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동아리의 대표가 된다는 것

글 입력 2021.03.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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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야 실습팀의 홍보부장, 기획팀 일원, 학회 일원 등 그저 소속감에 기대 안일하게 살아왔던 것이 전부였다. 학교에 다닐 적에도 반장은 물론이고 부반장도 초등학교 6학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무엇을 맡는다고 해봤자 그 역시 총괄 아래 그를 서포트하기 위한 팀장 정도를 부여받았었던 내게 이번 연도 아주 특별한 직책이 생겼다. 바로 동아리 회장이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이것이 학교 중앙동아리라면, 그 동아리가 또 교내에서 활발하기로 유명한 동아리라면 말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교내외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해오고 있던 동아리였고, 기획 전공생인 나에게 그만큼 스펙 쌓기에 좋은 게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기에 3학년 때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다. 아무리 기획을 전공한다고 해도 정규 수업 외에는 본인이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기획을 할 기회가 많이 없는 지방 대학생이기도 했으니 외부 활동이자 친근한 사람들이랑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기획동아리이니만큼 다양한 걸 했다. 시기가 잘 안 따라줘서 중간에 엎은 프로젝트도 몇 있었지만, 어쨌든 내 기억에 남았던 활동이 서너 개는 되는 걸 보면 일 년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기획은 그런 것 같다.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은 없고, 잘 해내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아이디어 좋은 사람이야 많다. 지나가다 본 유튜브 클립의 댓글에서도, 시간 날 때 잠깐 보는 기사 댓글에서도, 누군가가 쓴 블로그 리뷰에서도 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하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많이 보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요즘은 동아리 신입 부원 면접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나보다 더 나은 아이디어를 들고 '이거 해 보고 싶어요!' 하는 면접자들을 보면 동아리 부원들이나 나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것을 실현할 수 있냐는 것이다. 기획 동아리의 가치는 그것에 있다. 내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공상을 과연 눈앞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지, 내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었던 1순위의 방안이 무너졌다면 다음은 어떤 걸 생각해내야 할지, 그럼 그것은 또 가능한지, 그것이 우리의 예산에 들어맞는지, 이 모든 절차를 밟고, 밟다가 짓밟히면 또 다른 걸 생각해내고, 결국 해낼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실현해내냐의 차이가 기획을 잘하냐, 못하냐의 당락을 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의 기획이라 아직 부족한 것도 많지만, 나는 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직접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과정이 참 진귀하다 여겨서 아직까지 기획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남들보다 늦게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고, 작년은 휴학하느라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회장직은 한 번 욕심내 보고 싶었다. 기획 전공생인 내가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자만심과 이 동아리 안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오래오래 일하고 싶었던 마음. 지금이 아니면 또 이렇게 재밌게 회의를 할 기회도, 내 손에서 무언가를 직접 기획해서 제작할 수 있다는 감사함도 날이 지날수록 희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기 중 대부분이 학기 중 인턴을 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학교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워낙 관심을 많이 받는 동아리이기 때문에 이번 연도 회장을 맡았다고 하면 대강 '올해 너네 뭐해?'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안부 목적으로 묻는 질문임과 동시에 말 그대로 우리 동아리의 활동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건네는 질문임을 알기에 최대한 그 호기심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답을 내놓는다. 올해는 코로나19가 지속함에 따라 1학기 활동은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백신 접종 이후 코로나가 종식되면 두 번째 전시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며,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환경 오염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뤄볼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해볼까 한다.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정해둔 것도 없다. 기획이야말로 언제까지나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기 때문에 중간에 엎어질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행할 확률보다 엎어질 확률이 더 큰 것이 기획이다.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그래도 우리는 그 가능성에 걸어보는 동아리다. 가능성만 보고 달려간다는 것이 우리처럼 어리고 패기 있는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성격인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동아리에 계속  마음이 가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획을 해보고 싶어서 회장직에 자원한 것이지, 회장 자리가 탐나서 자원한 것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대인원을 거느리고 리더쉽을 발휘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아직도 이 자리가 어색하기만 하다. 어떻게 소통을 해야 좀 더 올바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떤 운영 방식으로 진행해야 더 효율적으로 팀을 관리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건 내가 앞으로 일 년 동안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의 가능성으로만 대답하는 동아리이기에 어떤 일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더 작게 만드는 것만 같다. 그러나 예전의 나라면 나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불안해했겠지만, 지금은 이 확신할 수 없는 불안이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고, 이 소통 방법에 불만을 품고 있는 부원들을 위해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갈수록 미션을 클리어하는 느낌을 받아서 아직까진 재밌다. 그리고 쭉 재밌었으면 한다. 모두의 성취감을 위해, 누군가에게 추억을 선물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동아리이니만큼 모두의 기억 속에 우리 동아리가 조금은 남아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걸 이뤄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올해도 조금 더 바쁘게 살 계획이다. 이 바쁨이 주는 불안함이, 그 불안함 끝에서 탄생하는 것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을 나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도 나눠주고 싶고, 조금은 삐걱거릴지라도 계속해서 수정해나가며 완제품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부서지고 고쳐나가며 보완해가는 과정에서 이룰 수 있는 진한 성장을 도모하고 싶다. 올해는 나뿐만 아니라 부원들 모두의 성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때의 패기를 평생의 마음가짐으로 갖고 살고 싶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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