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벽
일본 만화의 붐을 일으킨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는 지구를 습격하는 사도들이 있다. 이들은 ‘AT필드(Absolute Terror Field)’라는 일종의 방어막을 가지고 있다. AT필드는 매우 강력한 그들의 방패로 원자 폭탄을 포함한 통상의 병기들은 가볍게 막아낸다. AT필드를 무력화시켜야 사도를 제압할 수 있기에, 이를 공략하는 것은 사도와의 전쟁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는 인간에게도 사도와 같은 마음의 AT필드가 있다고 한다.

AT 필드의 정체는 마음의 벽. '나'를 '나'로서 있게 해 주는 힘이자 타인에 대한 공포, 인간의 독립된 자아 그 자체를 상징한다. (…) 불완전한 존재들인 릴림들은 AT 필드가 미약했기 때문에 '하나가 되려는 욕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끼고 서로에게 다가가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완전 생명체인 사도와는 달리 비정상적인 방법[7]으로 태어나 군체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인간은 영영 완전한 단일체가 될 수 없어, 서로를 배척하고 밀어내면서도 또다시 다가가며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이런 불완전성에서 나오는 고통 때문에 모든 분쟁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AT필드, 나무위키, 2021-03-22
즉 인간들은 부자연스러운 탄생의 과정으로 인해 선천적인 육체의 유약함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타인과 하나가 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자연적으로는 완전한 단일체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실존적 불완전함에서 나오는 외로움으로 인해 서로 의지하고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맺는 모든 관계는 불완전함의 기반에 있는 것이다.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가까워질수록 상대와의 경계를 명확하게 느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 인간은(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 ‘릴림들’) 태초에 행성에 잘못 불시착되어 외삽된 존재들이다. 즉 지구의 적법 거주민은 인간이 아니라 사도이다. 안노의 sf적인 상상력에서 기인한 세계관은 매우 암울하고 염세주의적인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그린다.
아마도 안노 히데아키(신세기 에반게리온 원작자)라는 염세주의자가 당시 세상을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느낀 회의감을 에반게리온에 투영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는 우울증을 앓았다.)
안노가 현실에서 섬세하게 포착한 타인과의 소통의 한계는 에반게리온의 인물 들 간의 관계로 잘 그려져 있다. ‘신지’는 독단적인 자신의 아버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해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가고, ‘아스카’ 또한 ‘신지’를 향한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이러한 적절한 소통의 부재는 종국으로 갈수록 파국에 치닫게 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소통불능으로 은유되는 AT필드와 여러 겹의 허식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야 할까.
달라서 고통스럽고 즐거운 것

[플리즈 라이크 미 please like me]는 호주 일상 드라마다. 호주 드라마는 처음이었는데 결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시즌1을 견디면 시즌2부터는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과 특유의 사랑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다. [플리즈 라이크 미]에서 나오는 인물은 누구 하나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 다들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고 결함이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들이 자신의 결함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솔직하고 개방적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한국에서 사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솔직하다. 호주 사람들 일반이, 아니면 그들의 문화가 원래 그런 것 인지도 모르겠다. 종종 상대방은 배려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것 같지만 악의적이지는 않다.
인물들은 자신이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에, 무슨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뚜렷한 서사중심이 아닌 쉴 새 없는 ‘대사’들의 향연이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주인공인 조쉬는 스무 살에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여자 친구에게 차이면서 듣게 된다. 그는 매우 말이 많은 tmi형 인간이다. 거의 생각나는 대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조쉬는 시즌 초반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며 첫 남자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조쉬는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취향, 성적 정체성과 함께 주변 인물들을 더 이해하게 된다.

이들은 관계의 고수들이다. 자신만의 강단이 있고 개성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지나치게 경계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는다. 감정에 솔직하지만 매몰되지는 않는다. 도처에 깔린 슬픔 곁에서 밥을 먹고 장난을 치고 웃는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도 능숙하진 않다.
조쉬는 갓 태어난 자신의 이복 여동생의 기저귀를 벗겨주면서 말한다.
“자, 이렇게 하자. 너 기저귀 벗기는 동안 역겨운 표정 안 지을게. 네가 몸매에 콤플렉스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니까. 사람들이 네 기저귀를 벗길 때마다 역겨운 표정을 지으면 얼마나 싫겠니? 좋아... 아이고! 너무 역겹구나 정말 더러워! 그래도 괜찮아 나도 역겨운 사람이거든 우린 다 역겨워. 다들 응가를 한단다 정말 착하구나. 오늘 좋은 거 배웠지? 사람들은 다 역겨워.”
위 대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 드라마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도 엉망이고 너도 엉망이지만 세상도 엉망이야 그러니까 괜찮아!'
드라마는 분위기가 사랑스러울 뿐이지 다소 무거운 소재들이 나온다. 우울증, 자살, 정신병…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꼭 무겁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나?’라고 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연적이고, 일상적인 것이며, 어쨌든 우리는 그것들과 계속 살아가고 있다. 자기 연민만 하기엔 삶에 즐거운 것들이 너무 많다.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순 있다.”
그렇다면 타인과 소통을 하기 전에 받아들여야 할 것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말은 쉽다. 현실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지.
관계의 갈등에서 나오는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가 있다. 어쩌면 이해하는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불가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것인지 묻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상대가 백 프로에 가깝게 불가해한 존재라면 애초에 관계의 시작이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상대의 복잡성을 포함해서 상대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닌가. 캐릭터가 판에 박힌 듯 예상되는 말과 행동만 하면 매력이 없다. 주인공이 히어로가 할 만한 짓만 하면 재미가 없다. 그 안에 악도 있고 고통이 있어야 매력이 생긴다.
서로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는 것, 최대한 솔직해지는 것. 이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세계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오해한 상대의 모습에 사랑에 빠지곤 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순 없다. 사랑의 다양한 모양 중 하나이다. 애초에 모든 관계가 AT필드(방어막)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상대를 둘려 싼 막(막을 포함한 상대)을 사랑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죽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
『미국의 목가』 1권 62쪽
글을 보고 난 후, 답글을 쓰기 전 왠지모를 웃음이 새어나왔어요.
인간관계에 대해 맞는 말이 이어지니, 너털웃음이 났다고나할까요ㅎㅎ
서두의 AT필드 이야기에서는 처음 접한 말들에 글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는데,
플리즈 라이크 미와 말미의 미국의 목가 1권 62쪽 글을 보고,다시금 읽어보니 '관계'의 매력을 말하는 글이구나 느꼈습니다.
나도, 너도, 세상도 엉망이니 괜찮다는 말 너무 웃기네요ㅋㅋ
오해에 오해에, 완전히 알 수 없는 사람 속을 오해하며 살아가는 것도 너무 공감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알것같던 사람이, 참 모를 행동을 할 때에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그냥 그 이해되지 않음이, 모름이, 뭐하나 제대로 알지 못함이 되려
"관계의 미학"처럼 느껴지네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죽는 것이, 어쩌면 뻔한 결말보다 관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같아 꽤나 '쏠쏠한 재미'로 다가왔어요.
모르는 게, 엉망인게, 세상이고 관계라니!! 이젠 생각하기 보단 즐겨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웃음과 상쾌한 깨달음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쌓으면서도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때는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음에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이글을 보여주고 싶네요.
솔직하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일이고, 이는 스스로의 결점을 드러내는 일이며, 결함을 내보인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봐왔던 솔직함은 꼭 좋은 결과만을 낳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정민님의 글을 읽으니 그러한 결과는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함’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에게 완벽히 들어맞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관계는 과연 실재할까요?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우리는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다름을 크게 느끼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믿고 결점을 내보이고,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거겠죠.
서로를 지나치게 경계하지도, 배려하지도 않고, 결함이 있는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주인공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네요.
물론 처음엔 그들의 솔직함에 상처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유쾌하고 건전한 관계를 가까이서 보고 즐기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관계에 대해 다시 고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의 글이 연주님에게 잠시나마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는 것이 기쁩니다.
저도 솔직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상대에게 솔직함으로 인해 거부당할까봐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해지는것이 꼭 깊은관계로 가는 길은 아닐수도 있다고 요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거짓으로 위장하라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맞게, 나 자신을 적당히 모양을 바꾸면서 타협해 나가는게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까 하고요. 나의 본질을 위장하지 않으며, 솔직해져야 할 때 솔직해지고 그럼에도 상대와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다음의 관계는 자연에 맞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인간관계에는 답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밌고 어려운 거겠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의 AT 필드. 제가 마음 속에 두텁게 가지고 있는 것이었네요.ㅎㅎ
하지만 저는 누군가 제 마음 속 AT필드를 뚫고 들어오는 건 잘 허용하지 않지만,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최대한 이해하려 하거나 건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글을 다 읽고 보니 후자라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쪽에서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참 인상깊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해서 관계를 맺고, 또 불완전해서 분쟁과 갈등이 발생한다고요.
이 말에 너무나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글 전반적으로 정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불완전성을 에반게리온으로 설명하시고 플리즈 라이크 미로 해결책을 주셨군요.
같은 주제를 연결해서 설명들으면서 벌써 2개의 작품을 알게 되었네요.^^
저는 그 중에서도 플리즈 라이크 미의 설명을 듣고 벌써 그 드라마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드라마 속 호주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나도 엉망이고 너도 엉망이지만, 그걸 티내면 안돼!'가 너무 심해서 사회가 병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태도가 또 중요하구나.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재밌게 읽어 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플리즈 라이크 미 라는 드라마 꼭 보시기를 추천해드립니다.
인간의 관계 맺기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주는 드라마였어요.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구요. 특히 이 '배려' 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타인에게 칭찬의 말만을 하거나, 상투적인 예의상의 말들을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상대에게 나를 투영해서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건낼때도 말을 던지는게 아니라, 나를 던진다고 해야 맞을까요. 아무튼, 배려라는 것을 자기를 좋은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것이 아닌, 정말 상대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저런 문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그들의 삶의 질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글귀들이 많았는데 그 덕분에 즐겁게 향유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연민만 하기엔 삶에 즐거운 것들이 너무 많다.' 요즘 제가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플리즈 라이크 미'라는 영화에서처럼 주인공들이 자신의 결함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점이 참 부럽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신경쓰고 때론 결국 나를 위해 그들을 배려하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점을 속상해하고 부끄러워하곤 했는데 사실은 다른 이면으론 저의 결함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완벽할 순 없기에 조금은 부족한 점도 있지만 그것마저 그 사람의 개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걸 실천하진 못하고 있기에, 이 글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나의 부족한 점을 부끄러워하고 숨기기보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말은 쉽다. 현실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지.'처럼 현실에선 어렵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감정들을 많이 표현해주셨기에 저도 저를 위해, 그리고 상대방을 서로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정말 즐겁게 공감하며 향유하게 되었는데, 마치 제가 늘 머릿속에 했던 생각들과 수십번은 시뮬레이션 했던 상황들을 상황에 적절한 표현력들과 문장 구사력으로 재현해주신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좋은 글을 향유할 수 있게끔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박정민 에디터님의 다양한 멋진 글들을 즐겁게 향유하고 싶습니다. :)
저의 많이 부족한 글을 ㅜ 공감하며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인간 관계만큼 복잡하고 내맘대로 안되는게 있을까요. 그렇기에 조금이나마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예술이 있는거겠죠. 제가 문화 예술을 즐기는 것도, 현실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책과 영화를 통해서 그런것들을 조금이나마 해소시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찾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공존하며 살아가야하고,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데 실패한다면, 그 관계는 끝난것이고 진전시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너무 불행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그안에서 서로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면,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