져 있는지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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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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